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참사 후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음악'
[EBS 뉴스]
이혜정 앵커
10.29 참사 이후 국가애도기간 동안 대중음악 공연 취소가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음악과 공연도 애도의 한 방식"이라며 공연 취소를 압박하는 분위기에 반대하는 주장도 있었는데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조희정 교수와 이야기 나눠봅니다.
10.29 참사 후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거나 음반 발매를 연기하는 음악인이 적지 않았죠.
반면 예정대로 공연을 진행한 음악인도 있었어요?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네. 그 외에도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창작자들은 애도기간 내에 영상 게시를 하지 않거나, 웹툰, 웹소설 작가들도 작품에 핼러윈을 연상케 하는 요소를 빼거나 휴재를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지역 축제나 행사, 거리공연 등도 취소되었고요.
이혜정 앵커
그렇긴 한데, 이들에게는 공연이 '업'이거든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며 이러한 애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 예술인이나 대중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사실 생각해보면 애도기간에도 저희 같은 직장인들은 일터로 나갔고, 학생들도 학교에 갔죠.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적 참사가 벌어진 직후에도 자연스럽게 생업을 이어간 것처럼, 예술 또한 누군가의 '업'으로 간주하면 타당한 시각이라고 보여집니다.
또 앞서 언급된 예술인은 "하기로 했던 레퍼토리를 다시 생각하고 매만져본다. 무슨 이야기를 관객에게 할까 한번 더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방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음악가는 음악을 유흥이나 여흥의 수단이 아닌 '이야기'라고 표현했어요.
즉 음악을 통해 사회적 참사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내고 싶었던 거죠.
예술의 본질적인 속성이 무엇이냐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이혜정 앵커
전쟁 또한 사회적 참사죠.
그런 맥락에서 저는 지난 5월 전쟁이 한창인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록밴드 U2의 공연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굉장히 화제를 많이 모았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지하철역에서 U2의 즉석 공연이 있었는데요.
키이우 역은 시민들이 러시아의 포화를 피하는 방공호로 사용되었는데, 록밴드 U2가 여기서 40분간 깜짝 공연을 한 겁니다.
이 공연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초청으로 성사됐고, 우크라이나 현지 방송과 SNS를 통해 중계되면서 국제사회의 화제를 모았습니다.
U2는 러시아의 전면 침공에 맞서 용맹하게 조국을 사수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공연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사회적 참사에 자유의 메시지를 음악가로서 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혜정 앵커
그러고 보면, 음악으로 위로를 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도 그렇죠?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네, 맞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일화인데요.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공격으로 900일간 레닌그라드가 봉쇄가 됐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사망자가 넘치고 먹을 식량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러시아에서는 공격과 굶주림, 추위로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죽었고요.
쇼스타코비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교향곡 7번을 헌정했습니다.
당시 첫 연습에 나온 단원들이 오랜 기간 전쟁이 지속되다 보니 15명 밖에 없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병사들과 일반인까지 끌어모아 1942년 10월 9일 레닌그라드에서 이 곡을 초연을 합니다.
러시아 군인들은 적에게 선제공격을 하여 이 연주가 중단되지 않게끔 했다고 합니다.
당시 연주됐던 필하모닉 홀은 전쟁 중임에도 사람들로 가득 찼고, 이 연주는 스피커를 통해 레닌그라드 전체에 중계됐고요.
시민들은 공포와 기아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예술을 사랑하는 자존심으로 살아갈 힘을 얻은 케이스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혜정 앵커
전쟁뿐 아니라 코로나19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탈리아에서 하루하루 사망자와 누적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던 그런 상황에서, 주민들이 발코니나 창문에 '다 잘될 거야'라는 그림을 걸어두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각 집의 발코니에서 플래시몹하던 사람들도 생각이 납니다.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네, 맞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보인 플래시몹은 '정오에 전국의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에게 박수치기, 오후 6시에는 '다 괜찮을 거야!'를 외치며 노래 부르기, 냄비나 악기 두드리기, 오후 9시에는 촛불을 들고 발코니로 나와 노래하기 등 서로를 격려하고 희망을 찾아가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위기나 참사 앞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를 위로하며 음악을 통해 사회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용기를 주는 시도지요.
이혜정 앵커
핵심은 노래를 부르느냐 아니냐가 아닌, 재난을 둘러싼 상황에서 공동체가 이런 희생자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떠한 교훈을 찾아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네, 맞습니다. 저도 그 말씀에 너무 동의하고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 안는 마음은 공감이라는 요소에서 나오는데요.
독일의 사회학자는 소설과 공연, 전시회 등의 예술이 매개하는 공론장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문예적 공론장이다, 이렇게 명명했습니다.
예술공론장은 공리의 규범보다는 공감의 윤리에 입각해서 상호작용하는 소통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사회적 참사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문예적 공론장에서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한 방식으로 음악, 공연 등의 애도의 방식, 메시지 발현의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한 번쯤 생각해보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혜정 앵커
네, 교수님의 말을 듣다 보니 우크라이나의 무너진 학교 건물 앞에서 하얀 옷을 입고 졸업 공연을 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다시 서게 하는 힘이겠죠.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Copyright © E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