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 국민적 합의 거쳐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문재인 정부 5년의 가장 뼈아픈 정책 가운데 하나가 탈(脫)원전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탈원전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국가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애초의 기대와 달리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뿐만이랴.
‘찬핵’과 ‘반핵’으로 나누어진 기왕의 에너지 진영이 더 단단하게 다져지며 굳어진 적대적 경쟁 관계는 에너지 전환의 청사진 어디에도 없던 목표다.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심판받는다더니, ‘선한 의도’의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그래서 물어봐야 한다. 무엇이 의도에 반하는 결과를 만들었는가? 문재인 정부가 간과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속도다.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전격적일 수 없다. 본래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수백,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진행되는 점진적 과정이다. 그런데도 마치 5년 단임 정부가 임기 내에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서둘렀다. 어제까지 원전을 녹색환경에서 제외했다가 오늘 다시 포함한 유럽연합(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는 에너지 전환의 문제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긴 호흡으로 바라보되, 현재와 근미래에 대한 실천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지혜로운 접근이라고 충고한다.
둘째,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외면한 사회적 합의형성의 노력이다. 지난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재개와 중단을 두고 공론화를 매개로 민의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탈원전에 대해서는 국민 의사를 물은 적이 없다. 모든 ‘작용’은 그 진폭이 클수록 ‘반작용’의 진폭도 큰 법이다. 하물며 합의가 없는 사회적 ‘작용’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적폐청산, 소득주도성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들이 어떤 운명을 맞았는가.
대선 승리가 곧 민의라는 명분 아래 국민적 논의 없이 진행된 정책들은 하나같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새로운 정쟁의 씨앗이 되며 무참한 진영대결의 빌미를 제공한다. 윤석열 정부가 명심할 것은 이것이다. ‘전환’이든 ‘믹스’든,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다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탈‘탈원전’도 폐기 절차에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
아직 살지 않은 내일이 이미 살아본 어제처럼 선명하게 각인되는 것은 우연일까. 중요한 이슈일수록 사회적 합의를 겨냥하며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이미 살아본 미래’가 기다릴 뿐이다.
성공적인 에너지믹스를 위해서는 의사결정과정을 독점하지 말고 가능한 많은 이해관계자 집단과 결정권을 공유해야 한다. 일례로 정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전력정책심의회’를 운용한다. 당연직 4인과 엘리트 시민 25인이 참여하는 이 협의체의 역할과 기능은 유지하되, 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며 더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합의체로 확대해보자.
참여의 확대가 협력의 확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논의구조를 바꾸면서 그에 조응하는 대화의 기술도 도입해야 한다. 아울러 산업부와 원전 산업계는 원전 안전을 담보할 미래기술 개발에 소홀함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 문제를 포함해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등 안전한 원전 운용과 관련해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전문가주의와 기술관료주의에 빠져 앞만 보고 달린 원자력 정책이 또다시 반성과 성찰을 생략한 채 정권의 부침에 기생하면, 롤러코스터를 타기로 작정한 ‘원전 마피아’로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다. 건강한 원전 생태계는 정부 혼자 만들 수 없다. 스스로 만들고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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