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홈’은 어떻게 비극의 현장이 되었나
고군분투하다 결국은 자살·잔혹한 살인
일본 사회 비추는 7건의 사건들 추적
저출산·고령화로 韓도 문제 점점 심각
“개인 책임 아닌 사회시스템 보완해야”
“어디 가?” 리쓰코는 작은 마당이 있는 자신의 도쿄 단독주택 앞에 택시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남편 구스모토 야스오에게 물었고, 야스오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찰서.” “겨, 경찰?” “다녀올게.” 야스오는 작은 가방을 들고 택시에 올라탔다. 집에 남겨진 리쓰코는 수십분 뒤 형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구스모토 야스오씨 댁이죠? 조금 전에 야스오씨가 경찰에 자수하러 왔습니다. 아드님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2층 아드님 방에 가서 확인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2018년 여름 아침, 리쓰코는 전화를 받고서야 남편이 아들 세이타로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본의 차세대 논픽션 작가 이시이 고타(石井光太)가 쓴 책은 일본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은 7건의 가족 살인 사건을 소재로 쓴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2015년부터 6년간 가족 살인 사건을 취재해 책을 완성했다. 재판 방청과 피해자 인터뷰를 통해 은둔형 외톨이, 빈곤과 동반자살, 가족의 정신질환, 노인이 다른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간병(老老看病), 아동학대 등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비극의 현장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잔혹한 가족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들이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선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 비극성을 더한다. 아들을 죽이게 되는 야스오는 퇴직 후 청소일을 하면서도 매일 아들의 저녁을 챙기고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던 다정한 아버지였고, 에리코는 우울증에 걸린 언니를 대신해 조카의 엄마가 되어 주려고 이혼까지 감행한 살뜰한 여동생이었으며, 남편을 죽이게 되는 간호사 출신 히데미 역시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본 아내였다.
하지만 이들의 선의는 육아와 교육, 정신질환, 간병, 경제적 어려움 등 생의 고비에서 가장이나 생계부양자, 간병인, 가족으로서 져야 할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서서히 꺾이고 만다. 그건 그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결정적으로 사회 시스템의 실패이기도 하다. 아들을 살해한 야스오는 법정에서 차분하게 말한다. “아들의 병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런 아이를 가진 가족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런 건 가족이 아니면 모를 겁니다. 그 아이 때문에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다른 집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저자는 지옥 같은 삶 속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좌절하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함으로써 사회의 모순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즉 보호자가 나이가 들고 신체적·경제적 한계에 다다를 때,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만 지울 때, 가정폭력이 대물림될 때,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을 돌보는 의무가 한 개인에게 집중될 때,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할 때, 이런 문제가 사회적 차원에서 개선되지 못한다면 가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가족 살인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40대 딸이 70대 노모가 씻지 않고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옷을 벗겨 집 밖으로 쫓아냈고, 결국 노모는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이미 한국의 살인 사건 가운데 30%가 친족 또는 가족에 의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다.
저자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의 도래로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이전보다 크게 늘어난 데다가 저출산·고령화로 가족 문제는 점점 심각해질 것이라며 개인이나 가족만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해결을 강조한다. “코로나19가 끝난 후의 ‘뉴노멀’이라 불리는 새로운 생활 방식과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가족의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하고 무거운 현실과 공적 지원의 문제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윗집男 칼부림에 1살 지능된 아내”…현장 떠난 경찰은 “내가 찔렸어야 했나” [사건 속으로]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이 나이에 부끄럽지만” 중년 배우, 언론에 편지…내용 보니 ‘뭉클’
- “39만원으로 결혼해요”…건배는 콜라·식사는 햄버거?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식대 8만원이래서 축의금 10만원 냈는데 뭐가 잘못됐나요?” [일상톡톡 플러스]
- “북한과 전쟁 나면 참전하겠습니까?”…국민 대답은? [수민이가 궁금해요]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