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800명대 사망산재’ 70년대 영국이 선택한 ‘자율안전’
'자율 규제' 영국 로벤스 보고서 정책제안
기업 자율 규범도 인정···정부는 방향 제시
규정없어도 필요한 안전조치 인정하는 법원
1960~70년대 영국의 사망산재 상황은 현재 한국처럼 심각했다. 1964년 런던에서 무너진 크레인이 버스를 덮쳐 승객 7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는 50여년이 지난 한국에서 거의 그대로 재현됐다. 작년 6월 광주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지나가던 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국은 1996년 폭우로 암석, 석탄찌꺼기가 에버밴이란 탄광 마을로 내려와 144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한국의 중대재해법 1호 적용 사고인 올해 1월 채석장 붕괴사고를 연상하게 한다. 1968년에는 영국 그래스고우 가구공장 화재로 22명이 사망했다. 2020년 5월 한국에서는 이천 물류창고 공사화재로 38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영국과 한국의 현재는 너무 다르다. 영국은 1970년대 연간 800명대던 사망산재를 200명대로 확 줄였다. 한국은 작년에도 828명이 사망산재를 당했다. 좀처럼 800명대에서 줄지 않았다. 한국의 사망산재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치도 못 미친다.
한국이 산재공화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 영국과 같은 민간 자율관리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감독과 처벌 위주의 통제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 사고 통제 원인을 찾아 고치는 방식이다. 법원의 판결 흐름이 기업 자율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관련 정책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0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서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산업안전 토론회 주제발표자로 나서 "영국은 1970년대 초부터 사업장 자율안전과 위험성 평가를 통해 연 1000명 수준이던 산재사망자를 현재 200명대로 줄였다"며 영국의 산업안전정책의 장점을 본받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영국의 산업안전정책은 1972년 발표된 로벤스 보고서로 대표된다. 전 교수는 "로벤스 보고서는 당시 산업안전보건법령이 너무 많고 복잡하고 파편화됐다고 지적했다"며 "로벤스 철학으로도 불리는 자율규제 시스템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도 산안안전보건법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너무 많아 준수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이 상황을 자율규제로 풀었다는 것이다.
자율규제 시스템은 정부의 안전규범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만든 자체 규범도 안전 법령의 준수로 보는 게 핵심이다. 단 제대로 만들지 못한 자체 규범은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다. 영국의 감독관은 자율규제가 잘 작동하는지, 공정에 어울리지는지 판단할 수 있을만큼 전문성도 높다고 평가받는다. 전 교수는 "자율 규제 행위 규범이 정립되지 못하면 정부가 나서 표준적인 규범을 제시한다"며 "사업주는 정부 규제를 따를지, 자율 규제로 할지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국의 자율규제는 규제 완화가 아니다"라며 "영국의 자율은 오히려 기업에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부연했다.
한국도 그동안 산재예방대책에서 자율규제를 담았다. 2000년 산재예방 1차 계획에도 노사 자율안전보건관리체제 확립이 명시됐다. 전 교수는 이 자율규제가 영국의 자율규제처럼 역할을 못한다고 비판한다. 영국은 자율규제를 위한 후속 입법을 마쳤다. 또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안전표준화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한국은 자율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거나 기존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특히 전 교수는 2017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충돌 사고 판결을 예로 들면서 고용부의 산업안전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당시 대법원은 삼성중공업과 협력업체 대표에게 내려진 일부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뒤집었다. 전 교수는 "그동안 법원은 법문이 없다면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도 인정하지 않았다"며 "(대법원) 판결은 비슷한 사고 유형이 있으면 성실하게 위험성 평가를 하라고 한 것이다. 위험성 평가가 제도화되면 앞으로 이 방향으로 법원이 판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용부는 이달 산재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다. 로드맵은 전 교수의 조언대로 정부가 얼마나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산업안전체계를 만들도록 도울지가 핵심으로 거론된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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