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선율로 되살아난 어린 공주

2022. 11. 1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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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원천]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라스 메니나스)’(1656). [사진 프라도 미술관]

모리스 라벨(1875~1937)의 피아노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후에 라벨 자신이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은 그 신비로운 제목 때문에도 인기가 많다. ‘왕녀’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고귀함과 화려함, 그런데 거기에 ‘죽은’이라는 섬뜩하고 서글픈 형용사가 붙는다. 그럼 ‘파반’은 무엇일까?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유럽 궁정에서 유행한 느리고 위엄 있는 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곡은 무도회에 제대로 서 보지도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병약한 왕녀를 위해 지은 애틋한 곡일까?

하지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을 들을 때 받는 인상은 슬픔과 탄식이 아닌 아득하고 온화한 노스탤지어다. 라벨은 이 곡에 대해 “특정한 공주를 애도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벨라스케스가 그린 어린 왕녀가 추었을 것 같은 파반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곡의 프랑스어 원제를 보면 일반적으로 공주를 가리키는 ‘프랭세스(princesse)’ 대신 ‘앵팡트(infante)’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스페인식으로 ‘인판타’는 스페인 왕녀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라벨이 영감을 받은 것은 바로크 시대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그린 스페인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1651~1673)의 초상화들일 것이다.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마르가리타가 짧은 머리의 아기일 때부터 그녀가 9살이 되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해까지 이 공주를 여러 차례 그렸다. 마침 그 중 하나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품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 나와있다. 바로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다.(그림 2)

스페인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 그려

재미있는 것은 마르가리타 공주가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벨라스케스의 가장 유명한 걸작 ‘시녀들(라스 메니나스)’(그림1)에서도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는 것이다. 두 그림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공주가 만 5살 때였다. 그런데 왜 한 그림은 스페인에, 한 그림은 오스트리아에 있는 것일까?

당시 합스부르크 왕족은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함께 지배하고 있었고 근친혼을 많이 했다. 마르가리타 또한 외삼촌인 오스트리아 왕실의 레오폴드 1세와 어릴 때부터 정혼이 되어 있어서 그녀의 초상화가 정기적으로 오스트리아로 전해지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근친혼 때문에 합스부르크 왕족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길쭉한 얼굴에 심한 주걱턱을 비롯한 여러 유전적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통통하고 사랑스러운 얼굴의 마르가리타도 성장하면서 주걱턱이 두드러지게 된 것을 초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그녀는 22세의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났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1656). [사진 빈 미술사 박물관]
한편 ‘시녀들’은 마르가리타 외에도 이야깃거리가 참 많은 작품이다. 어떤 미술사학자들에 따르면, 이 그림 속 벨라스케스 자신은 지금 마르가리타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어린 공주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난쟁이 어릿광대와 개도 함께 있건만, 공주는 마침내 싫증이 나버려서 조금 뾰로통해졌다. 그래서 시녀 한 명이 음료수를 권하며 달래고 있는 중이다. 이때 또 한 명의 시녀가 정면 쪽을 보면서, 즉 이 그림을 보는 우리의 위치에 나타난 누군가를 보면서 황급히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한다. 공주의 시선과 난쟁이 여인의 시선과 저 멀리 문을 나서려던 사람의 시선도 그 누군가를 향한다. 그 누군가는 바로 벽 가운데 걸린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다.

반면 또 다른 미술사학자들과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그림 속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대상이 왕과 왕비라고 봤다. 왕과 왕비는 우리 관람자의 위치에서 벨라스케스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가 어느덧 지루해져서 어린 딸을 불러들였고, 방금 도착한 마르가리타가 부모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면을 바라보며 인사를 하는 시녀는 지금 막 공주를 모시고 온 시녀일 것이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이 그림은 마치 스냅 사진 같은 자연스러운 순간 포착인 동시에 그림 속 그림의 대상(첫째 해석대로라면 공주, 둘째 해석대로라면 왕과 왕비)과 대상을 그림으로 재현하는 화가(벨라스케스)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첫째 해석대로라면 왕과 왕비, 둘째 해석대로라면 공주)가 모두 한 화면에 다시 재현되도록 정교하게 기획된 것이라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푸코는 이것이 “모든 것을 재현하고자 했던 고전시대의 욕망을 압축한 것”이라고 평했다.

누가 그림 주인공인지 여러 가지 해석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인판타의 생일』 표지. [사진 보헴프레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영감 받은 예술작품은 참 많다. 피카소의 오마주 그림 연작, 이브 서스먼의 단편영화 등등. 그 중에서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단편 『인판타의 생일』(1891)은 마르가리타 공주와 그림 오른쪽의 두 난쟁이에서 특히 영감을 받은 것 같다.

동화는 이런 내용이다. 인판타, 즉 공주의 열두 살 생일에 궁정 뜰에서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각종 공연이 이어진다. 공연의 끝은 한 꼽추 난쟁이 소년의 춤이었는데, 소년이 뒤틀린 신체로 해맑고 유쾌하게 춤을 추는 모습에 공주와 귀족 아이들은 정신없이 웃어댄다. 깊은 숲에서 가난한 숯쟁이의 아들로 거울도 없이 살다가 이날 파티의 구경거리로 팔려온 소년은 자신의 외모를 알지 못하고 사람들이 웃는 이유도 알지 못한다.

공주는 장난삼아 자기 머리에 꽂았던 하얀 장미를 던져주고 점심 식사 후에 또 춤을 추라고 명령하며 궁전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소년은 공주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공주를 자기가 살아온 숲으로 초대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에 궁전 안으로 들어간다. 곧 소년은 스페인 바로크 궁전 특유의 압도적인 장려함에 놀라게 되지만 숲의 자연미가 더 좋다고 생각하며 공주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 소년은 난생 처음으로 거울을 접하게 된다. 거울에 나타난 기괴하게 일그러진 형체를 보고 혼란에 빠졌다가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공주의 웃음의 의미를 깨달은 후 소년은 바닥에 쓰러져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이때 방에서 나온 공주와 귀족 아이들이 그걸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춤 뿐만 아니라 연기도 웃기게 잘 하네. 하지만 이제 일어나 춤을 추렴.” 하지만 난쟁이 소년은 축 늘어져 잠잠해졌고 그를 살펴본 신하가 공주에게 고한다. “이 아이는 심장이 부서져버렸기 때문에 더이상 춤을 못 춥니다.” 그러자 공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앞으로 나와 놀러 올 아이는 심장이 없는 아이여야 해.”

그런데 이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읽다 보면 한 가지 모순점이 느껴지는데, 스페인 왕궁의 음울한 화려함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정교하고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와 대립되는 숲의 자연미에 대한 묘사가 뒤따르고, 신분도 돈도 외모도 갖지 못한 소년의 비극과 가진 자들의 비정함이 대미를 장식하지만, 그럼에도 그 바로크 궁전과 왕족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거의 페티시적이다-당장 배달앱을 클릭하고 싶을 정도로 양념치킨의 맛을 황홀하게 묘사한 후 공장사육 닭의 비극과 급결합해 마무리하는 것처럼.

이런 특징은 오스카 와일드의 또 다른 동화 『젊은 왕』에 강하게 나오고 『행복한 왕자』에도 살짝 나타나며, 장편 『도리안 그레이』에도 꽤 나온다. 와일드가 탐미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다는 것을 안 후에야 비로소 그 기이한 결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치 없는 아름다움이란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타고난 유미주의자였던 와일드가 자신의 미적 욕구와 사회주의 신념이라는 모순된 두 가지를 애써 결합하는 방법이 이것이었으리라.

와일드는 궁정화가로서 왕족을 그리면서도 그 시종들과 주변인들을 같은 비중으로 그린 벨라스케스의 정신에서도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시녀들’은 누가 이 그림의 진정한 주인공인지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온다. 언뜻 보기에는 그림 중앙에서 밝은 색 드레스를 입고 빛을 받고 있는 어린 공주인 것 같지만, 다음 순간에는 환하게 빛나는 거울 속 왕과 왕비인 것도 같고, 그 다음에는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며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는 벨라스케스 자신인 것 같기도 하다. 또 이질적인 외모의 난쟁이 여인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옛 유럽 궁정에는 난쟁이 광대가 여흥을 돋우는 역할로 상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벨라스케스는 장난감 취급을 받는 그들도 한 인간으로서 진지하게 그리곤 했다. 바로 이런 점이 이 그림이 끝없이 영감의 원천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미술전문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학·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컬리지 문화학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2014), 『명화독서』(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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