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먼이 옳았다, 물가를 잡으니 모든 것이 좋아졌다”

박정훈 논설실장 2022. 11. 12.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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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원리로 경제 문제 해결한 일종의 보수 경제학자 ‘영웅전’

경제학자의 시대

빈야민 에펠바움 지음|김진원 옮김|부키|752쪽|3만5000원

이 책은 세상을 뒤바꾼 미국 경제학자들의 영웅전이다. 20세기 후반, 경제학을 과학이라 믿은 일군의 학자들이 비합리성·비효율성으로 가득 찬 공공 부문에서 무혈 혁명을 일으켰다. 그들은 경제성의 언어와 비용·편익 분석의 도구로 공공 정책, 공적 의사 결정, 자원 배분 시스템과 국경을 넘는 돈·재화의 흐름을 새로 설계했고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구축한 경제 질서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경제 저널리스트로서, 뉴욕타임스의 비즈니스 논설을 책임지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 ‘경제학자의 시대(The Economists’ Hour)’란 제목을 붙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장을 중시하는 보수 경제학자들이 주인공이다. 사안에 따라 신고전파, 통화주의, 공급 중시론, 작은 정부론, 자유무역론 등 여러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것들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 자유 시장주의다. 여기에 정치적 함의를 덧붙인다면 책 제목을 ‘보수 경제학자의 시대’라 바꿔야 정확할 것이다. 자기가 세운 경제 모델이 쓰이기를 원했던 야심 찬 우파 경제학자들이 미국 정부를 움직여 이론을 현실화했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밀턴 프리드먼(1922~2006)이다.

저자는 프리드먼이 타임지(誌) 표지를 장식한 1969년을 시장주의 시대의 시작으로 규정한다. 닉슨 정권이 출범한 해였다. 그해의 상징적 이슈가 징병제 논쟁이었다. 프리드먼을 필두로 한 우파 경제학자들은 의무 징병이 경제적으로 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젊은이들이 군대 대신 다른 분야에서 일할 경우 얻을 기회 이익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닉슨이 이를 받아들여 징병제 검토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4년 뒤 미국은 징병제를 폐지했고, ‘건국의 아버지’들이 강조했던 ‘성스러운 의무’는 고용 계약으로 바뀌었다. 모든 문제를 시장 원리로 풀어내는 우파 경제학의 승리였다.

1980년 미국 공영방송 PBS의 시리즈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 중 한 장면. 프리드먼은 이 방송에 출연해 자유 시장 경제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케인스주의와 달리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이 통화량의 증가에 있다고 분석한다. /부키

20세기 중반 경제학은 정부 개입을 중시하는 케인스주의가 지배했다. 1970년대 찾아온 스태그플레이션(불황+인플레이션)이 케인스주의에 치명상을 입혔다.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오르는 상황은 케인스주의자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딜레마였다. 반면 프리드먼 진영에는 간결한 처방이 준비되어 있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면 시장이 알아서 성장과 일자리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었다. 인플레를 퇴치할 해법도 너무나 분명했다. 프리드먼은 “오로지 통화만 중요하다. 통화 공급을 통제하라. 그러면 다른 것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간다”고 했다.

70년대 말 미 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1927~2019)가 그 처방을 받아들였다. 돈줄을 과격하게 조이면서 유명한 ‘인플레와 전쟁’에 들어갔다. 부작용은 컸다. 금리가 20%를 넘어서고 제조업 실업률이 30%에 육박했다. 하지만 프리드먼의 ‘세뇌’를 받은 레이건 대통령은 어떤 고통도 감내할 각오가 돼있었다. 처방은 옳았다. 인플레 심리가 수그러들면서 물가가 내려갔다. 1983년 레이건은 “인플레라는 악몽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프리드먼 진영이 새로운 주류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시장주의 경제학은 1980년대를 풍미했다. 미·영을 시발로 작은 정부와 감세, 민영화, 규제 완화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물결이 세계를 휩쓸었다. “상품이 국경을 넘지 않으면 군인이 넘는다”는 논리로 무역 자유화도 확산됐다. 우파 경제학은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 경제를 성장시키고 자유무역의 혜택을 전 세계 곳곳에 안겼다. 그러나 이면에선 승자 독식과 격차 확대라는 그림자도 커지고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 붕괴는 시장 지상주의에 대한 회의를 일으켰다. 시장에 맡긴 결과 금융 부실의 괴물이 자라났다는 반성이 일었다. 세계 각국은 다시 케인스식 처방을 꺼내 들었다. 정부의 역할도 재강조되고 있다. 2008년을 고비로 우파 경제학 전성 시대는 끝났다고 저자는 썼다. 불평등을 줄이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는 문제가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오늘날 경제학자 누구도 ‘시장 만능’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유 시장의 가치는 누구도 부인 못할 시대의 뼈대가 됐다. 무책임한 정치 포퓰리즘이 판치는 오늘, 경제학의 언어로 세상을 좋게 만들려 했던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의 열정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프리드먼의 슬하에서 배웠다”고 실토한 영국 총리 대처(1925~2013)의 말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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