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곧 돈이다…살림고수들이 전하는 겨울맞이 대청소 가이드

김지윤 기자 2022. 11.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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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며 집에 대한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평수를 줄이거나 기존 집의 여유 공간을 확보해 공간의 가치를 되찾으려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여느 때 같았으면 결혼·이사 성수기로 빈번하게 사다리차를 목격했을 시기지만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로 부동산시장에 찾아든 한파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9월까지 전국의 누적 주택 거래량은 41만7794건으로 지난해보다 49% 감소했다.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은 ‘공간=돈’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도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에 대한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평수를 줄이거나 기존 집의 여유 공간을 확보해 공간의 가치를 되찾으려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집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셀프스토리지(개인 창고)를 활용해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누리려는 이들도 증가했다.

선택이 무엇이든 고물가 시대, ‘공간 값’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리가 필수다. 살림 고수들이 전하는 ‘겨울맞이 대청소 가이드’를 소개한다.

비움의 핵심은 지금, 이 순간

두 자녀를 둔 주부 노윤선씨는 지난달 대청소를 하며 75ℓ 종량제 쓰레기봉지 10장을 가득 채워 버렸다. 중고 거래 등을 통해 사용 빈도가 낮은 가구, 가전도 방출했다. 덕분에 넓은 평수로 이사를 한 뒤에나 가능할 것 같았던 아이들 방을 꾸밀 수 있게 됐다. 노씨는 “우리집이 이렇게 넓었나 싶어 새삼스러웠다”며 “비운 것 중 가장 큰 쓰레기는 ‘언젠가 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물건의 가치는 쓰임이 있을 때 빛을 발한다. 공간이 유한하다면 더욱 그렇다. 정리의 시작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동시에 그 물건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정리 전문가 심숙희씨는 “통상적으로 1년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라면 미래에도 사용할 가능성이 적다”며 “불필요한 물건을 비워내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불필요하게 쌓인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오히려 더 낭비”라고 직언했다.

정리의 시작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동시에 그 물건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과감한 정리를 결심한 이들도 피해 갈 수 없는 장벽이 있다. ‘추억’과 ‘희소성’이다. 대체가 가능한 옷, 책과 달리 추억이 깃든 물건은 비우기가 쉽지 않다. 감정의 깊이나 희소가치는 저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므로 강요할 수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 미니멀라이프 열풍을 일으킨 일본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이런 상황에 봉착했을 때 의류, 책, 서류, 추억의 물건 순으로 정리하기를 제안했다. 비움에 단련되다 보면 무엇을 비워야 할지 판단력이 생긴다는 이유다.

차마 버릴 수 없는 추억은 사진을 찍어 남겨 두는 것도 방법이다. 살림 인플루언서 방미현씨는 “결혼 전 입었던 옷,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미술 작품 등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추억이 짐으로 전락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추억을 사진으로 담으니 정리도 수월하고 찾아보는 즐거움까지 생겼다. 추억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었다”고 조언했다.

똑똑한 도구는 정리를 돕는다

비움에 성공했다면 절반은 이룬 것이다. 다음은 정리다. 정리는 물건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해 사용을 편리하게 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동시에 숨은 공간을 찾아내는 돋보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만약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정작 방법을 몰라 방황 중이라면 도구를 활용해보도록 하자.

여러 기능이 합쳐진 일체형 가구는 각각의 용도대로 두었을 때 협소해질 수 있는 공간을 하나로 줄이는 ‘효자템’이다. 수납이 가능한 아일랜드형 조리대 겸 식탁이나 서랍 수납이 가능한 벙커형 침대, 헤드에 조명이 달린 침대 등이 대표적이다. 사용 시 움직임이 있는 가구의 경우 활용 반경도 고려해야 한다. 가구 디자이너 한재형씨는 “좁은 공간에 옷장이 필요하다면 여닫이문보다는 미닫이문으로 디자인된 제품을 추천한다. 앞쪽으로 문이 열렸을 때 필요한 공간을 생략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리빙박스는 다수의 살림꾼이 추천한 ‘정리의 단짝’이다. 계절에 따라, 동선에 따라 불필요한 물건들은 그때그때 리빙박스에 담아 보관하면 생활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적층이 가능하고 앞쪽으로 문이 열리는 수납함이 물건을 넣고 찾는 데 수월하다. 주부 박경민씨는 좁은 틈새에 넣어 활용할 수 있는 바퀴 달린 슬림 수납장을 추천했다. 박씨는 “세탁실의 세제, 화장실의 샤워용품 보관 등 ‘일당백’을 하는 가구”라며 “책장과 벽 사이에 두어 자잘한 물건들을 보관하기에도 좋다”고 전했다.

책장 안에 옷걸이 봉을 설치해 위쪽에는 옷을 정리하고 아래쪽에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책을 배치한 활용법. 콩이의 정리정돈(@jeong_sun0603) 제공

최소 18㎝의 여백만 있어도 사용 가능한 압축봉은 ‘공중 부양’ 수납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의 도구다. ‘콩이의 정리정돈’을 운영 중인 정완선 대표는 “낮은 책장 위에 봉을 달아 사용하면 아래는 아이들의 책을, 위에는 비교적 길이가 짧은 아이들의 겉옷을 보관하는 데 유용하다”고 소개했다. 이외에도 화장실 변기와 벽 사이에 압축봉을 설치해 청소도구를 걸어두면 수납은 물론 물때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다만 수납을 위한 수납은 지양해야 한다. 공간 컨설턴트 ‘앤플링’ 노영채 대표는 “사람에게 휴식을 취해야 할 집이 있듯 물건들도 사용 후 보관이 가능한 집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수납 도구”라며 “그러나 모든 수납 도구가 내 공간에 항상 적합한 것은 아니다. 수납량에 비해 수납 도구가 많으면 이 또한 쓰레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정불변의 법칙을 깨라

‘비움’과 ‘수납’이 끝났다면 다음 단계는 응용이다. 인테리어 전문가 강윤미씨는 지난겨울 ‘안방’이라 불리는 부부침실을 중학생 딸에게 양보했다. 강씨는 “일반적으로 부부침실은 다른 방에 비해 넓게 설계된 경우가 많다. 남향 기준으로 배치돼 일조량이 풍부하고 통풍 또한 잘된다. 이런 공간을 잠만 자는 곳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까웠다”고 말했다. 이어 “어쩌면 집에 머무는 시간, 방에 놓인 가구 등을 고려했을 때 아이가 가장 큰 방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가족의 상황과 환경, 생애주기를 고려하고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면 공간의 효율성을 배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정된 것은 방뿐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부피가 큰 가구들은 이사 후 한 번 자리 잡으면 다음 이사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사례가 많다. 전문가들은 “생활 패턴에 따라 가구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여유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1인 가구 권영한씨는 최근 침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애물단지 옷장을 작은 방으로 옮겼다. 옷의 가짓수가 많지 않은 데다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부모님을 위한 이불만 덩그러니 넣어두는 옷장까지 할애하기에 침실은 좁았다. 권씨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밥값은 들었지만, 만족도를 감안했을 때 합리적인 소비였다”고 말했다. 이후 확보된 공간에는 빔프로젝터를 설치했다.

기존의 옷방의 가구를 부부침실로 옮기고 아이의 침대와 가구를 재배치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사례. 가구 배치 컨설팅 업체 ‘두 남자의 가구 재배치’ 제공

혼자의 힘으로 부족하다면 ‘가구 재배치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추천한다. 가구 배치 컨설팅 업체 ‘두 남자의 가구 재배치’를 운영하는 유현 대표는 “처음 집을 구한 사회 초년생부터 아이가 태어난 다음 갈 곳을 잃은 신혼 가구로 전전긍긍하는 부부, 버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까지 다양한 고객들이 연락을 준다”고 말했다. 단순하게 가구를 옮겨주는 일 외에도 가구 위치를 컨설팅하고, 폐가구를 처리해주는 것 역시 이들의 업무다. 유 대표는 “가구 배치에 정답은 없다. 같은 공간이라도 사용자의 습관, 가구 크기, 색상 등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며 “때로는 책상을 방 중심에 배치하거나 책장을 침대 밑에 두는 식의 변화가 뜻밖의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브랜드에 따라서는 ‘이전 설치 서비스’를 운영 중인 곳도 있다. 주로 자사의 붙박이장, 드레스룸, 침대 등을 분리·재설치·이동하는 서비스가 포함됐다. 가격은 유료다.

‘1평’에도 가성비가 있다

비움과 정리를 마쳐도 공간이 부족하다면 보관의 영역을 집 밖으로 분리해보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6년차 캠퍼 홍해준씨는 지난여름, 각종 캠핑 장비를 보관하기 위해 셀프스토리지(사진)를 계약했다. S사이즈(1m×1m×2m)의 공간을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월 10만원 내외다. 셀프스토리지는 옷, 취미 용품, 계절 용품 등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일정한 공간에 보관하고 관리해주는 서비스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스태티스타는 2026년 전 세계 셀프스토리지 시장이 640억달러(약 9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옷, 취미 용품, 계절 용품 등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일정한 공간에 보관하고 관리해주는 셀프스토리지 서비스가 인기다. 미니창고 다락 제공

다양한 크기의 공간으로 마련된 국내 셀프스토리지 서비스는 대부분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돼 연중무휴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예약을 진행하고 지문 인식과 개별 잠금장치로 자신의 물건을 보호받는다.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위치해 빠르게 물건을 보관하고 찾을 수 있어 MZ세대의 또 다른 수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간의 ‘가성비’를 챙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김예원씨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0억원을 넘었다는 기사를 보며 테트리스를 하듯 쌓아놓은 물건들이 방 하나를 차지하는 내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면서 “생활을 위한 공간이 아닌, 보관을 위한 공간에 이렇게 큰돈을 투자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의 저자 정희숙 살림전문가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물건을 누리고 살면 집이 10평이어도 넓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겨울맞이 대청소하기에 딱 좋은 주말,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물건의 가치를 둘러볼 차례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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