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 ‘싼맛’에 경차 탄다?…비쌀수록 대박, 2천만원 캐스퍼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2. 11. 11. 14: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분=크기=가격’ 카스트
‘1000cc=1000만원’ 파괴
캐스퍼, 싼맛 대신 살맛↑
작은차 큰기쁨을 추구한 티코와 캐스퍼 [사진출처=한국지엠, 현대차]
국내 소비자들은 이왕이면 큰 차를 선호한다. 현대차 아반떼가 쏘나타 크기로, 쏘나타가 그랜저 크기로, 그랜저가 제네시스 G80 크기로 세대를 거듭하며 ‘몸집’이 커진데도 큰 차 선호도가 영향을 줬다.

인도 카스트 제도처럼 ‘신분=크기=가격’으로 구성된 자동차판 ‘카스트’가 자연스럽게 정착했다.

‘작은 차=싼 차’ 등식도 생겼다. 당연히 카스트 최하위층인 경차는 무시당했다. 돈 없거나 돈 아끼고 싶은 사람들만 어쩔 수 없이 잠깐 타는 차로 치부됐다.

티코(왼쪽)와 스파크 [사진출처=한국지엠]
‘경차 조상’ 대우 티코가 주장한 ‘작은 차 큰 기쁨’은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가 됐다. “티코가 자동차라면 파리는 독수리다”는 유머 시리즈도 등장했다.

티코 이후 등장한 대우 마티즈와 쉐보레 스파크, 현대차 아토즈, 기아 비스트와 모닝도 싼 맛에 타는 차가 됐다.

경차에는 ‘생애 첫차로 제격’이라는 근사한 타이틀이 붙었지만 실상은 운전연습용 차나 막 탈 수 있는 차로 간주됐다.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작고 저렴하기 때문에 첨단 안전·편의사양이 부족해지자 경차는 불편하고 불안한 차가 됐다.

불편·불안은 불만으로 이어졌고 경차를 ‘싼차’로 고착시켰다. 자동차 회사들도 남는 게 적은 싼차에 공들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작은 차 큰 기쁨’
올뉴 모닝 [사진촬영=최기성]
작다고 무시당한 경차가 마침내 반기를 들었다. 2010년대 중반 기아 모닝과 레이가 선봉에 섰다.

명분도 내세웠다. 운전에 미숙한 초보 운전자들이 선택하는 생애 첫차,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세컨드카인만큼 가격이 비싸지더라도 차급 이상으로 안전하고 편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2017년 출시된 모닝은 ‘불안’을 없애기 위해 경차 중 유일하게 운전석 무릎 에어백을 탑재한 7에어백 시스템을 채택했다. 전방충돌 경보시스템, 긴급제동 보조시스템도 적용했다.

작은 공간 때문에 발생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실내공간을 좌우하는 휠베이스를 늘렸고 전고를 높였다. 트렁크 용량도 키웠다.

출시 당시 가격(가솔린 1000cc급 자동변속기 기준)은 베이직 플러스 1075만원, 디럭스 1115만원, 럭셔리 1315만원, 프레스티지 1400만원으로 책정됐다.

당연히 ‘1000cc=1000만원’을 파괴한 가격 상승에 판매도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결과는 반대였다. 구매자 10명 중 7명 이상이 고급 트림인 프레스티지·럭셔리를 선택했다. 돈을 조금만 더 보태면 소형 SUV나 준중형 세단을 살 수 있지만 경차를 구입했다.

캐스퍼, 반란을 넘어 혁명으로
캐스퍼 [사진출처=현대차]
캐스퍼는 모닝과 레이가 일으킨 경차 반란을 혁명으로 키웠다. 캐스퍼는 경차 최초로 모든 사양을 넣는 ‘풀옵션’을 선택하면 2000만원을 넘어섰다.

처음엔 역시 싼차 고정관념 때문에 반발이 컸다. 또다시 “그 가격에 누가 경차를 사냐”는 지적이 잇달았다.

현대차 임금 절반 수준인 광주글로벌모터스에서 생산하고 온라인 판매망을 이용해 생산·유통비용이 줄어들어 1000만~1500만원대에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깨진 것도 작용했다.

현실은 달랐다. 캐스퍼는 나오자마자 대박을 터트렸다. 온라인 사전계약 채널을 연 지 하루 만에 캐스퍼는 완판됐다. 얼리버드 예약(사전계약) 첫날인 지난해 9월14일에만 1만8940대 계약됐다.

지난해 생산 목표치인 1만2000대를 훌쩍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현대차 내연기관차 중 사전계약 최다 기록도 세웠다.

11일 현대차에 따르면 캐스퍼는 2021년 9월 출시 이후 올해 8월까지 1년 동안 국내 시장에서 4만1786대 판매됐다.

국토교통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종별 판매현황을 집계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1~10월 캐스퍼 판매대수는 3만8973대다.

레이(3만6429대), 모닝(2만4192대), 스파크(9810대)를 제치고 경차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캐스퍼는 차량용 반도체 품귀와 원자재 부족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에 누적 판매대수가 5만대를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캐스퍼, 비쌀수록 잘 팔렸다
캐스퍼 [사진출처=현대차]
캐스퍼는 20대가 싼 맛에 탄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파괴했다. 1000만원대 트림도 있지만 2000만원 안팎으로 비싼 트림이 더 인기를 끌었다.

현대차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캐스퍼 구매자 10명 중 6명 이상이 가장 비싼 인스퍼레이션을 선택했다.

2000만원대 경차 시대를 열어 비판받던 그 트림이다. 가격은 1870만~2057만원이다. 가장 저렴한 트림인 스마트는 1385만원, 중간 트림인 모던은 1590만원부터 판매된다.

인스퍼레이션은 프로젝션 헤드램프, 8인치 내비게이션(블루링크, 폰프로젝션, 현대 카페이), 후방모니터, 하이패스 등 경차 수준을 뛰어넘는 편의사양을 갖췄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 후방 교차 충돌방지 보조 등 경차 수준에 과하다고 여겨졌던 첨단 안전사양도 기본 장착했다.

캐스퍼 [사진출처=현대차]
인기 선택 사양을 살펴보면 10명 중 8명 이상이 내비게이션을 적용했다. 또 10명 중 6명 이상이 스마트스트림 1.0 MPI 엔진을 카파 1.0 터보 엔진으로 바꿔주는 캐스퍼액티브 I 및 캐스퍼액티브 II를 선택했다.

현대차는 지난달에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높인 신규 트림 ‘디 에센셜’도 내놨다. 지난 1년 동안 소비자들이 선호한 편의·안전 사양으로 구성된 게 특징이다.

앞좌석 열선 시트, 열선 스티어링 휠, 스마트키, 후방모니터, 하이패스 시스템 등 편의사양을 기본 적용했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인 전방 충돌방지 보조, 차로 이탈방지 보조, 차로 유지 보조, 하이빔 보조, 운전자 주의 경고, 전방 차량 출발 알림 등도 탑재했다.

가격은 1690만~2000만원으로 모던과 인스퍼레이션 사이에 해당하는 트림이다.

지난 한달 동안 캐스퍼 구매자 10명 중 5명이 디 에센셜을 선택했다. 인스퍼레이션은 10명 중 3명 이상 골랐다. 10명 중 8명 이상이 비싼 고급 트림을 샀다는 뜻이다.

30~50대가 가장 선호, 20대 적어
캐스퍼 [사진출처=현대차]
돈 없는 20대가 많이 구입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완전히 깨졌다.

매경닷컴이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를 통해 올 1~10월 연령별·성별 개인 구매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캐스퍼는 30~50대에 인기가 많았다. 30대가 28.3%(8438대)로 1위를 기록했다. 40대는 25.7%(7666대), 50대는 21.2%(6316대)로 그 뒤를 이었다.

20대는 11.5%(3446대), 60대는 11.1%(3320대), 70대 이상은 2.3%(673대)로 나왔다.

성별로는 남성이 48.1%(1만4348대), 여성이 51.9%(1만5511대)다. 거의 반반이다.

성별·연령대별 구매대수를 살펴보면 30대 여성이 4890대로 1위다. 40대 남성은 4179대로 그 뒤를 이었다.

그 다음으로 30대 남성이 3548대, 40대 여성이 3487대, 50대 남성이 3440대 순이다.

20대의 경우 남성이 1017대, 여성이 2429대 구입했을 뿐이다.

레이 [사진출처=기아]
다른 경차도 40~50대가 큰손으로 나왔다. 20대는 경차를 선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닝을 가장 많이 구입한 연령대는 50대로 34.1%에 달했다. 20대는 6%에 불과했다. 레이의 경우 40대는 34.4%, 20대는 6.5%로 나왔다.

스파크도 비슷했다. 50대가 가장 많이 구입한 반면 20대는 가장 적게 샀다. 구매비중은 각각 31%와 6.7%로 조사됐다.

돈 없는 20대가 싼맛에 생애 첫차로 경차를 산다는 인식은 틀린 셈이다.

이제는 돈을 더 주더라도 차별화된 디자인, 안전성, 편의성 등을 추가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덩달아 자동차 카스트도 완전 파괴됐다.

캐스퍼,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캐스퍼 [사진출처=현대차]
캐스퍼가 인기를 끌면서 가성비를 높여주는 구매 프로모션도 다양해지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위해서다.

현대차는 국내 대표 쇼핑행사인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기념해 이달 말까지 일부 차종을 70만~120만원 할인 판매한다.

올 8월 생산된 캐스퍼 밴 스마트는 120만원 저렴한 1314만원에 나왔다. 올 6월 생산된 캐스퍼 터보 모던은 100만원 할인된 1731만원에 판매된다.

현대캐피탈도 고금리 시대 구매 부담을 덜어주는 ‘모빌리티 유예형 할부’ 상품을 내놨다. 12~36개월 동안 금리 3.8%가 적용된다.

캐스퍼를 산 뒤 3년 이내에 중고차로 팔고 현대차를 재구매하면 ‘중고차 잔가 케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캐스퍼 구입 금액에서 36개월은 64%, 24개월은 70%, 12개월은 77%를 중고차 대금으로 보장받는다.

현대카드도 현대차와 함께 오는 30일까지 캐시백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캐스퍼 전용카드 이용자는 최대 195만원 상당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