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풍산개 파문’이 드러낸 헌법의 허점

김신영 경제부 차장 2022. 11. 12. 05: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금 부자 文 전 대통령
세금으로 거액 비과세 연금
세계 최고 수준 ‘전임’ 혜택에
개 양육비까지 더 필요한가
군사 독재 시절 헌법에 넣은
전 대통령 예우, 줄일 때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청와대 관저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물한 풍산개 곰이가 낳은 새끼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 문 전 대통령은 비용 문제를 들어 곰이, 그리고 북에서 함께 온 풍산개 송강이를 지난 9일 집에서 내보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전 대통령이 관리 비용 250만원을 주지 않는다며 함께 살던 풍산개 두 마리를 내보냈다. 키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음에도 돈을 핑계로 떠나보냈다니 비상식적이다. 세계의 ‘전직 대통령’ 중 문 전 대통령만큼 세금으로 막대한 지원을 받는 사람이 드물기에 더 그렇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법으로 전직 대통령 지원을 보장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어떤 면에서 조건이 미국보다 좋다. 미국은 장관 연봉 수준, 한국은 현직 대통령 연봉의 95%를 준다. 한국 장관 연봉이 대통령의 약 60%에 불과하니 미국에 비해 괜찮게 쳐주는 셈이다. 이 기준에 따라 문 전 대통령은 한 달에 1390만원을 연금으로 받는다. 이 정도를 받으려면 연금보험료를 얼마씩 내야 하는지 한 금융사에 계산을 의뢰했다. 이런 답이 왔다. ‘30년 동안 매월 1100만원 정도를 적립하면 됩니다.’

미국은 대통령 연금에 세금을 부과한다. 한국의 여느 연금 소득자도 세금을 낸다. 다만 전직 대통령은 안 낸다. 약 50년 전 소득세법 개정 때 추가된 면세 조항이 방치됐다. 왜 특혜를 주는지 영문을 아는 이가 없다. 다른 나라 대통령 부인들이 부러워할 초특급 추가 혜택도 있다. 평생 지급하는 유족(배우자) 연금으로, 대통령이 사망하면 대통령 급여의 70% 수준을 준다. 지금 기준으로 월 1000만원 넘게 받을 수 있다. 순직한 소방 공무원 유족에게 지급하는 연금이 생전에 받던 급여의 55~65%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큰 돈이다. 미국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뜨는 순간 배우자 연금을 연 2만달러(약 2700만원)로 줄인다. 사적 연금이 낫다며 대부분 사양한다 한다.

한국은 헌법(85조)에 전직 대통령 예우를 명시한 드문 나라이기도 하다. 군사 독재 시절인 1987년 추가됐다. 관련 문제를 꾸준하게 지적해온 이경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칠레 외엔 헌법으로 정한 사례를 못 찾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통화에서 “목숨을 희생한 공직자나 의인보다, 뽑아 달래서 일한 전 대통령이 더 큰 예우를 받는 것이 타당한가”라고 물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2항은 ‘사회적 특수 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왕정을 버린 한국이 죽을 때까지 세금으로 우대하는 전직 대통령이란 특수 계급을 헌법으로 보장하다니요. 권위주의 정권의 흔적이 방치돼 남은 오점입니다.” 국회의원 연금은 이런 문제로 10년 전 이미 폐지됐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대통령 연금 도입의 취지를 ‘최소한의 품위 유지’라고 설명한다. 1953년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너무 가난하게 살았던 해리 트루먼이 계기가 됐다고 적혀 있다. 트루먼은 돈이 없으면서도 “대통령 경험을 팔아먹을 순 없다”며 기업이 제안하는 자리는 거절하고 강연과 방송 출연도 피했다. 소득이라곤 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나오는 군인 연금 월 113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150만원)가 고작이었다 한다. 그의 곤궁한 생활이 국가 망신이라는 지적이 일자 미 의회가 1958년 대통령 연금 등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었다.

대통령 퇴임 후인 1956년 미주리주 고향 마을에서 결혼을 앞둔 딸 마거릿 트루먼(조수석)과 가족들을 태우고 직접 운전하는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돈이 궁했던 트루먼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져 품위 유지가 필요하다는 논란이 일어 미 의회는 1958년 전직 대통령 예우법을 만들었다. /해리 트루먼 도서관

전직 대통령 대부분이 트루먼처럼 꼬장꼬장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요즘 미국에선 물러난 대통령이 받는 혜택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연 등으로 버는 소득이 특정 수준을 넘어가면 연금을 깎자거나 경호 비용을 삭감하자는 법안이 때때로 상정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그 조건으로 대통령 연금(한 달에 약 800만원) 전액 삭감을 내걸었다. 한국은 반대로 전직 대통령 혜택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보다 우수하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문 전 대통령의 재산은 25억6000만원이다. 예금만 12억원 있다. 고액 자산가인 그의 통장엔 매월 거액의 비과세 대통령 연금이 꽂힌다. 법에 따라 병원비, 여행비, 경호비, 교통비, 통신비 등등 막대한 혜택을 덤으로 받는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이 세상을 뜨거나 자격을 박탈당한 탓에 이 혜택을 온전히 누리는 사람은 문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런 그가 약속한 양육비를 왜 안 주냐며 정들었을 개를 유기견 신세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엔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 양육에 소요된 인건비와 치료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퇴임 대통령이 부담해온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말을 좀 바꿔 돌려드리고 싶다. ‘전직 대통령 부부의 안락한 여생에 소요될 연금과 인건비와 치료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국민이 부담하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