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긍정 마인드의 아이콘' 이영훈

정완주 기자 2022. 11. 1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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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 때 두려운 최대의 적은 ‘자만’”
초심으로 돌아가 깬다
프로당구 선수 이영훈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주인공이 젊은 날 고뇌를 통해 알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성장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주제를 담았다. 홍안의 청년이 되자마자 당구 선수의 길을 걸어 온 이영훈(31) 선수도 '데미안'의 과정을 밟고자 한다. 나이가 30대로 접어들었지만, 실력이 한 단계 더 향상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과감하게 껍질을 벗어 던지는 '탈각'을 통해 정상권 선수로 거듭나기를 스스로 약속했다. 당장 부진해도 실망하지 않았다. 꾸준한 연습으로 흘린 땀은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되새겼다. 아마추어와 프로 선수 경력을 통틀어 8강의 벽에 갇힌 스스로가 해방되는 유일한 길이다. '자만' 대신 '부족함'과 '겸손',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무장한 그는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큐를 잡는다.

부모의 반대로 집에서 쫓겨나

울면서 선발전 우승해 선수 등록

이영훈의 아버지는 당구장을 운영했다. 4~5살부터 그의 장난감은 당구공이었다. 3쿠션은 9살에 시작해 중학교 시절까지는 그저 취미로 즐기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바뀌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진지하게 당구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당구에 약간 자신감이 높아진 시기였고 당시만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자'라는 인생관이 작용한 것 같아요. 매일 연습을 시작했는데 따로 스승을 만나 배우기보다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따라 하면서 내 것으로 체득했죠."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달랐다. 당구 선수의 길이 쉽지 않고 생활도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반대가 컸다. 그래도 이영훈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서울당구연맹이 주최한 신인 선수 선발전을 앞두고 결국 사달이 났다.

"평소처럼 연습하고 집에 도착했는데 제 짐이 집 밖으로 나와 있는 겁니다. 제가 고집을 부리자 화가 나신 부모님이 그럴 거면 아예 집을 나가라고 하신 거죠. 어린 마음에 너무 서러워 울면서 연습 구장으로 갔어요. 그리고 바로 선발전에 나갔는데 그날따라 '그분'이 오신 날이었나 봅니다. 제 실력은 우승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덜커덕 우승을 해버렸어요."

프로당구 선수 이영훈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결승전을 마치고 연습하던 당구장에 밤늦게 도착한 그를 아버지와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의 고집을 꺾기 위해 집에서 내쫓는 '강수'를 뒀지만 내내 마음의 부담이 됐던 모양이다. 결국 부모의 동의를 얻어 그는 19살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해서 그런지 이영훈은 '무늬만 선수'였다고 회고한다. 대회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연습도 설렁설렁했다. 선수로 성공하겠다는 의지도 별반 없었다. 그러던 그가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계기는 결혼이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바로 결혼하게 됐습니다. 23살 때였죠. 가장이 되고 나니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제대로 선수 활동을 하자고 다짐을 한 뒤 생활 방식을 아예 바꿨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9시에 당구장으로 출근해서 아르바이트하고 연습까지 한 뒤 저녁 7시에 퇴근하는 루틴을 시작한 거죠."

자만심 넘친 실패 딛고 긍정 마인드

"다른 선수의 장점을 지금도 모방"

이영훈은 20대 선수 생활 중 자신의 가장 큰 적은 '자만심'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자만으로 이어져 상대 선수를 얕잡아 보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면 결국 자기 스스로 무너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마추어 시절 연맹 순위는 15~20위를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최정상급은 아니더라도 나름 경쟁력을 갖춘 실력이었죠. 하지만 패기가 왕성하던 때라 항상 자신감이 넘쳐났고 간혹 그 부작용으로 경기를 망치기도 했어요."

프로리그에 참여한 뒤부터는 마음가짐을 달리했다. 대진표가 나오면 평소 잘 아는 선수여도 최근 경기 영상을 항상 분석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에 몰두한다. 상대를 존중해야만 객관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당구 선수 이영훈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겸허한 자세는 그의 실력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어떤 선수든 배울 점이 있다면 그 선수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드는 훈련을 반복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격언을 실감했다. 그 훈련이 반복될수록 실력도 비례해서 한 단계 더 뛰어올랐다.

횡단 샷이 강한 조재호 선수의 연습을 3시간 넘게 옆에서 꼼짝하지 않고 지켜보는 열정도 발휘했다. 소심한 성격이어서 횡단 샷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지도 못했다. 갈구하는 후배의 눈빛이 가상했는지 조재호는 며칠 뒤 횡단 샷 비기를 아낌없이 전수해줬다. 겸손한 자세로 배우려고 한 의지가 낳은 결과이다.

"내 경기를 마치면 항상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유심히 관찰합니다. 특정 배치를 어떤 선수가 쉽게 공략하면 영상으로 저장해 다음 날 연습 시간에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었죠. 예를 들면 뱅크샷이 제가 좀 약한 편인데 뱅크샷의 달인으로 꼽히는 강민구(블루엔젤스) 선수의 뱅크샷도 열심히 분석하면서 연구를 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영훈은 당장 성적이 부진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풀어나가려고 한다. 지난해 시즌만 해도 개인 투어 성적은 물론 팀 리그 전적이 바닥권이었다. 심지어 크라운해태 팀에서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제가 구단주여도 성적이 부진한 저를 방출하는 게 맞았다고 봐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다시 연습을 꾸준히 해서 성적이 오르면 다른 팀에서 저를 선택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연습에만 몰두했어요. 그래서 올해 시즌에 성적이 좀 올라온 것 같긴 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뚝심

"30대에도 실력 일취월장 증명할 것"

이영훈은 긍정 마인드와 함께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큐를 사용해 당구공을 다루는 당구 선수들은 사소한 루틴이나 자세가 변하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묘한 힘의 강약, 당점이나 두께 활용, 스트로크 형태 등에 따라 공이 가는 궤적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을 과감하게 바꿨다. 설사 그 여파로 부진을 겪더라도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반석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대한당구연맹의 김형곤 선수가 운영하는 당구장을 1년 정도 다닐 때였어요. 국내 정상급인 김형곤 선배와 연습 게임을 할 때 번개처럼 뭔가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큐 끝부분을 잡고 샷을 하는데 김 선배는 한 뼘 이상 더 앞부분에서 큐를 잡더라고요. 그때 깨달음이 왔죠. 큐 앞부분을 잡으면 큐 동장이 더 간결해지고 미세하게 흔들리는 단점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프로당구 선수 이영훈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이영훈은 그날 이후 바로 큐 잡는 방식에 변화를 줬다. 첫 1주에는 거리감이나 스트로크의 흐름에서 혼란을 빚었다. 습관을 바로 바꾼다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공을 칠 때마다 큐를 잡은 손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고 이질적인 거리감을 다시 조정해 엎드리는 일을 반복했다. 2주가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적응기를 마치자 그의 당구 실력은 어느새 더 향상됐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아마추어 때 최고 성적은 8강이었다. PBA 투어의 개인 최고 성적 역시 8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각성이 필요했다.

"제 나이가 어느덧 서른을 넘었지만, 주변 선수들을 보면 30대 때 실력이 급속도로 늘어난 사례가 많았어요. 연습을 꾸준히 하고 다양한 시합 경험을 쌓으면 30대 나이를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정상급 반열인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 선수와 시합을 한 경험이 그에게는 새로운 과제를 던져줬다. '4대 천왕'으로 불리는 절대 강자들이 오랜 세월 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노하우를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지난 추석 명절에 열린 'TS샴푸·푸라닭 PBA 챔피언십' 32강에서 쿠드롱과 만났습니다.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강자였지만 이날은 경기가 잘 풀렸어요. 3세트까지 2 대 1로 앞선 상황에서 4세트에 들어가 쿠드롱은 5점, 저는 7점이 남았는데 이날은 왠지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까지 경기가 꼬여서 난조를 보였던 쿠드롱이 한 번에 10연속 득점으로 역전했고 결국 마지막 세트에서 제가 패배를 했어요."

이영훈은 그 경기를 통해 두 가지를 깨달았다. 정상급 선수는 경기가 풀리지 않더라도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회복 시간이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또한 패배의 위기가 오더라도 한번 기회를 잡으면 절대 놓치지 않고 역전의 기반으로 삼는 뒷심이 강했다.

2019 PBA 첫 시합에서 길우철, 오태준 선수와 함께, 2015년 구리월드컵 32강 모습, 훈련구장인 경기도 양주시 빌런 당구클럽에서.

이 경기는 그가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점들을 채워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준 현장의 교훈이었다. 숱한 난관을 거친 경험에서 나오는 부동심과 판을 뒤집는 능력이 곧 실력이었다. 어떻게 보면 매번 시합을 치르는 일이 배움의 장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대회 준비를 철저히 하려고 합니다. 경기장 테이블 환경과 비슷한 당구장을 수소문해 먼 거리라도 달려가 훈련을 하는 것도 그 일환이죠. 동호인과의 게임을 포함해 하루 6시간 훈련도 빠트리지 않고 지키고 있는데 적어도 2시간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집중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사진=이혜영 기자 ij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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