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를 뉘우치게한 인생철학 강의

박대의 2022. 11. 11. 17: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악·욕망의 본질등 가르치며
수감자 각자의 삶 돌아보게해
라이프 인사이드 앤디 웨스트 지음, 박설영 옮김 어크로스 펴냄, 1만8000원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에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는 배에서 위기를 맞는다. 바다 한가운데 바위에 사는 반인반수 세이렌이 자기 전우들을 잡아먹으려 했기 때문이다. 세이렌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은 뱃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귀향길에 오르는 오디세우스에게 마녀 키르케는 모든 선원의 귀를 밀랍으로 막아 세이렌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하라고 경고한다.

선원들이 밀랍을 너무 일찍 빼지 않도록 누군가는 세이렌의 유혹을 듣고 그 끝을 알려야 했다. 고질병 수준의 호기심을 가진 오디세우스는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다. 그는 몸을 돛대에 묶고는 선원들에게 아무리 줄을 풀어 달라 애원해도 무시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다에 빠지고 싶다는 오디세우스의 표정을 본 한 선원은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궁금해 귀를 연다. 그리고 노래에 취해 바다에 빠진다.

"귀를 밀랍으로 막은 사람들과 오디세우스, 귀에서 밀랍을 빼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장 자유로울까요?"

영국의 인문학자 앤디 웨스트가 강의를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묻는다. 거기에는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만 묵묵히 했기에 귀를 막은 사람들이 자유롭다는 사람도 있고, 부하들에게 시킬 수 있기에 오디세우스가 자유롭다는 사람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어릿광대만큼 자유롭다"며 귀에서 밀랍을 뺀 사람이 자유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마치 한 대학 강의실에서 오갔을 법한 이 대화가 벌어진 실제 장소는 영국의 한 교도소다. 종교나 인종, 수감 기간과 관계없이 철학적인 주제를 두고 오가는 그들의 대화를 보면 신체의 속박이 인간의 자유 의지까지 구속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라이프 인사이드'는 웨스트가 2016년부터 강의실이 아닌 감옥에서 재소자들에게 철학을 가르친 기록이 담긴 책이다. 웨스트는 수감 생활을 한 가족처럼 자신도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죄책감에 직접 감옥으로 들어가 철학을 가르친다. 그 속에서 삶과 죽음, 운명과 본성 등 철학적 주제를 이야기하고 자신의 상황에 대입하면서 평생 자신을 옭아맸던 수치심을 떨쳐낸다. 책은 수감자들과 철학을 논하며 남긴 웨스트의 자기 치유 기록이다.

철학은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친 가해자들에게 용서가 무엇인지 숙고하도록 만든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은 자신을 벼랑 끝까지 내몰았던 욕망의 본질을 깨닫는 기회를 얻는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우리 모두가 물어야 할 질문이지만, 자유와 시간이 단절된 감옥에서 이 질문을 마주한 수감자들은 그것을 훨씬 더 절실하게 고민하고 각자의 대답을 내놓는다. 이 책은 범죄자와 비범죄자, 선과 악, 자유와 속박 등 이분법적 사고를 떠나 인간과 철학의 본질을 독자들에게 묻는다.

[박대의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