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9개월 만에 최대 성과'…헤르손 되찾은 우크라인들 '감격'(종합2보)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11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헤르손은 이제 우리의 것"이라고 발표하자, 수도 키이우 시민들은 마이단 광장에 모여 밤 내내 해방의 기쁨을 누렸다.
이날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특수부대로 구성된 선발대가 헤르손 중심부 드니프로강 서쪽 둑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바로 직전 러시아 국방부는 드니프로강 서쪽에 있던 러시아군 3만여 병력이 강 동쪽으로 철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함락된 남부 항구도시이자 전략 요충지 헤르손을 되찾은 건 우크라이나에 있어 올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래 처음이자 최대 성과다.
AFP 통신에 따르면 이날 마이단 광장에 나온 헤르손 출신 시민 나스티아 스테펜스카(17)는 글썽이는 눈으로 "내가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내 도시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곧 돌아갈 수 있을 것"…희망에 찬 우크라인들
아직 학생인 스테펜스카는 러시아군이 처음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들어왔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끔찍했다. 바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심지어 다음날 우리가 살아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런 스테펜스카에게 헤르손 수복 소식은 곧 모든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는 "가능하고 안전한 때 돌아갈 것"이라며 "곧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키이우 시 거리에는 음악과 요란한 자동차 경적이 울려 퍼졌다고 AFP는 전했다.
지난 3월 러시아군이 헤르손을 점령하자 키이우로 피난했던 시민들이 오후 7시부터 마이단 광장에 모여 국기를 들고 샴페인을 터뜨리고 서로 부둥켜안기 시작했다.
아르템 루키우(41)는 "처음엔 믿지 않았다. 몇 백 미터씩 그렇게 몇 주나 몇 달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단 하루 만에 군이 헤르손에 도착했다"며 "최고의 서프라이즈"라고 말했다.
루키우는 "아이들에게 '바로 그거야. 우리는 해방됐어'라고 말하며 국기와 두 아이들을 동시에 안은 뒤 이윽고 울기 시작했다고 AFP는 전했다.
마이단 광장은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헤르손의 실향민들은 일제히 애국가를 부르며 연신 눈문을 닦아냈다.
루키우는 "우리는 정말 행복하다"며 "이날을 9개월간 기다려 왔다"며 "헤르손은 우크라이나 땅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요충지 함락 8개월 만에 수복…젤렌스키 "역사적인 날"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저녁 비디오 연설을 통해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우리는 남쪽 지역을 되찾고 헤르손을 수복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도시 외곽까지 온 우리 수비대는 진입이 임박했다"면서 "그러나 특수부대는 이미 도시 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 발표 직전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페이스북 성명을 통해 선발대가 헤르손 내 드니프로 강 서쪽 둑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흑해를 낀 남부 항구도시 헤르손은 개전 초기인 올해 3월 함락됐다. 최대 물동항 오데사로 가는 관문이자, 러시아가 2014년 점령한 크림반도로의 담수 공급로였으며, 무엇보다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이어 러시아 본토까지 연결하는 육로가 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탓이다.
러시아는 올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가장 먼저 헤르손을 점령하고 오데사로의 서진을 꾀했으나, 우크라이나 역시 치열하게 막아내고 수복을 시도하는 등 양측이 대치 상황을 이어왔다.
그러나 지난 9일 러시아는 돌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발표와 우크라이나 내 군 사령관 세르게이 슈로비킨 장군 연설을 통해 보급 문제로 철군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틀 만인 이날 러시아 국방부는 3만여 병력이 드니프로강 동쪽으로 철수를 완료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헤르손 수복과 관련, "우크라이나는 지금 또 다른 중요한 승리를 쟁취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무슨 짓을 하든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자축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측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군 일부가 여전히 헤르손 내에 주둔하고 있다. 일부는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매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우크라이나 국방정보청은 텔레그램에 러시아어로 된 성명을 내고 남은 러시아군 병사들을 향해 "죽음을 피하려거든 즉시 항복하라. 항복한 러시아군은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제 군이 지뢰 제거 등 헤르손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를 최대한 빨리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 '소련 아프간 철군' 이래 최대 실패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에 따르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4만 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10만 명도 넘는 러시아 군인이 사상했다. 우크라이나 병력 손실도 러시아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소련 시절 10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보다 더 큰 인명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되는 상황에서 이번 철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전기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러시아는 헤르손에서 철군해도 이 지역이 러시아의 점령지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지난 9월 말 헤르손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4곳 점령지에서 주민투표를 열고 찬성 우세로 공식 병합을 발표한 바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곳은 러시아 연방이며, 변화는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가 헤르손을 합병한 것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에는 "후회는 없다"고 일축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는 올해 8월 시작한 남부 영토 수복 작전을 통해 마을 40곳 이상을 탈환한 데 더해 요충지 헤르손까지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우크라이나의 기세는 전날 미국이 발표한 새 안보 지원 패키지로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방어체계와 지대공 미사일을 포함 총 4억 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책을 약속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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