쓰레기 먹으며 주인 그리워해...파양된 개들의 운명은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11. 1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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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55] 영화 ‘개들의 섬’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1만8273마리의 유실·유기동물이 구조·보호조치됐다. 전년보다 9.3% 줄어든 수치이긴 하지만 여전히 연간 10만이 넘는 반려동물이 버려지거나 길을 잃고 있는 것이다. 같은 해 농림축산식품부가 반려동물 양육을 포기하거나 파양을 고려한 경험이 있는 반려동물 양육자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물건훼손·짖음 등 동물의 행동문제’를 꼽은 경우가 27.8%, ‘예상보다 지출이 많음’이 22.2%, ‘동물이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함’이 18.9%로 나왔다. 아마 실제로 동물을 버린 사람에게 물어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가족으로 받아들일 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자 가족 구성원 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개들의 섬’은 유기당한 개들이 쓰레기 섬에서 생존해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유기된 동물의 기분은 어떨까. 인간과 동물은 언어가 다르니 우리는 그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 연출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개들의 섬’(2018)은 버려진 개의 관점에서 동물 유기에 대해 사유해보는 작품이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개를 들인 인간은 그 필요가 다하면 개를 버리지만, 주인과의 관계가 항구적이라고 착각했던 개는 상처를 받는다. 쓰레기 섬에 모여 살게 된 개들은 인간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언젠가 주인이 다시 찾으러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반려동물 양육 포기 또는 파양 고려 경험 반려동물 양육자 1296명을 대상으로 반려동물 양육을 포기하거나 파양을 고려한 경험이 있는지 물어본 설문에서 26.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한 고민을 한 이유로는 ‘물건훼손·짖음 등 동물의 행동문제’ ‘예상보다 지출이 많음’ 등 양육을 결정할 당시엔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적 문제가 주로 꼽혔다. [출처=농림축산식품부 ‘2021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보고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개들, 쓰레기 섬에 버립시다”

영화는 일본 가상도시 메가사키를 배경으로 한다. 시장 코바야시는 ‘개 독감’을 이유로 모든 개를 쓰레기섬에 추방하라는 긴급 검역령을 발령한다. 개 독감의 위험성이 과장됐으며, 치료제도 6개월만 있으면 나오기 때문에 명령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은 묵살된다. 시장은 전염병을 통해 일종의 공포 정치를 함으로써 지지층을 결집하고 반대파를 제거한다. 개에 대해 너무 잔인한 처사라는 주장을 하는 데는 큰 용기가 요구된다. 공동체에 전염병이 퍼져도 괜찮다고 역설하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매도될 수 있어서다. 시장은 자신의 경호견 스파츠를 쓰레기 섬으로 추방하며 솔선수범한다.

시장의 정책이 폭력적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좀체 힘을 얻지 못한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작품의 시점은 6개월 뒤로 건너뛰어 쓰레기 섬으로 쫓겨난 개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비춘다. 각각 무리를 만들어 생활하는 개들은 먹이를 가지고 싸움을 하기도 한다. 비극적인 이야기인데도 유머러스한 접근이 돋보인다. 쉽게 감상주의로 빠지는 걸 경계하는 웨스 앤더슨의 강점이 잘 살아난다. 예를 들어, 먹거리가 담긴 봉지를 두고 두 패거리가 싸우기 전 오가는 대화가 그렇다. 싸울 가치가 없을지도 모르니 봉지를 먼저 열어보자고 합의한 뒤 내용물을 확인하며 이런 얘기를 나눈다. “썩은 사과 씨, 벌레 먹은 바나나 껍질, 곰팡이 핀 떡, 정어리 가시, 달걀 껍질, 구더기 득실대는 썩은 생선 내장 … 싸우자!”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유쾌하다. 쉽게 감상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쓰레기를 뒤지던 개들은 주인과 함께하던 시절 당연하게 누렸던 것을 그리워한다. 한 개는 히터 빵빵한 집에서 양털 쿠션 깔고 살던 느긋한 일상을 추억한다.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인 미용을 떠올리는 개도 있다. 야구팀의 마스코트였던 개는 열정과 희망이 가득했던 과거의 자신을 아득하게 느낀다. 다만, 개중 삐딱선을 타는 개 ‘치프’는 동료들을 한심하게 여긴다. “너희들만 보면 토 나온다. 어째 고양이들보다 나약하냐? 배고파? 그럼 뭐든 잡아먹어. 삶을 포기해선 안 돼 그걸 절대 잊지 마.” 이처럼 감독은 개들에게도 각기 입체적인 개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안에서 갈등과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캐릭터들에게 ‘충직하고 사랑스러운 개’라는 스테레오 타입만 반복했다면 영화는 밋밋했을 것이다. 각각의 개는 저마다의 과거를 가지고 있고 주인을 회상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아버지가 버린 개를 찾아나선 양아들

서서히 희망을 잃어가며 느슨해지던 개들의 삶에 변화가 생긴다. 코바야시 시장의 아들이 경호견 스파츠를 찾아 경비행기를 몰고 홀로 섬에 오면서다. 3년 전 발생한 고속열차 사고의 생존자였던 소년은 부모가 모두 사망하며 먼 친척인 코바야시 시장의 양자가 된다. 벽돌 저택의 외딴 방에서 지내던 외로운 소년에게 친구가 돼준 것이 경호견 스파츠였다. 개들은 소년에게 협력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 섬에 자기 개를 찾으러 온 첫 인간에게 개들의 의리를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개들은 인간에게 개의 의리를 보여주기로 한다. 다만, 떠돌이 개 출신인 치프(왼쪽에서 다섯 번째)는 인간의 명령을 받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모험 끝에 소년과 개들은 스파츠를 찾게 되고, 코바야시 시장도 회개해 자신의 개 절멸 계획을 철회한다는 전형적 모험담이다.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끌고 가는 것은 할리우드 최고 비주얼리스트로 꼽히는 웨스 앤더슨의 연출이다. 앞서 ‘판타스틱 Mr.폭스’(2009)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선보인 바 있는 그는 ‘개들의 섬’에서 한층 아기자기한 미장센을 선보인다. 연기를 표현하기 위해 솜을 활용하고, 셀로판으로 불꽃을 그려내는 아날로그식 연출법에 따뜻한 감성이 도드라진다.
‘개들의 섬’을 흥미롭게 감상했다면 ‘판타스틱 Mr. 폭스’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개들의 섬’을 통해 감독이 차별과 동물권 등 사회적 관심을 드러냈다면, ‘판타스틱 Mr. 폭스’에선 메시지보다 유머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편이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외로움을 달래고 싶다면, 기계를 갖고 노세요

‘판타스틱 Mr. 폭스’와 차이가 있다면 사회적 메시지가 좀 더 부각된다는 점이다. 전염병의 위험성을 과장해 반대 세력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코바야시 시장에게서 공동체에 직면한 위기를 부풀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는 현대 위정자의 모습을 발견하긴 어렵지 않다. 혹자는 개들이 본거지에서 추방되는 스토리 속에서 난민과 소수자 차별 문제를 읽어낸다. 무엇보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건 동물권(동물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개를 입양했다가 버리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요즘 같은 세상엔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개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입혀 들었을 때 또 다른 차원의 설득력이 나온다.

이 영화에는 로봇개도 나온다. 전투용으로 개발돼 공격적이지만 ‘재롱’ 버튼을 누름으로써 손쉽게 재롱을 떨게 할 수 있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람들은 개가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해서 입양했다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나 파양한다. 이 영화에선 그런 사람들에게 완벽한 반려견이 나온다. 바로 코바야시 시장 주도로 제작된 인공지능(AI) 개다. 전투용으로 만들어져 공격적이지만 ‘재롱’ 버튼만 누르면 쉽게 재롱을 떨게 할 수 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기능만 집어넣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질병을 얻을 일이 없다. 배터리 충전을 위한 전기가 아까울 땐 전원을 끄면 그만이다.
스톱모션으로 만든 장면 하나하나가 귀엽고 따뜻하다. [이미지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굳이 로봇개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스마트폰과 게임기가 있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개를 입양할 필요가 점점 없어지는 세상인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개를 입양할 필요도 없다. 언젠가 개를 파양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애초에 개를 입양하지 않음으로써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누군가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위로받겠다는 선택이 아니라, 그가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을 때도 함께하겠다는 결심인 것이다.
‘개들의 섬’ 포스터.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장르: 어드벤처·판타지·코미디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감독: 웨스 앤더슨

성우: 스칼렛 요한슨, 브라이언 크랜스톤, 빌 머레이, 프란시스 맥도먼드, 틸다 스윈튼, 에드워드 노튼

평점: 왓챠피디아(3.5/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90%) 팝콘지수(87%)

※2022년 11월 11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OTT): 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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