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연기한 유해진 “‘왕의 남자’의 광대가 17년 만에 왕 역할도 해봐요”[인터뷰]
‘웃긴 유해진’은 없다. ‘유해진표’ 왕을 기대하라.
배우 유해진이 영화 <올빼미>에서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아들 소현세자를 8년 만에 맞이하는 조선 왕 인조 역을 연기했다. 2005년 영화 <왕의 남자>에서 조선시대 광대인 천민 육갑이 역을 한 이후 17년 만에 왕 역할을 맡은 것이다. 유해진은 <올빼미> 개봉을 앞두고 지난 11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저에 대해 생각하는 친숙한 모습이 있으니까 (왕을) 못 받아들이고 이야기에 들어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면서 운을 뗐다.
영화 <올빼미>는 낮에는 안 보이고 밤에만 보이는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 사투를 그린 스릴러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는 한 줄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유해진은 이 작품에서 아들의 죽음 전후 광기 어린 모습을 보이는 인조 역할을 맡았다. 그는 이 시나리오를 택한 이유로 “이야기가 쫀쫀하고 쫄깃해서”라고 했다.
인조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카메라 움직임은 꽤 느리다. 대나무 발에 가려진 채 카메라는 멀리서 서서히 들어온다. 발이 걷히고 유해진을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보여준다. 원래는 인조가 ‘짠’ 하고 등장하는 시나리오였다고 한다. 유해진은 “제가 왕이라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느닷없이 짠하고 등장하기보다 관객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래야 ‘아! 유해진이 왕이라고 했지. 저런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할 시간을 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흔히 상상하는 근엄한 조선시대 왕은 아니다. 구안와사로 얼굴 근육들이 마비되고,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아닌 중저음으로 어딘가 쫓기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유해진이 연기한 왕은 ‘왕의 전형성’을 깼다. 욕심과 욕망에 뒤얽힌 왕이다. 유해진은 이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그는 자신이 연기한 <올빼미> 속 인조를 “욕망에 휩싸인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인조를 연기하기 위해 기존 영화나 역사책을 봤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금까지 인조가 나온 영화를 못 봤는데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다”면서 “역사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건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다른 사람이 연기한 걸 봤다면 오히려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해진은 “색다른 왕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왕이지만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올빼미>에서 인조는 왕인데 곤룡포도 풀어헤치고, 다리도 쩍 벌리고 앉아 있다. 그는 “어떤 사람은 눈 떨리는 장면을 보고선 마그네슘을 안 먹은 거냐고 농담하던데, 주변에 구안와사 온 분을 본 적이 있어서 그때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다”고 말했다.
<올빼미>의 촬영장은 전북 부안 세트장이었다. 17년 전 <왕의 남자>와 촬영장이 같다. 당시 조감독 안태진이 이번 영화의 감독이다. 유해진은 “세트장에서 정말 <왕의 남자> 생각이 많이 났다”면서 “그때는 저 돌바닥에서 바짝 엎드려 있었는데 이제는 허리를 펴고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왕도 해보는구나. 여기 서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곤룡포를 입으니까 마음가짐이나 행동도 조심스러워지는 건 있더라”며 웃었다.
사실 대중은 배우 유해진에게서 ‘코미디’를 더 많이 떠올린다. 하지만 스스로는 코미디를 가장 어려운 장르로 꼽는다. 많이 고민하고 고생하며 찍지만 대중이 ‘그 고생’을 느끼지 않도록 편하게 보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지금까지 연기를 해올 수 있는 이유는 낯선 역할을 섞어가면서 해서 그렇지 않을까”라면서 “너무 익숙한 것만 했다면 이렇게 오래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유해진과 류준열은 세 번째로 만났다. 그는 전날 언론 시사회에서 류준열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류준열을 향해 “본인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겠지만 ‘굵은 기둥’이 되어 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때 류준열은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극장을 찾는 발길이 점점 줄어드는 때, 유해진은 관객들에게 이 말을 건넸다.
“저는 관객들이 극장에 있는 동안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극장이 도피처든 행복한 곳이든 딱 그 부분이 충족되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조선시대 배경 사극이지만 보다 보면 사극이었는지 잊게 된다. 영화는 오는 23일 개봉.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11151652001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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