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Play's Signal]‘열 번 찍으면’ 현실이 될 미래 기술, 합성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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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있다. 흔히 사용되는 말이지만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연애할 때도 애초에 불가능한 상대를 열 번 공략해 봤자 그로 인해 상대의 피로도만 올라갈 뿐 호감이 생겨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이 운용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적이다. 시간·돈·노력 등이 모두 그렇다. 되지 않을 일에 엉뚱하게 힘을 빼기보다는 ‘될 만한 일’에 힘을 쏟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이롭다. 다시 말해 ‘안 될 일’을 빨리 판가름하고 일찍 놓는 것 또한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다. 올해 필즈 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도 “적당하게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노력해서 될 일과 애초에 불가능한 일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은 통찰의 산물이다. 통찰은 많은 경우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가 좋은 의사 결정을 하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통찰력이 좋은 사람은 좋은 의사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배경과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의사 결정일지라도 깊은 통찰력은 개인을 옳은 길로 인도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사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산업 분야에도 많다. 하지만 ‘열 번 찍어 넘어갈 나무’와 같은 산업 분야들 또한 존재한다. 바로 이를 구별하는 것이 ‘미래에서 오는 시그널’을 잘 읽어 내는 힘일 것이다.
‘열 번 찍어 넘어가는 나무’의 대표적인 분야는 안경형 3D 기술이다. 2000년대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3D TV 경쟁에서부터 시작된 안경형 3D 기술은 2012년 설립된 오큘러스를 거쳐 2017년 이후 가상현실(VR)에 대한 수많은 시도와 가장 최근 2021년 메타버스 열풍까지 이어진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경형 3D는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안경형 3D와 같은 기술이 언젠가는 효용을 발휘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언젠가’가 적어도 10년 이내에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열 번 찍어 넘어갈 나무’라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분야가 있다. 바로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다. 생소해도 괜찮다. 필자 또한 올해 새롭게 배운 단어다. 합성생물학은 생명과학의 공학적 접급이라고 볼 수 있다. 생명과학을 다른 곳에 활용하는 다양한 시도를 합성생물학이라고 부른다.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공상과학 같겠지만 모두 사실이다. 대장균·효모·효소 등을 이용해 모든 종류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중유·디젤 연료 등으로 변환시킨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은 물론 바이오 에너지까지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2017년 영국에서 설립된 첨단 플라스틱 재활용 솔루션 기업 무라테크놀로지가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미 동티모르 정부와 대단위 플랜트 계약이 체결돼 있다. 또한 합성생물학의 세계적 대가인 제이 키슬링 버클리대 교수가 주축이 된 미국 키슬링(Keasling)그룹은 수소 가스를 대량 생산할 미생물을 개발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스타트업에서도 합성생물학 분야와 관련해 많은 도전이 일어나고 있다. 그중 가장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기술은 배양육이다. 가축을 사육하지 않고 근육과 지방 세포를 배양해 고기를 얻는 기술로, 넓은 의미에서 ‘합성생물학’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실험실에서 시작된 ‘멤피스 미츠’ 등 해외는 물론 한국에서도 심플미트·티센바이오팜 등 스타트업들이 도전 중인 분야이기도 하다.
수많은 합성생물학 관련 스타트업 중 최근 발견한 눈에 띄는 스타트업을 소개한다. 어필(Apeel)이라는 미국 기업이다. 과일 표면에 보이지는 않지만 안전한 미생물 코팅을 통해 음식물의 보관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려 준다. 30일이 넘은 아보카도가 썩지 않고 유지된다. 이와 같은 기술을 바탕으로 어필은 미국의 IT 벤처 투자 전문 회사인 앤드리슨호로위츠에서 20억 달러(약 2조8000억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과일 보관 기관 늘려 주고 DNA 활용한 컴퓨터까지
합성생물학은 심지어 건축물에도 활용도가 높다. 특정한 미생물을 콘크리트 배합에 첨가해 콘크리트 구조물에 균열이 발생하더라도 자가 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콘크리트의 균열은 건축물의 수명과 안전에 직결된다. 이와 같은 기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심지어 콘크리트가 자라나 벽돌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 미생물로 자라나는 벽돌이다. 실제로 콘크리트의 원재료인 석회를 캐는 작업은 환경에 매우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 바이오메이슨이라는 기업이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조금 진부한 얘기지만 DNA 컴퓨팅도 합성생물학 분야를 활용한 엄청난 기회이며 도전이다. DNA 컴퓨팅은 말그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 대신 DNA를 활용한 컴퓨팅을 말한다.
DNA를 활용한 컴퓨팅에는 크게 세 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저렴하다. 적합한 DNA 구조를 찾는다면 양산에 비용이 매우 적게 든다. 우리 몸만 생각해도 세포는 멈추지 않고 분열해 자가 복제를 한다. 알아서 개체수를 늘리도록 디자인할 수 있다.
둘째, 매우 공간 효율적이다. 과학계는 DNA가 455 엑사바이트(exabyte)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엑사바이트는 10억 기가바이트 정도 된다. 인간이 만든 모든 영화를 데이터화한다고 하더라도 각설탕 크기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폭증하는 데이터의 양으로 인한 데이터센터의 부족 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병렬 연산에 유리하다. 다수의 DNA 스트링과 다른 연산 방식을 통해 훨씬 효율적인 병렬 연산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기술이 병렬 연산이 가장 필수적이고 수요가 많은 ‘딥러닝’에 적용된다면 어떨까. 아직은 조금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DNA 컴퓨팅 기반의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생체 로봇이 발전한다면 우리는 인간과 컴퓨터를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당장 우리가 매일 들고 다니는 폰 전체가 유기체로 이뤄지는 날이 오기까지는 엄청나게 멀겠지만 서버의 일부에 적용되는 것은 20년 이내가 될 것이라고 본다.
사실 8년 전쯤 ‘합성생물학’에 대한 기대가 뜨겁게 타올랐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1~2년이 지나 차갑게 식고 말았다. 생물학이라는 분야는 너무나 전문적이고 복잡한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현재로서는 쉽게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기술들이고 이 때문에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에 미래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모두 알다시피 생물학·화학·물리학 등의 기초 학문에 기반한 기술 발전은 더욱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지금 타오르고 있는 합성생물학에 대한 기대 역시 1~2년 안에 또다시 식을 수 있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밤을 새우고 기술은 발전한다. 이번이 아니라면 그다음일 것이다. 합성생물학은 21세기의 열 번 찍어 넘어갈 나무다.
안지윤 퓨처플레이 전략기획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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