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등장에 웃으면 어쩌나 걱정"…'올빼미' 유해진, 서민 이미지로 완성한 왕(종합)[인터뷰]
[OSEN=김보라 기자] 배우 유해진(53)이 조선의 16대 왕 인조로 변신했다. 데뷔 후 왕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관심을 끌 법하나 그에게는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하나인 역할일 뿐이다. 이에 유해진도 “17년 동안 그냥 잘 버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가 말한 이 ‘17년’은 데뷔 후 활동한 시간이 아닌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2005)에서 광대 육갑 역을 맡으며 당시 조감독이었던 안태진 감독과 인연을 맺어온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신분 제도로 따지자면 천민에서 무려 왕으로 계급이 상승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가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걸으며 도약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릭터의 신분을 떠나 무명 배우에서 주연 배우로 성장한 것은 분명 의미 깊은 일이기 때문이다.
유해진은 11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사실 제가 어떤 캐릭터를 맡고 싶거나 그런 것은 없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올빼미’(감독 안태진, 제공배급 NEW, 제작 씨제스엔터테인먼트·영화사 담담)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 유해진은 왕 인조 역을 맡았다.
이어 그는 “대중이 내게 익숙한 모습이 있지 않나. 친근하거나 서민적인 부분이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왕 캐릭터를 받아 들이실 수 있을까 싶었다. 처음 등장할 때 보시는 분들이 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물론 내용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는 받아주실 거 같았지만 말이다”라고 말을 이어갔다.
유해진은 “시나리오 상에는 저의 첫 등장이 ‘짠!’ 하고 나타나는 거였다. 궁 뒤에 있다가 세자가 왔을 때 등장하는 거였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 갑작스러운 등장처럼 느껴졌다. 느닷없는 등장 같아서 감독님과 논의한 끝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게 됐다”고 캐릭터를 만들어간 과정을 전했다. 안태진 감독은 ‘왕의 남자’의 조감독이었지만, ‘올빼미’를 통해 장편 상업감독으로 데뷔하게 됐다.
이에 유해진은 “경험이 많은 저도 개봉을 앞두고 힘든데 감독님도 오죽하겠나. 평소 술을 잘 안 먹는 사람인데 최근에는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많이 마셨다고 하더라. 똥줄이 타나 보다.(웃음) 저도 물론 이해는 한다”고 이 자리를 빌려 감독에게 위로를 건넸다.
유해진은 왕 인조를 맡은 계기에 대해 “감독님에게 ‘왜 나를 택했냐’고 물어보니 ‘왕 하면 보편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조금 다른 모습이 나올 거 같아서 제안을 했다’고 하시더라”고 캐스팅 된 이유를 밝혔다.
“왕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를 했지만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겠다거나 그런 것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제가 등장하는 신이 전체적으로 무거워서 특별히 긴장하며 찍은 장면도 없었다. 어쨌거나 장면에 녹아들려고 하면 원했던 색깔이 나올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 같다. 이런 색깔로 해야지, 유해진만의 왕을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도 안 했다. 그냥 상황에 녹아들었다.”
그러면서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합쳐지면서 (기존의) 왕답지 않은 왕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참고한 작품이나 이전 캐릭터들도 없다. 롤모델을 삼고 싶지 않았다. 그간 많은 인조가 등장했었는데 저와 비교하게 될까 봐 일부러 찾아 보지도 않았다”고 털어놨다.
유해진은 자신만의 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결정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되새김질하는 좋은 배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는 이날 “작품을 하고 나면 작품에 따라 스태프의 반응이 다르다. ‘유해진 너무 재미있어~’라고 말하는 스태프가 있는가 하면 ‘우리 현장에서는 말이 없었는데?’라고 얘기하는 스태프도 있다. 이번 현장에서는 아마 후자였을 거다. ‘올빼미’의 현장 분위기가 진지하게 흘러갔다. 나도 잘 안 섞이려고 했고. (촬영 전까지) 장난을 치다가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농담도 잘 안 했다”고 촬영기를 떠올렸다.
류준열(37)과 유해진은 영화 ‘택시운전사’(2017), ‘봉오동전투’(2019)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작품이다. 전날 열린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류준열은 “(류준열이)점점 더 굵은 기둥이 돼가고 있다”는 선배 유해진의 칭찬에 눈시울을 붉혔던 바.
이에 유해진은 “저는 어제 옆을 보지 않아서 류준열이 울었는지 몰랐다. 기사를 보고 알았다. 알았다면 위로를 해줬을 텐데…현장에서 알았다면 조금 더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봐 줄 걸 그랬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지난 1997년 데뷔한 유해진은 그동안 여러 가지 역할을 맡아왔지만 결국엔 ‘유해진’이라는 대명사로 종결됐다.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그저 배우 유해진의 차기작이 기다려질 따름이다.
이날 유해진은 “저는 특별히 어떤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건 없다. 계속 한쪽 장르에만 치우쳐서 하기에는 보는 분들도, 저도 식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벼운 것을 했으면 딱딱한 것도 해보려고 한다”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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