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기업에 팔린 전기로 국내 가동 '뒤통수'

우경희 기자 2022. 11. 1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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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동 당시 동부제철 전기로./사진=머니투데이DB

8년간 멈춰있던 옛 동부제철 전기로가 영국기업에 의해 재가동된다. 국내 수요의 30%에 해당하는 열연강판이 추가로 쏟아져나오면서 철강업계에 '치킨게임'이 벌어질 전망이다. 탄소배출 주범으로 분류되며 철강업에 대한 글로벌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이다. 법정관리기업 처분에 급급해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탄소배출을 늘리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KG스틸(옛 동부제철)과 영국 리버티스틸 간 전기로 매각이 사실상 결정돼 연내 본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 동부제철 전기로는 옛 동부그룹(현 DB그룹) 영욕의 상징이다. 그룹의 명운을 걸고 시도한 일관제철소 구축의 핵심이 이 전기로다. 당시 1조2000억원을 들여 2009년 연산 300만톤 규모로 가동했다. 이후 그룹이 경영난을 겪으며 이 투자부담이 부메랑이 됐다. 경영위기 속에서 전기로도 결국 2014년 가동을 멈췄다.

제철소의 주인이 바뀌고 중국과 파키스탄 등으로 매각이 추진됐지만 매듭은 지어지지 않았다. 결국 영국 리버티스틸이 새 주인이 된다. 매각대금은 전기로 600억원에 부지 장기임대료 등을 합쳐 총 8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1조2000억원짜리 전기로가 800억원에 팔리는 셈이다. 업계는 저부가가치 제품인 열연강판 수요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으로 여긴다. 철판을 둘둘 말아놓은 형태인 열연강판은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철강재 중에도 가장 기본적인 철강재다. 고도성장 산업화시대엔 공급이 딸릴 정도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국내 기업들이 거의 대부분 고부가가치 소재에 집중하면서 수요가 크게 줄고 있다. 2017년엔 1304만톤이던 국내 열연강판 총수요는 지난해 1064만톤으로 떨어졌고 올해 999만톤으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리버티스틸이 옛 동부제철 전기로를 인수해 루마니아로 이전할 것으로 알려졌을 때까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최종 국내 재가동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산업계 전반의 우려가 고조된다. 연 300만톤의 열연이 국내시장에 쏟아져나올 경우 공급과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강재값이 뚝 떨어지고 원료인 고철 수입가격은 크게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리버티스틸은 당초 유럽에 있는 공장들에 열연을 공급하기 위해 전기로 인수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는 이 계획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EU 및 영국 철강재 수출 쿼터 규제를 감안하면 수출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전기로가 재가동되면 국내는 물론 근거리 해외시장에서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철강 치킨게임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금 국내 열연 공급이 추가되면 출혈경쟁으로 산업생태계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수출할당량 초과에 따른 통상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불황기 가격경쟁 심화로 반덤핑 이슈가 제기될 경우 업계 전반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의 철강업 탄소중립 추진계획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전기로는 산업계 대표적인 전력소모설비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이 수소환원제철 등 미래형 제철기술 도입에 집중하는 건 이 때문이다. 십수년 전에 지어진 전기로 재가동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역행하는 결정이라는 우려도 있다. KG스틸 지분을 일부 보유한 산업은행이 국내 철강 산업에 미칠 파장을 감안해 적극 의견을 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도 매각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철강업체 관계자는 "지금 추진 중인 전기로 매각은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며 "설비를 굳이 매각하겠다면 해외로 이전,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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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희 기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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