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떠나보낸 로봇은 고뇌한다… “너와 함께 늙어갈 순 없는 걸까”
랑과 나의 사막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160쪽 | 1만3000원
유일한 목적이 사라진 다음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부, 명예, 가족, 연인…. 이런 목적에 다시 닿을 수 없는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로봇 ‘고고’는 인간 ‘랑’의 주검을 사막에 묻는다. 랑은 오랜 시간 사막에 파묻혀 있던 고고를 꺼내준 소년. 더 이상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고고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랑의 행복이었다.
목적 없는 삶의 모습은 인간과 로봇이나 다름없다. 고고는 랑이 없는 집에서 이틀을 선 채로 보낸다. 함께 바다로 가자는 랑의 친구 ‘지카’의 제안을 거절하고, 사막을 혼자 걷기 시작한다. 이따금씩 랑과의 기억을 머릿속에 재생한다. 사막에서 만난 인간, 외계인을 통해 랑이 자신에게 알려준 것을 되새긴다. 로봇에게도 마음이 있다고. 로봇의 목적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고.
“비로소 랑과 시간이 맞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이번에는 너와 함께 늙어갈 수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랑을 떠올리며,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간다.”
201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로봇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SF가 아니라, 처음부터 인간을 애도하는 로봇이 등장한다. 자신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음에도 계속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로봇의 이야기이지만, 무수한 죽음을 뒤로한 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현실과도 닮았다.
작가는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한 다음에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랑을 받아들인 고고처럼, 각자의 사막을 건너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선인장과 같은 한 줄기 희망에 닿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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