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총재 "물가·환율 안정"···올 마지막 금리 '동결' 할까
◆24일 금통위에 초미관심
환율 일주일새 100원 넘게 급락
통화긴축 속도조절 가능성 커져
KDI도 "경기둔화 대비를" 권고
"가계부채·자금시장 경색 등 고려
금리 동결 후 지켜봐야" 설득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미국의 인플레이션 둔화 소식은 분명히 좋은 뉴스”라며 “최근의 원·달러 환율 하락도 좋은 사인(신호)”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가파른 금리 인상의 배경이 됐던 물가와 환율 악재가 다소 해소되고 있는 만큼 한은도 통화 긴축의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두 번째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 결정의 근거로 삼았던 원·달러 환율이 일주일 만에 100원 넘게 급락하며 달러 수급의 숨통이 트인 것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당장 오는 24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리는 ‘베이비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아진 가운데 폭증하는 가계부채와 자금 시장 경색 등 대내 경제 상황을 고려해 금리 동결 카드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과 한국경제학회가 공동 개최한 국제콘퍼런스 개회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둔화됐다는 소식은) 단기적으로는 분명히 좋은 뉴스”라면서 “다만 얼마나 오래될지, 국제시장과 국내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지켜본 뒤 24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7.7% 올라 시장 전망치(7.9%)를 밑돌았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7%대로 떨어진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7.9%) 이후 8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로써 미국의 인플레이션 국면이 정점을 찍은 게 아니냐는 기대와 맞물려 최근 4연속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다음 달 ‘빅스텝’으로 보폭을 좁힌 뒤 긴축의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이 총재도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과 환율이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도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물가와 더불어 통화정책의 주요 변수인 환율이 최근 안정세를 찾아가는 점도 한은의 금리 인상 부담을 덜어주는 또 다른 요인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59원 10전이나 급락한 1318원 40전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낙폭으로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 10일(70원 50전) 이후 14년 만에 최대치다. 4일 종가(1419원 20전)와 비교하면 일주일 새 100원 넘게 급락했다. 이날 환율은 장중 1312원 20전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최근의 환율 하락에 대해 “지난달 환율에 비해서는 조금 많이 안정됐다”며 “좋은 사인으로 예상했던 쪽으로 가고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의 불씨가 됐던 물가와 환율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24일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은도 다소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3.0%로 미국의 상단 4.0%보다 1%포인트 낮은 상황이다.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 둔화로 다음 달 자이언트스텝 대신 빅스텝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은도 통화정책 결정에 여유가 생긴 셈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전날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낮추면서 경기 둔화에 대비해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금리 동결 카드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선 현재 최대 1%포인트 격차가 벌어진 한미 간 정책금리와 달리 시장금리는 격차가 좁거나 한국이 더 높은 경우가 있는 만큼 미국이 긴축 속도를 무리하게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10일 기준 3년물 국채금리의 경우 미국(4.20%)과 한국(4.03%)의 격차는 0.17%포인트에 불과하다. 또 5년물이나 10년물의 경우 오히려 한국이 미국보다 더 높게 형성돼 있다. 더욱이 기업 자금조달 환경이 얼어붙으면서 기업어음(CP) 금리가 치솟는 마당에 금리 인상의 페달을 계속 밟으면 가뜩이나 불안한 시장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라 폭증하는 가계부채와 원·달러 환율 급락으로 달러 수급 여건이 개선된 점도 금리 동결 주장을 뒷받침한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금융학회장)는 “예상보다 낮은 미국 물가로 다음 달 연준의 자이언트스텝 가능성이 줄어든 만큼 우리도 급하게 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줄었다”면서도 “여전히 국내 소비자물가가 5%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하락세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동결보다는 인상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상 기자 kim0123@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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