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로봇에 애착 갖는 아이, 사회성 발달에 득 될까 독 될까

2022. 11. 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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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14〉 AI시대 아이와 로봇

AI시대 아이와 로봇
“데이비드는 11살입니다. 이 아이의 몸무게는 60파운드입니다. 이 아이의 키는 4피트 6인치입니다. 이 아이의 머리카락은 갈색입니다. 이 아이의 사랑은 진짜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진짜가 아닙니다.”

2001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에이아이(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북미 포스터에 적힌 문구이다. 하비 박사의 사랑을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탄생한 최초의 감정형 아이 로봇 ‘데이비드’에 대한 이야기다. 데이비드는 스윈턴 부부에게 입양되어 모니카를 엄마로 인식하고 모니카의 사랑과 애정을 갈구한다. 그는 호기심이 많아 인간의 모든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습득한다. 식사시간에 식탁에 함께 앉아 음식 먹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 인간의 가정에 융화하려고 애쓴다. 그러던 중, 불치병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돌아온 외아들 마틴과의 사건으로 오해를 받은 데이비드는 파양되어 숲 속에 버려진다. 데이비드는 엄마의 사랑을 되찾을 방법은 오직 인간이 되는 것 밖에 없다고 믿으며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데이비드는 영화 내내 엄마를 향해 처절할 정도로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아이의 모습 그 자체를 보여준다.

영아기 안정적 애착 형성 안 되면 문제

감정형 로봇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에이 아이’. [사진 워너브라더스]
20년도 넘은 이 고전영화를 상기시킨 것은 작년에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던 SF 소설 『클라라와 태양』이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이다. 이야기는 내내 AI 로봇-소설 속에서는 AF(Artificial Friend)로 부른다- 클라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클라라가 자신을 입양한 소녀 조시의 병을 낫게 하려고 헌신하면서 관찰하게 되는 복잡하고 모순된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 ‘에이아이’에서 부부가 아이 로봇을 입양해 외아들을 대체하려고 했던 것처럼, 『클라라와 태양』에서의 조시 엄마는 아픈 딸이 여행에 동행하지 못하는 날에는 클라라에게 딸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현재 공연 중인 창작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조광희 작가의 SF 법정소설을 각색한 것인데, 역시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탐구한다. 인간 ‘한시로’는 자신을 복제해 제작된 안드로이드 ‘아오’와 소통을 하다 더욱 강한 교감을 원해 ‘아오’에게 법으로 금지된 ‘의식생성기’를 설치하게 된다. ‘한시로’가 과거에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토로했음에도, ‘아오’가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반응하자 실망을 느끼고 그에게 의식을 부여한 것이다.

위에 언급한 세 개의 작품은 모두 인간 중심적인 욕망과 모순을 잘 드러낸다. 게다가 미래에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인간의 로봇에 대한 애착과 좌절감, 착취적 태도까지 잘 그려낸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로봇에 정서적 애착을 느끼는 것일까?

본래 애착(attachment)이란 영아와 양육자 사이의 애정에 찬 유대를 의미한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존 볼비(John Bowlby)가 주창한 애착 이론에서 비롯되었다. 애착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현상으로서 발달 시기 중 영아기의 생존에 절대적인 기초가 된다. 영아기의 중요한 발달과업은 일차 양육자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이루는 것이고 이를 통해 애착이 형성된다. 애착은 사람의 신체적 발달이나 심리적, 성격 발달 모두에 영향을 끼친다. 애착을 통하여 아이는 충분한 영양공급과 정서적 자극을 받으며 생존할 수 있게 되고, 엄마로부터 사랑이 가득한 보살핌을 받아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과 안정감을 얻는다. 이런 기본적 신뢰감은 성격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이루고 모든 사회성 발달의 첫걸음이 된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관계와 유대감을 갖게 되는 대상은 양육자에서 타인들로 점차 확대된다. 영아기에 안정적인 애착형성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성장하면서 접하는 다양한 애착 대상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유아기에 어린이집에 가서 또래로부터 쉽게 위협감을 느끼거나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놀이나 장난감을 탐색하지 못하기도 한다. 정상적으로 발달한 유아들은 장난감을 의인화해서 역할을 부여해 놀기를 즐긴다. 이른바 ‘상징놀이’ 또는 ‘가상놀이’를 하는 것이다.

내 진료실에는 국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꼬마버스 타요’에 등장하는 자동차 장난감 캐릭터들이 많이 있다. 모든 캐릭터에 이름이 부여되어있고 버스 전면에 눈·코·입이 그려져 있다. 작품 속 자동차들은 자율주행 기능을 가진 고성능 AI 탑재 자동차들로 설정되어 있지만 모형 장난감들은 그저 건전지를 넣어야만 소리를 내는 장난감 자동차일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진료실 안을 둘러보다 타요 버스 세트를 발견하면 흥분한다. “와, 타요다!”라고 외치며 모든 버스들을 꺼내고 각자의 방식으로 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의 놀이 장면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직접 상호작용 놀이를 시도하며 아이의 언어와 사회성 발달, 상징놀이 수준 등을 평가한다.

인간, 로봇과 교감하는 ‘일라이자 효과’

감정을 교류하고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는 소셜 로봇 ‘리쿠’. [중앙포토]
몇 달전 내원했던 찬혁이가 생각난다. 만 4세가 채 안 된 유아였다. 양 손에 미니 자동차를 쥔 채 들어왔다. “찬혁아, 안녕?” 나는 다정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엄마와 함께 꾸벅 인사를 했다. “어, 덤프트럭이 있네”라고 찬혁이가 말했다. “응, 그래. 찬혁이는 이 트럭 이름을 알아?” 나는 장난감 박스를 사이에 두고 아이 맞은편에 앉았다. “네. 맥스예요”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맞아. 버스 이름들을 다 아는구나?” 나는 대견해하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나는 찬혁이와 타요 버스 세트들을 가지고 신나게 놀이를 진행했다. 공사장에서 레미콘과 포크레인이 등장했고 다른 캐릭터들은 공사가 다 끝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었다. 찬혁이는 버스의 의인화를 제법 잘했다. 포크레인은 흙을 너무 많이 파다가 힘들어서 앨리스(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야한다고 했다. 빙그레 웃기만 하던 엄마가 병원의 의사 역할을 했다. 찬혁이는 놀이 내내 ‘앨리스’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러더니 진료실을 나갈 때, 앨리스를 가지고 가고 싶어했다. “엄마 나 이거 가지고 갈래” “찬혁아 그건 여기 선생님거야. 두고 가야해. 다른 아이들도 가지고 놀아야지” 엄마가 아이를 달랬다. 찬혁이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앨리스를 좋아하는구나, 찬혁이가. 선생님도 구급차 좋아하는데. 우리는 같은 것을 좋아하네.” 울먹이던 찬혁이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내 앞에 앨리스를 툭 놓고 나간다. 타요 버스 캐릭터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차 전면에 눈, 코, 입이 있고, 캐릭터마다 이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이 버스 캐릭터 하나하나에 강렬한 애착을 갖게 되고 좋아하는 버스와 헤어질 때 좌절감마저 느낀다.

동료 의사로부터 해외 연수 기간 타지에서 너무 외로운 나머지 한국에서 구입해 가져간 로봇 청소기와 교감을 했다는 일화를 들었다. 일종의 일라이자 효과(ELIZA effect)인 것일까? 일라이자 효과란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로봇의 행위를 인간의 행위와 유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의인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1966년 컴퓨터 공학자 요제프 바이첸바움(Joseph Weizenbaum)교수는 ‘일라이자’라는 상담하는 AI를 만들었다. 그는 원래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피상적인 것이고 허술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라이자는 그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라이자와의 채팅 상담을 즐겼고, 심지어 정서적 애착을 갖게 되었다. 바이첸바움 교수는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AI에게 사람들이 진지한 애착을 갖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일라이자 프로젝트를 접고 AI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자신의 저서 『컴퓨터의 힘과 인간의 이성』에서 ‘인공지능에게 윤리적 판단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치게 되고 인공지능 비판론자가 된다.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감성 로봇과 소셜 로봇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상상해보자. 현실에서 대인관계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감성 및 소셜 로봇은 이득이 될까, 독이 될까. 이런 로봇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아이들의 애착 욕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과연 자신할 수 있을까. 감성-소셜 로봇이 인간에게 가져다 줄 이득과 별도로 위험성과 안전성에 대한 균형적 시각이 중요하다.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로봇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고도의 윤리와 통찰력이 절실하게 요구될 것이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의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 가정법률상담소 교육위원, 법무부 여성아동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 『아이 마음을 다 안다는 착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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