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프랙털처럼… 위로는 아주 작은 단위에서 시작된다

이호재 기자 2022. 11.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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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수학에선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1975년 프랑스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1924∼2010)가 처음 쓴 개념이다.

수학에서 도형이나 입체를 다른 평면으로 옮긴다는 개념인 '투영'처럼 다른 곳으로 감정을 투영해 현재의 삶을 유지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등장하는 수학 개념은 전공자나 수학에 해박한 이가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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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수학의 위로/마이클 프레임 지음·이한음 옮김/264쪽·1만7000원·디플롯
‘프랙털’은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뜻한다. ①복잡한 그림도 작은 조각이 전체 그림을 닮았고 ②자연에서 쉽게 마주하는 고사리 잎이나 ③내부가 가득 찬 정삼각형에서 반복적으로 작은 정삼각형의 내부를 제거해 만드는 ‘시에르핀스키 삼각형’도 모두 프랙털이다. 저자는 인생도 프랙털처럼 작은 감정이 모여 큰 감정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디플롯 제공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수학에선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1975년 프랑스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1924∼2010)가 처음 쓴 개념이다. 사실 자연에서도 프랙털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안선의 한 부분을 가까이에서 보면 멀리서 봤던 전체 해안선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고사리의 커다란 잎은 작은 고사리 잎과 똑같이 생겼다.

프랙털을 인생에도 적용해 보자. 우리는 아침에 깨어나 오늘 뭘 할지 생각한 뒤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할 일을 끝내며 ‘하루’를 마감한다. 길게 보면, 봄부터 겨울까지 ‘1년’도 이렇게 흘러간다. 인생은 어떤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계획하고 준비하고 성년기에 열심히 일하다 노년기엔 ‘생애’를 되돌아본다. 하루와 인생은 어쩌면 프랙털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가 아닐까.

미국 예일대의 수학과 교수였고 망델브로의 ‘절친’이었던 저자(사진)는 “수학을 들여다보면 인생에 대한 통찰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독한 슬픔을, 이를 버텨낼 위로를 수학이 준다고 한다. 학창 시절 내내 우리를 힘겹게 했던 수학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잡념을 없앨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주장은 아니다. 수학은 자연에 숨겨진 법칙을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에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요지다.

저자는 프랙털을 거론하며 “큰 상실 안엔 작은 상실이 겹겹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때 크게 슬퍼하는 건 그와 공유했던 사소한 일상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함께 밥 먹고, TV 보며, 수다 떠는 작은 일상의 상실이 모여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는 커다란 상실을 이룬다. 마치 프랙털처럼. 이 때문에 우리가 인생의 큰 상실을 극복하려면 하루하루의 자그마한 상실부터 먼저 회복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x축과 y축으로 이뤄진 수학적 공간에 그린다면 어떻게 나타날까. x축은 시간이라 가정하고, y축은 두려움이나 슬픔, 화남 같은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그래프를 그리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는 감정을 제대로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슬픔이 이 그래프에서 하나의 선을 그린다고 치자. 이때 이 선과는 만나지 않는 하나의 ‘불연속적인 경로’가 더 있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슬픔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감정의 선으로 슬픔의 무게를 덜어내자는 시도다. 수학에서 도형이나 입체를 다른 평면으로 옮긴다는 개념인 ‘투영’처럼 다른 곳으로 감정을 투영해 현재의 삶을 유지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등장하는 수학 개념은 전공자나 수학에 해박한 이가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감을 잡기 힘든 대목도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수학을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연관지어 설명해 읽는 이의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 파고든다.

그래프로 인간의 감정을 그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다가도, 어머니를 잃은 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수학에서 감정이란 어떤 것인지 해답을 구하려는 모습은 울림이 컸다. 7년이 지난 뒤 아버지마저 여의고선 삶의 관심을 ‘투영’할 곳을 찾아 헤맸다는 고백은 괜스레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올해 7월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8월 서울대 학위수여식 축사에서 “수학은 어떤 무(無)모순적 정의도 허락한다”고 했다. 수학으로 인생을 정의해 보려고 했던 저자는 과연 ‘모순이 없는 정의’에 다다랐을까. 철학자들이 수학을 파고든 건, 어쩌면 수학이 인생에 대한 학문이란 걸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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