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과 투쟁의 현장 …'그 시절' 서점 여행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꼬방책방
노상서점부터 대형문고까지
근·현대사 흐름이 녹아든
한국 서점의 다채로운 역사
골목길 어디를 가든 독립서점을 만나는 게 이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고양이를 주요 주제로 삼은 곳도 있고(구월동 '고양이 수염'), 시집만 파는 서점이 있는가 하면(혜화동 '위트 앤 시니컬'), 와인·기타·커피 등 단일한 주제를 강조한 독립서점도 다수다.
대규모 자본과 큰 유통망에 의지하지 않는 곳. 말 그대로 '주인 취향'으로 꾸민 서점을 독립서점이라고 한다. 전례 없이 희귀한 현상 같아 보여도 독립서점은 한국 서점의 원형(原型)에 가깝다. 1957년 문을 연 독일어 책 전문 '쏘피아 서점', 1974년 개점한 영문서적 전문 '포린북스토어'는 이를테면 독립서점의 '조상' 격이다. 이것은 뭘 의미할까. 우리에게 익숙했던 서점이 서점의 전부가 아니며, 책이라는 요물을 둘러싼 독자의 정열은 시간이 흘러도 본질적으로 같다는 의미 아닐까.
한국 서점 뒷이야기를 담은 신간 '서점의 시대'가 출간됐다. 책방 순례의 강렬한 기억을 바탕으로 저자는 '한국 서점의 과거'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간다.
현대 독자는 책에 책 질량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러나 근대 인쇄술이 도입되던 당시 책은 엄연히 '새로운 상품 아이템'이었다. 종이를 유통하던 지물포는 근대의 물결 속에서 지식산업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근대 서점은 '종이'라는 물성에 지식과 대중성이라는 '가치'를 부여했다. 지물포가 주로 출판까지 병행했다. 저자는 이들을 '출판서점'으로 부른다.
일제강점기 서점은 금서의 유통구였다. 서점은 꿈꾸는 자들과 억압하는 권력 사이의 쟁투 현장이기도 했다. 사상은 권력에 의해 탄압받았다. 당대 혁명가들이 모인 서점 '민중서원'이나 '신생각서점'은 역사의 현장으로 회자된다. 광복 이후 책 수요가 폭증해 1945년 45곳에서 1948년 792곳으로 늘었다.
폐허의 공간에 책방이 들어설 건물이 마땅치 않다 보니 책은 주로 길거리 좌판에서 팔렸다. '노점책방'이었다. 쌀 한 말이 6~7원이던 시절이었는데 노점책방 사륙판 크기 책 한 권이 2~3원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어학회가 만든 '맞춤법 통일안' 프린트물이 당시 대구에서 무려 2만부나 팔렸다는 점이다. 당대 혼란을 말해준다.
전후 1960년대, 청계천변 가건물에 헌책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뜨거운 교육열, 텅 빈 지갑 사정을 이유로 그곳엔 중고 교과서와 참고서를 파는 '꼬방책방'이 적지 않았다. 1970년대 초반, 명동 달러골목에 가면 후미진 거리에 30여 개의 서점이 모여 있었다. 미국 화폐를 사고파는 암거래상, 미군 물품을 판매하는 장사꾼 사이에 외국 서적 전문서점을 표방한 책방이 들어섰다.
1980년대, 민주화 열기 속에서 '사회과학서점'엔 진실에 목말라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서울대 '광장서점'과 '그날이오면', 성균관대 '풀무질' 등은 이념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했다.
그 무렵 1981년, 한국 최대 규모 서점 교보문고가 현재 광화문점에 처음 문을 열었다. 1000평 규모에 60만권의 장서를 보유할 정도였는데, 차별화된 장점은 단지 거대한 책등의 숫자가 아니라 '코너'의 등장이었다. 특별 코너는 북 큐레이션에 기반한 판매 전략이었다.
우리나라 서점, 아니 우리의 서점 비화를 활자와 도판 너머 바라보면 어느 순간 묻게 된다. '책은 상품인가, 아니면 가치인가.' 읽다 보면 자기만이 기억하는 오래전 그 서점 한 구석에 서 있는 기분마저 솟구치는 책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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