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일등석 벗어나 운전석으로 간 주인공 “이제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거야”[그림책]

유수빈 기자 2022. 11. 1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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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석 기차 여행
다니 토랑 글·그림, 엄지영 옮김
요요 | 72쪽 | 1만8000원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차창 밖을 응시하는 여성의 이름은 클레멘티나 델피,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는 평생 행정 공무원으로 일해 온 델피의 딸이다. 델피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딸에게 좋은 신랑감을 구해 주는 것이 삶의 목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딸에게 상류사회의 매너와 에티켓을 가르친다. 그렇게 클레멘티나 델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길러진다’.

그러던 중 전쟁이 발발하고, 도시는 폐허가 된다. 클레멘티나는 모든 것을 ‘잃는다’. 집, 아버지, 아버지의 인맥 그리고 약속된 미래와 이별한다. 그는 이웃이 내어 준 작은 다락방에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결심을 품고 밖으로 나선다. 아버지가 저축해 놓은 돈을 모두 찾아 절반으로는 민트색 실크 드레스 한 벌과 모자를 사고, 나머지를 탈탈 털어 일 년 동안 일등석을 타고 여행할 수 있는 기차표를 구입한다.

그는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는 동안 일등석에서 은행가, 장군, 왕을 차례로 만난다. 남성들은 하나같이 클레멘티나에게 여행을 끝내고 영원히 함께 살자고, 그러면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들을 주겠다며 달콤하게 속삭인다. 그들은 클레멘티나에게 정원의 예쁜 꽃, 아름다운 조각상, 왕관의 화려하게 빛나는 보석이 되어주기를 제안하지만, 클레멘티나는 누군가의 반짝이는 소유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

책은 주인공 바깥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이제껏 사회가 ‘현실 속 클레멘티나’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주듯 여성의 꿈, 욕망이 직접 말해지는 대신 그를 욕망하는 권력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따라서 안온한 일상을 잃어버린 여성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클레멘티나가 원하는 옷을 입고 자신의 미래를 직접 결정할 때야말로 비로소 진짜 삶을 되찾은 것처럼 느껴진다.

시행착오 끝 일등석 바깥의 세계로 나온 클레멘티나는 일등석보다 더 앞의 칸에서 기차의 운전대를 잡는다. 진짜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상은 우리들 것이야.” 기적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질주한다.

거친 듯 부드럽고, 뭉툭한 듯 섬세한 선들로 그려진 일러스트는 주인공의 심리와 계절의 변화를 포근하게 담아냈다. 2022 볼로냐 아동 도서전이 선정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다니 토랑이 그림을 그렸다.

유수빈 기자 soo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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