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축제와 참사

2022. 11. 1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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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희생자 비난은 비열한 짓
치안 권력의 무능이 부른 참사다

어느 날 우리에게 재앙으로 변한 축제와 참사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주기적으로 개기일식과 개기월식을 겪는 지구라는 별에 온 생명들이다. 우리는 이 별에서 사랑과 이별을 겪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음식을 먹으며, 얼마간의 사유재산을 모으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며 삶을 살아낸다. 불멸의 영혼을 얻지 못한 채 이 별에 온 게 우리 책임은 아닐 테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어떤 인지도 없는 염소나 바위가 아니라 하필이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로 태어난다. 그리하여 천재건 괴짜건 간에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실존의 조건으로 굳어진다.

축제는 사람, 의식, 장소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첫 번째 조건으로 노동과 생산의 강제에서 풀려난 자유로운 이들이 있다. 이들은 축제에 대한 기대로 들뜬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모인다. 핼러윈 축제의 핵심인 애초의 ‘신성한’ 의식은 사라지고 오늘날엔 ‘환락과 유희’가 그것을 대체한다. 이국 취향의 축제를 즐기기에 화려한 이국 풍물로 넘치는 이태원만큼 좋은 장소를 찾을 수는 없을 테다. 어쨌든 2000년이나 되는 오래된 이 축제를 즐기러 젊은이들은 이태원으로 한꺼번에 몰렸다.
장석주 시인
축제는 삶의 권태와 지루함과 덧없음에 대한 보상이다. 축제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 보상을 골고루 나눈다. 축제에 참가한 이들은 통제할 수 없는 신명에 자기를 바치며, 다시 오지 않는 찰나들 속에서 자아와 욕망, 행복에의 기대를 한껏 뿜어낸다. 이런 기대와 흥분으로 축제는 삶의 집약과 고양 속에서 과몰입과 과잉을 향해 달려간다. 축제 시간은 즐김과 향유의 시간이고, 삶을 과시하는 표현들로 넘쳐흐르는 시간이다.

이태원에 몰린 과밀 인구로 인해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참사로 156명이 생명을 잃었다. 평온한 일요일 새벽에 뉴스로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 일어난 참사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황당해서 긴가민가했다. 도심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라니! 과연 이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내 마음은 잿더미로 변하고, 피가 한꺼번에 머리로 몰리는 듯했다. 눈은 침침하고, 단풍마저도 잿빛으로 비쳤다. 참담함과 슬픔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종일 허둥지둥하며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미칠 것 같았지만 미치지는 않았다. 나라 사회안전망의 허술함과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에 어이가 없고 화가 솟구쳤다.

본디 이 축제는 아일랜드 켈트족의 샤먼을 섬기는 의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귀신 복장과 무서운 분장을 한 젊은이들이 가장무도회같이 즐기는 행사다. 희생자에게 왜 우리 축제도 아닌 데를 갔느냐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희생자 비난은 이 참사 책임에서 도망치려는 비열한 짓이다. 참사는 통제되지 않은 혼란과 압도적인 무질서에 꼼짝달싹 못하게 포박된 채로 당한 것이다. 희생자들 중 일부는 위기를 감지하고 구조 요청을 했다. 하지만 그 구조 요청에 응답을 받지 못한 채로 그들은 희생당했다. 그들을 덮친 재난에 불가항력적으로 휩쓸리는 불행으로 어처구니없이 압사당한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대통령은 참사 보고를 받은 뒤 곧바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지만 사과는 늦게 나왔다. 시민들은 추모공간에 나와 희생자들을 위해 헌화를 했다. 정부가 희생자를 기리는 분향소를 설치하고, 애도의 뜻으로 추모 리본을 다는 것으로 제 할 일을 다한 것이라는 생각은 몰염치한 일이다. 나는 진리가 편파적이라고 믿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한책임이 있지만 참사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며 책임의 몫을 슬쩍 뭉개려는 자들, 참사 수습이 먼저라면서 직무적·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자들을 용서하지 말자. 책임의 몫을 나눠야 마땅한 자에게는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책임을 묻자. 참사가 일어난 원인은 한 점의 모호함도 없다. 멍청아, 그건 치안 권력의 무능과 무사안일, 직무에 대한 나태함이 부른 참사야!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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