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돋보기](18) 빈곤의 시절 '보증금 없는' 산부인과

김상연 2022. 11.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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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병원 변천사 한눈에…가천산부인과기념관·가천박물관

[※편집자 주 = 인천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국내에서 신문물을 처음 맞이하는 관문 도시 역할을 했습니다. 인천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의 유산만 보더라도 철도·등대·서양식 호텔·공립 도서관·고속도로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연합뉴스 인천취재본부는 이처럼 인천의 역사와 정체성이 서린 박물관·전시관을 생생하고 다양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모두 30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 기사는 매주 토요일 1편씩 송고됩니다.]

가천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입구 [촬영 김상연]

(인천=연합뉴스) 김상연 기자 = 인천을 대표하는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은 1950년대 동인천의 조그만 산부인과 의원에서 출발했다.

옛 시절 환자들이 값비싼 진료비를 미납하는 일이 많아 대다수 병원이 보증금을 받았으나, 이 산부인과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환자들을 배려했다.

'보증금 없는 병원' 간판을 내세운 이 병원은 믿음과 신뢰를 기반으로 60여년이 지난 현재 병상 규모로는 국내 5위 규모인 대형병원으로 성장했다.

길병원의 태동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천사는 가천이길여산부인과기념관과 가천박물관에서 둘러볼 수 있다.

가천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1층 전시실 [촬영 김상연]

가난했던 시절, 보증금 없는 병원

가천대 길병원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이길여 산부인과'는 1958년 인천시 중구 용동의 3층짜리 건물에서 문을 열었다.

의료보험 체계가 정착하지 않았던 당시에 환자들은 비싼 진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보증금을 미리 내지 않으면 진료를 받아주지 않다 보니 병원의 문턱은 높았다.

그러나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은 당시 돈이 없어 병을 고치지 못하거나,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보증금 없는 병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보증금 없는 병원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환자들이 몰렸고 1960∼70년대에는 병원 건물 앞이 항상 장사진을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가천이길여산부인과기념관은 과거 병원 건물을 그대로 활용해 옛 시절 산부인과의 모습을 재현했다.

안내 창구와 진료실이 있는 기념관 1층에서는 남편의 지게에 실려 병원을 찾은 임산부부터 환자들의 답례품인 쌀과 생선, 야채가 소쿠리를 가득 채운 모습 등이 전시된다.

2층에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환자들이 밀려들었던 수술실과 분만실, 입원실의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산모들의 편의를 위해 인천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도입된 병원이라거나, 건물 한쪽에 항상 한솥 가득한 미역국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는 이야기들도 흥미를 끈다.

가천박물관 전경 [가천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천'의 정체성, 시민들과 나누다

인천시 연수구 청량산 밑자락에 있는 가천박물관은 가천산부인과기념관과 더불어 길병원의 발자취와 함께 전통 의학과 의료 생활사를 둘러볼 수 있는 의학 전문 박물관이다.

개관 당시에는 인천시 남동구 길병원 가천관에 있었으나, 관람객 편의와 소장 유물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2005년 새로 건물을 짓고 현재 자리로 옮겼다.

가천박물관은 설립자인 이 회장이 '가천'에 담긴 박애·봉사·애국의 정체성을 나누고 인천 시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설립됐다.

이 회장의 생애와 업적을 조망하는 자료와 함께 각종 국보와 보물 등 5만여점의 유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1993년 국보로 지정된 '초조본유가사지론' 권53과 함께 의학 서적으로서 연구 가치가 높은 '향약제생집성방' 권6과 '간이벽온방' 등이 있다.

국보 초조본유가사지론 [가천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박물관 2층에는 한국 잡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창간호실도 마련돼 있다.

국내 최대 창간호 소장처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창간호실에는 대한제국(1897∼1910년) 시기부터 최근까지 120여년간 발행된 수많은 잡지의 창간호 2만여점이 보관돼 있다.

육당 최남선이 발간한 '소년'(1908),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예지로 현재까지 출판 중인 '현대문학'(1955) 뿐 아니라 대중잡지인 '하이틴'(1986)·'보물섬'(1982)·'씨네21(1995)' 등 친숙한 잡지 창간호도 즐비하다.

가천박물관은 1995년 설립 이후 개인 수집가인 이희경씨로부터 창간호 4천여점을 기증받은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자료 수집에 나섰다.

이 회장과 박물관 직원들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잡지를 찾아 전국의 헌책방과 골동품점을 돌아다니고 개인 수집가를 만났다고 한다.

박물관 측은 이 회장이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지켜본 산고의 고통과 환희가 누군가의 열정과 땀, 노력이 담긴 창간호의 탄생 과정과 닮았다고 설명한다.

윤성태 가천문화재단 이사장은 "가천대 길병원이 태동한 인천 곳곳에는 가천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며 "가천산부인과기념관과 가천박물관에서 그 발자취를 찾아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천산부인과기념관과 가천박물관 운영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무료다.

가천박물관 소장 창간호 [가천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goodlu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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