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고객자금 60% 자회사에 대출···국내선 '불개미' 몰렸다
“미안합니다. 제가 다 망쳤습니다.”
하루아침에 추락한 암호화폐 억만장자로 세계 2위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인 샘 뱅크먼-프리드가 10일(현지 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FTX의 파산과 이로 인해 암호화폐 생태계에 입힌 피해를 두고 이 같이 짧은 소회를 전했다. 또 그는 “자금 수혈을 모색하기 위해 투자자들과 접촉 중”이라며 FTX의 회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뱅크먼-프리드 창업자는 FTX가 파산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지난 6일의 암호화폐 대량 인출(뱅크런) 사태를 두고 “자신이 애초에 생각한 것과 지난 6일의 대량 출금 사태가 다르게 진행됐다”며 “이 같은 규모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인출 가능한 달러 유동성은 하루 평균 인출 금액의 24배였지만 실제로 대량 인출이 진행되자 이는 50억 달러(약 6조5000억원) 규모에 달했고 이때의 유동성은 인출 금액의 80%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 번 비가 내리면 쏟아붇듯 폭우가 된다”며 레버리지가 1.7배에 달했는데 이를 간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FTX의 뱅크런 당시 소통에 미숙했던 점도 사과했다. 그는 “이후에도 소통을 투명하고 면밀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특히 바이낸스와 투자의향서를 체결하던 즈음에는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또한 제가 망친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은 이용자 보호라고 강조했다. 그는 “1순위는 이용자들을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며 “현재 유동성을 최대한 끌어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도 여러 이해관계자를 만나 투자의향서(LOI), 거래 조건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아직 회생 시도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뱅크먼-프리드 창업자는 94억 달러(약 13조 원)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투자자들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접촉 중인 상대로는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플랫폼 트론 창업자 저스틴 선을 비롯해 암호화폐 거래소 OKX, 테더 플랫폼 등이 있다. 투자사 세콰이어 캐피털 등과도 구제 금융 방안을 협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FTX에 대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TX가 고객들이 예치한 돈 160억 달러 중 100억 달러를 자회사인 알라메다리서치로 넘겨 투자 목적의 자금을 운용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전체 예치액의 60%에 달하는 규모다.
WSJ는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샘 뱅크먼-프리드 FTX 창업자가 이번 주 투자자 회의에서 알라메다가 FTX에 100억 달러(약 13조5000억원) 가량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며 “(에치금을 알라메다 투자 운용에 활용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다고 자책했다”고 전했다. 알라메다리서치는 다른 금융사에도 15억 달러(약 2조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자금 운용은 샘 뱅크먼-프리드 창업자 개인으로도 암호화폐 거래소로도 피할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금융 기관으로서의 신뢰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에 업계 전체에 강력한 규제 명분을 주게 됐다는 분석이다. 경제학자 프랜시스 코폴라는 “거래소는 고객이 예치한 돈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며 “언제든 고객이 인출할 수 있도록 그 자리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도 이날 FTX 파산 사태를 계기로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FTX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최근의 사태는 암호화폐 시장에 신중한 규제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가 이 사안을 두고 각각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뉴욕 증시가 오름세로 돌아서면서 암호화폐 시장도 한숨을 돌렸다. 현재 동부시간 기준 늦은 오후 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 대비 12% 가량 올라 1만781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더리움은 20% 오른 132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뉴욕 증시 상승 전환, 미국 물가 급등세 둔화 등에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이 한숨을 돌리면서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FTX 관련 암호화폐 ‘단타’ 매매에 돌입했다. ‘FTX토큰(FTT)’, ‘솔라나(SOL)’, ‘세럼(SRM)’ 등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가운데 국내 거래소 매매가가 해외보다 비싼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도 10%에 육박한 모습이다.
이날 오후 2시 30분 기준 세럼은 바이낸스에서 약 549원(0.414달러)에 거래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업비트와 빗썸에서의 세럼 가격은 591원으로 바이낸스에서보다 약 7.7% 더 높게 형성됐다. 세럼은 FTX의 투자를 받은 암호화폐 ‘솔라나’ 생태계에서 쓰이는 암호화폐다. FTX 사태가 터지면서 세럼은 8일과 9일 각각 전날보다 26%, 44% 급락했지만 현재 다시 상승세다.
국내 가격이 해외보다 높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 유지되면서 국내에서 비싼 가격에 세럼을 팔고 나가려는 수요도 늘어난 모습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360만~540만 세럼 수준이던 거래량은 9일과 10일 각각 2억 275만 세럼, 3억 5992만 세럼 등으로 폭증했다. 암호화폐 분석업체 쟁글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세럼 거래량의 절반(49.9%)은 업비트로 몰렸다.
솔라나 거래도 한국으로 몰렸다. 이날 업비트에서 거래되는 솔라나 비중은 전체 솔라나 거래량의 13.5%로 바이낸스(12.1%)를 제쳤다. 쟁글 집계 결과 현재 국내에서 솔라나는 해외 다른 거래소 거래가보다 6.68% 높게 형성돼 있다. FTX가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 FTT의 ‘김치 프리미엄’도 0.95%였다.
파산 가능성이 거론되는 FTX 관련 암호화폐 거래가 국내로 모이는 모습은 5월 ‘루나?테라’ 사태 당시와도 유사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5월 10일 암호화폐 루나 가격이 기존 대비 99% 폭락하며 ‘휴지조각’이 된 이후 국내 루나 보유자는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해 해외에서 싼 가격에 루나를 매입한 뒤 국내에서 팔아 차익을 남기려는 투기 세력이 몰리면서다. 당시 루나 유통량은 사건 발생 전보다 1만 8000배나 급증하기도 했다.
한편 현재 국내 FTT 보유자는 9일 기준 약 6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산 보유 수량은 11만 개다. 피해 규모 및 피해자 수가 각각 약 50조 원, 20만 명에 달했던 루나 사태 당시와 비교하면 훨씬 적지만 FTT를 보유하지 않더라도 FTX를 통해 암호화폐 거래를 해왔던 이용자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국내 원화?코인 마켓 거래소들은 FTX로의 출금을 속속 중단하고 나섰다. 업비트는 10일 저녁 업비트 이용자들의 자금이 FTX로 이동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코인 마켓 거래소 지닥도 이날 “FTX 유동성 위기를 고려해 투자자 보호를 목적으로 지닥 거래소 출금 리스트에서 FTX를 삭제하고 디지털자산 출금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FTX로 돈을 보낸 이후 FTX가 이용자들의 출금을 전부 막으면 돈을 빼내지 못한 채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빗 등 타 거래소들 역시 현재 이용자들의 FTX 출금 중단 조치를 검토 중이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madein@sedaily.com조윤진 기자 j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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