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려면, 나아야 하니까···참사를 이겨가기 위해 함께 읽으면 좋은 책[책과 삶]
슬픔에 빠진 이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시인 진은영·사회학자 엄기호·평론가 신형철·작가 은유의 추천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해밀턴호텔 옆 골목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좁은 골목 길에 순식간에 많은 인파가 몰리고, 통행을 안전하게 관리할 인력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이 그야말로 겹겹이 쌓이고, 156명이 숨졌다. 불과 2주 전의 일이다. 더이상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족들의 황망함과 고통,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 않는다. 대신 정치적 공방, 정부의 책임회피, ‘꼬리자르기식’ 징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국가는 신속한 애도가 필요하다는 듯 애도기간을 정했다. 누구를 위한 ‘애도 기간’이고, 국가와 사회는 무엇을 애도하였나? 애도하기 위해선 우리가 무엇을 잃었고, 왜 그런 상실을 겪어야 했는지 진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는 서둘러 애도기간을 끝내버림으로써 우리가 미처 무엇에 대해 어떻게 슬퍼해야할 지 고민할 시간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엔 추모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참사를 지켜본 이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 8년 전 세월호 참사로 사람들이 바다에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지켜만 봐야했던 기억이 있기에 더 충격이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노는 서울 도심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갑자기 156명의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또다른 두려움을 안겨줬다.
이태원 참사는 진행중이다. 정치권은 진상규명을 둘러싼 공방을 벌이고 있고, 누가 희생을 ‘대속’하기 위해 죄를 짊어질 것인지를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진상규명과는 별개로 우리는 이 커다란 비극을 제대로 애도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누군가는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상실의 고통 속에 여전히 몸부림치고, 누군가는 얼떨떨한 채로 일상을 살아간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우리, 사회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 그 연결을 제대로 이뤄낼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더 안전하고 살만 한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책이 참사를 돌이키거나 목숨을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슬픔에 빠진 이들과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이들에게 조금의 도움은 줄 수 있다. 이태원 참사의 비극과 슬픔을 애도하기 위해서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을 진은영 시인, 엄기호 사회학자, 신형철 문학평론가, 은유 작가로부터 추천받았다.
슬픔의 위안
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지음, 김설인 옮김 | 현암사 | 326쪽 | 1만5000원
일터에서, 거리에서, 사고와 재난에 의해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소식들이 전해진다. 우리 사회는 슬픔을 하루빨리 극복해야할 것으로 여기지 이를 잘 다뤄내는 것엔 익숙지 않다. 슬픔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문화는 슬픔에 빠진 이들을 더 고립시킨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홀로 섬 위에 있다.” 상실을 겪은 이들은 소외감으로 이중고통을 받는다.
<슬픔의 위안>은 슬픔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 경험을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바꾸어놓는다. 작가이자 창작자인 저자들은 절절한 고통의 호소, 손쉬운 기술적 위로법, 어려운 심리학 용어를 늘어놓는 대신 슬픔을 겪은 다양한 이들의 경험담과 에피소드를 통해 슬픔을 인간의 근원적인 보편 감정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다. 저마다 다른 다양한 슬픔의 양상을 담담히 보여주며 대화와 관찰, 문학 작품과 철학 이야기로 슬픔을 다루며 공감의 장을 여는 방식으로 위안과 치유에 다가선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시를 써온 진은영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져 익사할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밧줄’을 던지는 책”이라고 말했다. 진은영은 “깊은 슬픔에 빠진 이에게는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밧줄을 던져야 한다. 밧줄의 한쪽 끝을 우리가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은영은 “‘밤새도록 휴대전화를 쥐고 있다가 너의 전화번호가 뜨면 언제라도 받을게’와 같은 작은 약속이 큰 약속보다 낫다”며 “사랑하는 이들을 상실한 사람들이 어떤 슬픔을 겪고 어떤 종류의 감정들에 휩싸이게 되는지, 어디에서 위로를 느끼는지 상세하고 알려주고, 그 앎을 통해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도움과 약속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왜 우울할까
대리언 리더 지음·우달임 옮김|동녁사이언스|248쪽|1만3500원
세월호 추모 에세이집 <눈먼 자들의 국가>를 엮고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이야기했던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우리는 왜 우울할까>를 권했다. 이 책 역시 상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임을 이야기한다. 라캉주의 정신분석가 대리언 리더는 우울증을 뇌의 생화학적 문제로 환원시키며 약물치료만을 강조하는 현대 정신의학을 비판한다. 우울증을 그저 약물로 ‘극복’하게 함으로써 내면의 근본 문제들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애도는 우리가 잃게 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떼어내는 길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슬픔은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애도는 이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신형철은 “우울증을 약물로 치료한다는 발상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데, 개인의 깊은 상처를 대면하고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책은 개인적 애도를 넘어 공적인 애도를 강조한다. 공적인 애도를 통해 사람들이 각자의 상실을 슬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신형철은 “애도가 개인적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 속에서 동시에 함께 이뤄져야 하는 일이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애도 간의 대화’를 통해 서로 완벽하게 같은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애도를 해야만 각자의 상처들이 치유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했다. 책은 아울러 많은 예술 작품들이 상실의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며, 상실의 텅 빈 자리를 새로이 채우는 애도의 작업으로서 예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애도와 투쟁
더글라스 크림프 지음·김수연 옮김|현실문화|456쪽|2만5000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사회학적으로 고찰한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쓴 엄기호 사회학자는 1990년대 미국의 미술비평가이자 에이즈 활동가 더글라스 크림프가 쓴 <애도와 투쟁>을 추천한다. 미술작품과 사진, 영상 등 여러 매체의 에이즈 재현을 비판적으로 살피며 에이즈와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비난과 에이즈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투쟁을 다룬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1980년대 처음 발생하기 시작한 에이즈는 1960년대 이후 활발하게 이뤄지던 동성애 운동에 찾아온 재난과 같았다. 질병에 대한 공포와 죽음이 퀴어 커뮤니티를 휩쓸고 지나갔다. “우리가 이렇게 죽음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동안에도, 이 사회는 우리를 돕지 않는다. 우리의 고통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를 비난하고, 무시하고, 배제하고, 조롱한다. 이 사회는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이유로 우리를 차별하고, 직장에서 해고하고, 보험 자격을 정지시킨다. 에이즈 문제를 해결해야 할 국가는 에이즈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오히려 방치한다.”
크림프는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죽음과 슬픔이라는 ‘애도 불가능성’ 속에서 퀴어의 애도는 투쟁이 된다고 말한다. 퀴어에게 투쟁은 위로받을 수 없는 고통에 대한 반응이기도 한 것이기에 ‘애도하는 투쟁, 투쟁하는 애도’를 이야기한다.
엄기호는 “참사의 당사자는 사회적 도덕주의 반동의 물결에서 자기를 비난하는 우울에 빠지기 쉽다”며 “이 책은 HIV·에이즈 위기를 겪으며 동성애자들의 삶을 도덕적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다른 윤리적 가능성으로 탐색한 절절한 성찰이자 기록”이라고 말한다. 엄기호는 “‘거기에 간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가 방어를 넘어, 도덕적 질타야말로 윤리적 공백이며 이 공백 속에서 새로운 윤리적 삶의 방식이 창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416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 지음|창비|348쪽|1만8000원
우리는 이태원과 세월호 참사를 연결시키기 두려운 동시에, 두 사건을 연결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수많은 젊은이의 죽음, 참사 대응에 무능했던 정부는 두 사건을 연장선상에 놓고 생각하게 만든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던 국가’는 이태원 참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끔찍한 참사의 피해자가 어떻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지를 가슴 아프게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유가족들은 어느 순간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되고, 보상금을 이유로 공격당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자식을 잃은 슬픔과 사회가 후벼판 상처 속에서 아프고 견디고 싸워온 삶의 기록이다. 이들에게 자식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한 투쟁은 애도를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작가기록단은 안산의 곳곳, 분향소, 팽목항, 광화문, 국회, 청운동에서 가족들을 만나 저마다의 고통을 주의 깊게 들었다. <다가오는 말들> 등에서 세월호 유족 등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글을 써온 은유 작가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추천하며 “대참사로 핏줄을 잃은 유가족의 폐허가 된 삶이 눈물겹고,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 유가족의 저항은 눈부시다”고 말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베카 솔닛 지음·정해영 옮김|펜타그램|512쪽|2만원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강타해 건물들을 쓰러뜨렸다. 화재가 발생하며 3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행정당국은 맞불로 저지선을 만든다며 화염 바로 앞에서 건물들을 폭파하고 시민들이 가정에서 소방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잘못된 대처로 ‘불지옥’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리베카 솔닛은 당시 지진으로 집과 가게를 잃은 중년 여성 홀스하우저가 폐허가 된 도시 한쪽에서 무료 급식소를 열고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음식을 나눈 일로 이 책을 시작한다. 홀스하우저는 더 이상 재난의 피해자가 아니라 재난을 극복한 사람,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솔닛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베트남 폭격, 멕시코시티 대지진, 9·11 테러 등 끔찍한 재난과 참사 속에서도 이타심을 발휘해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그려낸다.
은유는 “재난으로 초토화된 현장에서 인간이 어떻게 이타심과 공동체적 감각을 발휘하여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어가는지 보여주는 르포르타주”라고 말했다. 진은영 또한 “공동체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참사 후에 느끼는 극심한 불안과 고통은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절망감과 무기력에 기인한다. 다음엔 내가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끔찍한 일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하고도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무기력감은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들을 큰 고통에 빠뜨린다. 이 책은 두 가지 감정이 극복될 수 있는 것임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재난과 참사에 직면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크나큰 슬픔에 빠진 이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도울 수 있을지를 다룬 <슬픔의 위안>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진정한 애도를 위해선 슬픔의 원인을 내면 깊이 살피고, 공적인 애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우리는 왜 우울할까>로 이어진다. 이태원 참사 당사자들을 비난하는 여론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어떻게 윤리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 <애도와 투쟁>을 거쳐 참사 유족들이 어떻게 슬픔을 넘어 저항을 하고 삶을 이어가는지를 <금요일엔 돌아오렴>에서 볼 수 있다. 이야기는 재난 속에서도 상호부조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이 폐허를 응시하라>로 이어진다.
세상에 같은 고통은 없다. 책에 소개된 많은 상실과, 사회적 참사와 재난들은 이태원 참사와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들을 길잡이 삼아 참사 피해자와 구성원 모두가 이 거대한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애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은 얻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애도가 이뤄져야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슬픔에 빠진 서로를 도우며 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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