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홈’은 어떻게 비극의 현장이 되었나

김용출 2022. 11. 1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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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속 정신질환자 양육·老老 간병 등
고군분투하다 결국은 자살·잔혹한 살인
일본 사회 비추는 7건의 사건들 추적
저출산·고령화로 韓도 문제 점점 심각
“개인 책임 아닌 사회시스템 보완해야”
가족의 무게/이시이 고타/김현욱 옮김/후마니타스/1만8000원

“어디 가?” 리쓰코는 작은 마당이 있는 자신의 도쿄 단독주택 앞에 택시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남편 구스모토 야스오에게 물었고, 야스오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찰서.” “겨, 경찰?” “다녀올게.” 야스오는 작은 가방을 들고 택시에 올라탔다. 집에 남겨진 리쓰코는 수십분 뒤 형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구스모토 야스오씨 댁이죠? 조금 전에 야스오씨가 경찰에 자수하러 왔습니다. 아드님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2층 아드님 방에 가서 확인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2018년 여름 아침, 리쓰코는 전화를 받고서야 남편이 아들 세이타로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십여년 전, 체육 교사 야스오는 중학교 동창 리쓰코와 결혼해 아들 세이타로를 낳았다. 아버지 야스오는 아들을 늘 따뜻하게 대했고, 아들 세이타로는 그런 아버지를 유난히 따랐다. 중학교 때 압정이나 가위 등 뾰족한 것을 무서워하는 첨단공포 증세를 보였던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주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자연히 지각이나 결석이 늘었고, 성적도 급격히 나빠졌다. 강박증과 피해망상, 대인기피증이 찾아왔다. 도쿄 사립대학에 어렵게 입학했지만, 병이 도지면서 1년 만에 중퇴했다. 세이타로는 이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지만 잘 적응하지 못했고, 결혼 역시 곧 실패한 뒤 고립된 삶 속에 불안장애, 양극성 장애 같은 다양한 질환을 겪었다.
이시이 고타/김현욱 옮김/후마니타스/1만8000원
우울한 청춘이 저물어 갈 즈음, 아들 세이타로는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일상 속에 억눌린 감정을 폭력으로 해소했다. 구타의 반복, 깊어지는 병…. 도돌이표처럼 계속되는 지옥 같은 삶. 20년 넘게 아들을 돌봐온 야스오는 아내가 아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지옥 같은 불행을 끝내기로 결심하는데.

일본의 차세대 논픽션 작가 이시이 고타(石井光太)가 쓴 책은 일본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은 7건의 가족 살인 사건을 소재로 쓴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2015년부터 6년간 가족 살인 사건을 취재해 책을 완성했다. 재판 방청과 피해자 인터뷰를 통해 은둔형 외톨이, 빈곤과 동반자살, 가족의 정신질환, 노인이 다른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간병(老老看病), 아동학대 등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비극의 현장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밝은 성격에 ‘또순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총명했던 77세의 간호사 출신 나이조 히데미도 뇌출혈로 쓰러진 연하의 남편 쓰토무 간병을 5년 넘게 지바의 이층집에서 홀로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히데미는 남편 쓰토무가 퇴직한 지 5년 뒤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생지옥을 맛본다. 쓰토무의 건강은 좋아지는 듯했지만 낙상사고로 대퇴골이 골절된 데다가 2차 뇌출혈까지 일으키면서 크게 악화했다. 자상했던 남편은 병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화를 냈고 난폭해져 갔다. 남편의 배뇨를 돕느라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던 히데미는 간병이 이어지면서 우울증을 앓았고, 수시로 ‘자살 충동’ ‘무력감’ ‘결정장애’ 증상을 겪었다. ‘죽으면 다 끝나. 하지만 남편을 혼자 둘 순 없어. 같이 가야지.’ 히데미의 머릿속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2015년 1월 새벽 손에 비수를 들고야 만다.
팬데믹과 저출산·고령화로 가족 문제는 점점 심각해질 전망이다. 일본 논픽션 작가 이시이 고타는 가족 살인 문제에 대해 개인이나 가족만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해결을 강조한다. 사진은 2019년 성북 네모녀 사건을 계기로 복지체계 개선을 촉구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책에는 이 밖에도 두 자매 아스카와 히로미가 함께 사는 어머니를 굶어 죽을 때까지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빈곤으로 인해 어머니와 함께 자살을 시도했다가 아들인 택시기사 다카시만 살아남은 사건, 우울증을 앓는 큰언니를 돌보다가 우울증에 걸린 여동생 에리코가 살인에 이른 사건, 육아 스트레스와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엄마 유미코가 두 아이를 죽인 사건 등이 담겼다.

잔혹한 가족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들이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선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 비극성을 더한다. 아들을 죽이게 되는 야스오는 퇴직 후 청소일을 하면서도 매일 아들의 저녁을 챙기고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던 다정한 아버지였고, 에리코는 우울증에 걸린 언니를 대신해 조카의 엄마가 되어 주려고 이혼까지 감행한 살뜰한 여동생이었으며, 남편을 죽이게 되는 간호사 출신 히데미 역시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본 아내였다.

하지만 이들의 선의는 육아와 교육, 정신질환, 간병, 경제적 어려움 등 생의 고비에서 가장이나 생계부양자, 간병인, 가족으로서 져야 할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서서히 꺾이고 만다. 그건 그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결정적으로 사회 시스템의 실패이기도 하다. 아들을 살해한 야스오는 법정에서 차분하게 말한다. “아들의 병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런 아이를 가진 가족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런 건 가족이 아니면 모를 겁니다. 그 아이 때문에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다른 집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저자는 지옥 같은 삶 속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좌절하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함으로써 사회의 모순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즉 보호자가 나이가 들고 신체적·경제적 한계에 다다를 때,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만 지울 때, 가정폭력이 대물림될 때,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을 돌보는 의무가 한 개인에게 집중될 때,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할 때, 이런 문제가 사회적 차원에서 개선되지 못한다면 가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가족 살인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40대 딸이 70대 노모가 씻지 않고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옷을 벗겨 집 밖으로 쫓아냈고, 결국 노모는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이미 한국의 살인 사건 가운데 30%가 친족 또는 가족에 의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다.

저자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의 도래로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이전보다 크게 늘어난 데다가 저출산·고령화로 가족 문제는 점점 심각해질 것이라며 개인이나 가족만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해결을 강조한다. “코로나19가 끝난 후의 ‘뉴노멀’이라 불리는 새로운 생활 방식과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가족의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하고 무거운 현실과 공적 지원의 문제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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