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백신 주권’ 확보의 최전선을 가다

오송(충북)=김양혁 기자 2022. 11. 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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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청 국립보건연구원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국산 1호 코로나 백신 개발 지원
10평 미만 공간서 방역복 중무장한 2인 1조 근무
실험실 내부서 치명적 바이러스 다뤄
백경란 청장 “과학적 근거로 투명성 강화”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내 생물안전 3등급 시설(BL3)에서 연구 중인 연구진들. /오송(충북)=김양혁 기자

이달 9일 오전 충남 오송 국립보건연구원 산하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대형 유리창 너머 작은 거실만한 공간에선 우주복처럼 보이는 흰 보호복을 입은 연구원 두 명이 외부와 차단된 채 생물안전작업대에서 샘플을 놓고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이 입은 보호복에는 외부 공기가 옷 안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도록 걸러주는 호흡장치가 별도로 달려 있었다.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창문 밖에서 불과 50㎝도 되지 않는 이 방에선 인체에 치명적인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를 다루고 있다. 연구진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이유다. 연구자들의 복장과 조심스러운 행동만 봐도 생명을 위협할 만 한 꽤 위험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백신 주권’ 확보를 위해 최전선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연구진들의 모습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이날 한국과학기자협회(회장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와 간담회를 열고 과학·의학 기자들에게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를 공개했다.

보건연구원은 질병관리청의 ‘두뇌’ 역할을 한다. 국민 보건을 위협하는 다양한 바이러스부터 백신 효능 분석까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의료·보건 정책의 기초자료를 생산하는 연구·개발(R&D) 업무를 맡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감염병 백신 개발을 위한 비임상과 임상에 이르는 연구 단계부터 품목허가와 수출, 상용화까지 전 단계를 지원한다. 백신연구개발총괄과, 감염병백신연구과, 병원체자원관리과, 백신임상연구과 등 4개과에서 73명이 일하고 있다.

이유경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백신연구개발총괄과장은 “백신 개발의 기술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효능 평가를 지원한다”며 “정책 수립부터 수출 정책까지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 “기업들은 돈이 되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돈 안 되는 백신도 개발해야 한다”며 “센터 명칭에 ‘공공’과 ‘지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전경. /국립보건연구원

연면적 8490.61㎡, 지하 1층~지상 4층의 센터에는 BL(생물안전) 2등급과 3등급 실험실을 비롯해 국내에서 유일한 BL4 등급 실험실이 있다.

BL 인증은 1등급부터 4등급으로 구성되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위험한 물질을 다룬다. 2등급까지는 간단한 가운 착용만으로도 충분하지만, 3등급부터는 완전히 몸을 격리해야 한다. BL3가 다루는 대표적인 바이러스는 코로나, 사스, 메르스를 비롯, 탄저균 페스트균이다. 바로 인근에는 BL4도 있는데, 국내서 1개 밖에 없는 시설이라고 한다.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취급하는 최고 등급 실험실이다.

연구진들은 매일 언젠가 마주할 또 다른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실험실로 들어간다. 보통 2명이 1개조를 이뤄 실험실로 들어가 최대 4시간 동안 연구를 진행한다. 4시간은 실험실 활동의 마지노선이다. 실험실에 들어가려면 두꺼운 보호복을 입고 허리춤에 원활한 산소 공급을 위한 3㎏의 장비를 매야 한다. 장비도 무겁고, 숨쉬기도 힘들어 실험실로 들어가는 일은 연구원들에겐 곤욕이다.

실험실로 일단 들어가면 외부와도 완벽히 단절된다. 내부로 들어갔다 나오는 물품은 혹시 모를 바이러스 유출을 위해 고열로 소독을 하는데 이런 이유로 스마트폰은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다. 함께 조를 이룬 동료와 대화를 나누거나 외부 도움이 필요할 때는 실험실마다 설치된 전화를 쓴다.

현재 센터에는 BL2와 BL3 인증을 받은 실험성 총 6개가 있는데 이마저 부족해 일부 공간을 개조해 2곳으로 늘리는 공사를 연말까지 진행 중이다.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내 항체 분석 판. 12개의 각 공간에 세포를 채워 넣고 세포가 죽으면 나오면 구멍을 관찰한다. 바이러스에 의해 구멍이 생긴 것은 모두 수기로 세고, 여러 차례 검증도 거쳐야 해 상당 시간 걸린다고 한다. /오송(충북)=김양혁 기자

센터가 설립된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이 세계를 강타한 2020년 10월으로 올라간다.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은 같은 해 2월 원장에 취임하면서 BL3등급 시설(BL3)과 임상검체분석기관(GCLP) 인증을 조기에 완료할 것을 지시했다. 지난해 5월에는 당초 계획보다 반년 이상 앞서 인증을 마쳤다.

센터가 예상보다 빨리 인증을 받으면서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 개발도 속도가 났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당시 개발 중이던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 임상 3상 시험에 참여한 4000명분 혈액의 중화항체 분석을 의뢰한 것이다. 권 원장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백신 허가를 받으려면 관련 시설을 갖춘 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국내에서 임상시험검체의 분석 신뢰성을 뒷받침할 GCLP 인증을 받은 BL3급 시험시설을 보유한 기관은 이 센터와 국제백신연구소(IVI) 두 곳에 불과하다. 이 중 센터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임상실험 참여자 80%의 혈액 분석을 수행했고 IVI가 나머지 20% 분석을 맡았다.

이 과장은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의 허가가 제때 나오지 못할뻔 했다”고 말했다.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은 센터 연구진이 흘린 구슬땀의 결실이기도 하다.

이 과장은 “감염병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며 “경제는 회복탄력성이 있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바뀌면서 관련 연구 예산과 지원이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백경란 질병청장은 “센터가 연구개발을 진행하며 코로나19 보건 위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앞으로의 위기에도 대비하고 있다”며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정책을 뒷받침하고 정책 투명성을 높여 신뢰를 얻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9일 백경란 질병청장이 오송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자협회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립보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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