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흑자실현은 韓 스타트업의 새 이정표

이균성 논설위원 2022. 11. 1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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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의 溫技] ‘계획된 적자’의 힘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쿠팡의 사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인식됐었다. 매년 수천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보면서도 무모하리만치 대규모 투자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멀리 내다보고 진행되는 “계획된 적자”라는 회사의 설명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었다.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됐을 정도다. “언젠가는 망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되면 한국 스타트업의 투자 분위기도 덩달아 싸늘히 식을 게 우려되기도 했다.

그 불신은 한국에서 스타트업에 이런 규모의 투자가 진행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생겼을 수 있다.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우리는 그런 분위기가 부러웠을 뿐이다. 우리 시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좀처럼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보다는 소프트뱅크나 세콰이어캐피탈 그리고 블랙록 같은 일본과 미국의 큰 손이 쿠팡을 믿었다. 쿠팡은 그래서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개인적으로 쿠팡은 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쿠팡이 망하면 우리는 두 번 다시 그런 대규모 투자유치를 할 기회를 갖지 못할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쿠팡이 성공하면 다른 영역에서도 새로운 기회가 계속 열릴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다소 마음이 놓이게 된 것은 지난해 3월 미국 증시에 무난히 상장한 이후다. 쿠팡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쿠팡 물류센터(사진=쿠팡)

쿠팡은 지난 3분기에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을 내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투자한 돈만 6조원이 넘는다. 매년 1조원 가깝게 투자하고 매년 수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끝에 마침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것이다. “계획된 적자”라는 걸 입증한 셈이다. ‘밑 빠진 독’이 아니라 보통사람은 보기 힘든 거대한 청사진대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쿠팡의 흑자실현은 당연히 계획된 투자의 결과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한국에서도 좋은 그림만 그리면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는 점이다. 둘째 한국 유통시장에서 ‘메기효과’가 극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 기업의 분기 흑자전환을 놓고 다소 호들갑스런 평가일 수도 있으나 산업 생태계에서 쿠팡이 갖는 의미는 그렇게 충분히 크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에서도 성공한 스타트업은 많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대표적이며 이제 이들 기업은 대기업 반열에 올라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례도 쿠팡처럼 해외에서 이런 정도의 대규모 자금을 끌어온 데는 없다. 이 사실이 매우 특별하다. 이는 국내 시장이 결코 작기만 한 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며, 그림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초대형 혁신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말한다.

국내 유통시장에서도 그간 크고 작은 혁신이 있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도 좋은 혁신의 사례이고, 전자상거래(EC)가 나온 지도 벌써 4반세기가 지났다. 하지만 쿠팡의 등장은 국내 어떤 유통업체와도 다른 특별함이 있다. 오프라인 매장이나 온라인 플랫폼 못지않게 물류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는 유통업체가 처음으로 출현한 까닭이다. 쿠팡 때문에 풀필먼트(fulfillment)라는 외국어가 보통명사가 됐다.

풀필먼트는 제품 주문부터 매입, 보관, 포장, 배송, 재고관리, 교환·환불 등 물류와 관련된 일괄 서비스를 의미한다. 쿠팡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쿠팡은 현재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 개의 물류센터를 갖고 있다. 축구장 500개 크기다. 이 덕분에 국내 인구의 약 70%가 쿠팡 물류센터로부터 차로 15분 거리 내에 있다고 한다. 쿠팡과 일반 가정의 거리가 그만큼 좁혀진 것이다.

이번 흑자전환의 최대 요인도 그것이다.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신선식품과 일반상품을 구분 없이 보통 트럭으로 배송할 수 있게 됐다. 따로 저온유통(콜드체인)이 필요 없는 것이다. 배달 속도는 빨라지고 양은 늘어나지만 비용은 줄어들게 된다. 또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통한 물류자동화 기술도 점차 고도화하고 있다. 특히 AI를 통해 정밀한 수요 예측을 함으로써 신선식품의 재고손실을 50% 줄였다.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 늘었다. 이는 시장 평균(소매 7%, 이커머스 12%)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제 비용은 줄어드는 구조가 됐다. 이런 구조를 만드는데 8년이 걸렸고 6조원이 투자됐다. 국내 유통시장을 휘젓던 쿠팡이라는 ‘메기’가 몸집은 더 커지고 속은 더 알차게 된 것이다. 경쟁사들의 경각심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내 유통시장에 ‘메기효과’가 더 커지는 것이다.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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