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항생물질 기존의 5만배 속도 합성… “5가지 신약 동시개발중”[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대구=허진석 기자 2022. 11.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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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항생제 개발 도전 ‘에이엔제이사이언스’
세균의 단백질 생성 막아 죽이는 ‘티오펩타이드’ 대량합성 기술 개발
내성균 잡을 항생제 개발 청신호… 관련 논문 英학술지 표지 장식
재발률 높은 CDI 치료제 등 속도… 임상前 단계로 공동연구계약 다수
황희종 에이엔제이(A&J)사이언스 대표가 새로운 메커니즘의 항생제를 합성하는 시험대에 앉아 사용 원료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항생제 내성균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여서 미국 영국 독일 등 정부기관과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 민간 재단은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지원하고 있을 정도다. 황 대표는 “국가적 협업이 필요할 정도로 큰 일에 우리의 대량 합성 기술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대구=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최근 영국에서는 구더기(구리금파리 애벌레)를 활용해 세균에 감염된 상처를 낫게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세균을 잡기 위해 인류가 항생제를 발견하기 이전 시대에 사용하던 방식까지 동원하는, ‘슈퍼 버그’(항생제 내성균)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병원성 세균도 생명이라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다. 항생제가 자신을 공격하면 이를 막아내기 위해 세포 내에 들어온 항생물질을 내뱉듯이 튕겨 내거나 항생물질이 세균 세포벽에서 안착점을 찾지 못하도록 해당 지점의 특정 구조를 바꿔버리기도 한다. 또 세포 안에 새로운 효소를 만들어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세균의 한 세대는 수백 초에 불과해서 이런 내성은 세균 간에 빠르게 확산될 위험이 상존한다.

항생제를 남용하거나 같은 항생제를 자주 사용하면 항생제 내성균이 생길 가능성은 커진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항생제 사용이 크게 증가해 항생제 내성균을 키울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왔고,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 문제가 코로나 이후 최대 보건 위기가 될 것이라 경고하는 상황이다.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내 신약개발지원센터 건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에이엔제이(A&J)사이언스’는 새로운 메커니즘의 항생물질로 항생제 내성균을 잡는 데 도전하는 스타트업이다.
○ 천연항생물질 ‘티오펩타이드’ 합성법 특허

에이엔제이사이언스는 천연항생물질로 알려진 티오펩타이드(thiopeptide)의 대량 합성 기술을 개발해 신규 항생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티오펩타이드는 해양 미생물에 의해 생성되는 항생물질로 세포벽이 1겹인 세균(그람 양성 세균)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생 효능이 좋아 많은 신약 연구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대량 생산이 걸림돌이었다. 황희종 대표이사(33)는 7일 본사에서 “티오펩타이드는 병원균의 세포 내에서 단백질 생성을 억제해 세균을 죽이는데, 화학적인 합성 방법으로 기존의 5만 배 이상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기존 연구자들이 2∼3년에 걸쳐 몇 mg밖에 만들지 못하던 것을 2주 동안 수십 g까지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전체 임직원 6명의 이름으로 독자 개발한 티오펩타이드 합성 기술에 관한 논문을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국제학술지에 실었다. 그 논문은 올해 3월 영국 왕립화학회가 발행하는 ‘유기 및 바이오분자 화학지(Organic & Biomolecular Chemistry)’의 표지를 장식했다. 작년 11월에는 임직원 5명 이름으로 신규 항생제 합성 방법을 특허 출원했고, 올해 7월 특허 등록을 마쳤다. 티오펩타이드는 세균의 세포 속 리보솜에 침투해 세균이 성장에 필요한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세균을 사멸시킨다. 에이엔제이사이언스는 이런 기본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티오펩타이드의 일부 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다양한 신규 항생제를 개발하고 있다.
○“CDI 치료제, 2025년경 임상1상 시작”

기존 항생제에 내성이 강한 세균으로 인해 발병하는 심각한 질병 중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이라는 질병이 있다. 장내 환경이 나빠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이라는 균이 과잉 증식하면서 장에 염증을 일으키는데, 심하면 장이 썩어 사망에 이른다. 2000년대 들어 그 위험성이 부각됐는데, 항생제를 오래 복용한 환자나 고령자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 대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한 해 24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 1만2800명이 사망한다(2017년 기준). 항생제를 투약해도 재발률이 30%에 이르고, 재발 후에는 치료 성공률이 40% 미만인 난치성 감염질환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 병을 해결이 가장 시급한 ‘긴급한 위험(Urgent Thereat)’으로 분류해 두고 있다.

CDI 치료에 쓰이는 항생제는 메트로니다졸과 반코마이신, 피닥소마이신이 있다. 메트로니다졸과 반코아이신은 1950년에 나왔고, 피닥소마이신은 2011년에 나왔다. 재발률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피닥소마이신이 그나마 15%로 낮고, 반코마이신은 30%, 메트로니다졸은 40% 이상이나 된다. 선진국에서는 메트로니다졸을 CDI 치료제로 권고하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메트로니다졸이 주로 먼저 처방되는 실정이다. 치료 효과가 좋은 피닥소마이신은 약가가 비싸(약 4000달러) 국내에 도입되지 않고 있다. 세계 시장 규모는 1조 원가량 된다.

황 대표는 “우리가 합성한 티오펩타이드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임상2상을 진행하고 있는 후보 약물들과 비교했을 때 적은 농도로 균을 훨씬 빨리 죽이면서도 인체의 다른 세포나 장내 유익 미생물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더 나은 효능을 보였다”고 했다.

에이엔제이사이언스는 결핵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치료 기간이 1년 이상이나 되는 ‘비결핵 항산균 폐질환’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고령화와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선진국에서 주로 나타난다고 해서 ‘선진국형 결핵’이라고도 불리는 병으로 오랜 치료 기간 때문에 환자 부담과 완치율이 낮다. 20년 동안 이 질환에 대한 치료제는 1개밖에 승인 받지 못해 의약학적 수요가 매우 많아 약값(1년 치료분)이 2억 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황색포도상구균에 의해 피부가 문드러지는 농가진(Impetigo)을 치료할 신규 항생제, 인류의 오래된 질병이지만 새 항생제가 절실한 결핵과 말라리아 치료제도 동시에 개발 중이다. 황 대표는 “5가지 신약 중 CDI 치료제의 개발 속도가 제일 빠르다”며 “내년과 내후년 전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이르면 2025년 임상1상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병역특례로 신약개발지원센터 근무 후 창업

짧은 이력과 인력에도 불구하고 에이엔제이사이언스는 전임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8년 1월 자동차용 모터를 만드는 삼현(대표이사 황성호)의 신약개발연구소로 시작해서 2021년 7월 인적분할을 통해 현재의 회사가 됐다.

임직원 6명인 작은 스타트업이지만 티오펩타이드의 항생 효능이 오래전부터 학계에 알려져 있던 터라 에이엔제이사이언스는 신약 개발의 굵직한 연구 과제를 수주하거나 특정질환에 전문적인 교수들과 공동연구를 다수 수행하고 있다. 공동창업자인 손영진 최고기술책임자(33)은 “국내에 항생제를 개발하는 회사가 드물어 선뜻 공동연구를 승낙하지 못하다가도 우리 물질을 가지고 직접 시험을 해 보신 뒤에는 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새 항생물질 개발 전문가인 한동대 곽진환 교수(생명과학부, 분자생물학 전공)와 2020년 1월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는 등 외부 기관과 협업을 강화했다. 이렇게 연구 네트워크를 확보한 후 올해 7월과 8월에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주한 결핵 치료제 후보물질 도출 과제(12억5000만 원)와 폐질환 치료제 도출 과제(9억1000만 원)의 주관기관이 됐다.

황 대표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화학을 전공해 석사와 박사까지 받았다. 석사를 마치고 병역특례요원으로 신약개발지원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신규 항생제 개발의 꿈을 키웠다. 대학 지도교수인 마르코 추폴리니 교수가 티오펩타이드 전문가여서 도움을 받았다. 황 대표는 “지도교수께서 티오펩타이드 합성을 학술적으로만 다루지 말고 신약 개발을 염두에 두고 공부해 보라”는 조언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신약개발지원센터에서 다른 연구자들의 신약 개발 과정을 지켜본 것이 신약 개발이라는 큰 도전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공동창업자도 이 센터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였다.

황 대표는 “화학 지식을 활용해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신규 항생제 개발의 길을 걷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며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대구=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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