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두 친구와 1박2일 수다

2022. 11. 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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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

친구들은 딸 자랑·남편 험담

“결혼, 왜 하라 해” 딸 결혼 반대

“마지못해 산다” 푸념하더니

“그렇다고 이혼할 것까지야”

가게 번성하고 남편 건강하길

셋이 뭉쳐 생선회 먹을 날 기대

지난달에 문예 심사가 있어 울산에 다녀왔다. 수요일이어서 초등학생 쌍둥이 조카들이 쉬는 토요일까지 이틀이 비었다. 부산에 사는 그 조카들을 안 보고 서울로 돌아오느냐, 아니면 이틀을 울산과 부산에서 즐겁게 지내느냐 고심하다가 두 친구를 만나는 쪽으로 마음을 잡았다.

둘은 내가 대학에 지각 입학하기 직전까지 어울려 다녔던 친구다. 두 친구도 그즈음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혼을 해 우리 셋 다 새로운 삶으로 빠져들었다. 돌아보니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각각 따로 만난 적은 있지만, 셋이 함께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울산과 부산 그리고 서울에서 각기 터전을 잡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두 친구 모두 옷가게를 운영하는 소상인이어서 도무지 자리를 비울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한 친구가 코로나 사태로 휴업한 상황이어서 셋이 뭉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부산에서 셋이 함께 보낸 1박 2일 동안은 두 친구가 살아온 이야기를 귀가 아프게 들어야 했다. 두 친구의 얘깃거리 가운데 80%는 딸 자랑이었고, 20%는 남편 험담이었다. 부산 친구의 딸이 우리를 위해 호텔도 예약해 주고, 회 먹으라고 입금까지 했다니 백 번이라도 자랑을 들어줄 만했다. 두 친구 모두 딸만 둘씩 두고 있는데, ‘딸 둘 가진 엄마가 최강’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실감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사춘기 진입과 동시에 ‘묵언 수행’에 들어간 남자 조카 셋을 겪어 본 터라 아기자기한 딸들 얘기는 내게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딸들이 차례로 전화까지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봤으니, 이어지는 딸 자랑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특히 친구들은, 힘든 형편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까지 척척 한 딸들이 고맙기 그지없다고 했다. 더욱이 한 친구의 딸은 수없이 고배를 마셨던 공무원 시험에 드디어 합격해 지난해부터 출근하고 있다며 가슴 뿌듯해했다.

딸들 자랑에 목이 쉴 정도가 되었을 즈음 남편 험담이 터져 나왔다. 두 친구의 말을 요약하면 ‘마지못해 산다’ ‘안 버리고 살아준다’였다. 두 친구가 남편들보다 경제력이 뛰어난 것도 한 원인인 듯했지만 ‘남편이 너무 말을 안 듣는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 안 듣는다는 말이 어찌 보면 매우 사소한 것들이었다. 게으르다, 고집이 너무 세다, 뭘 얘기해도 귓등으로 듣는다 등. 수십 년간 쌓이면 그것도 화낼 거리가 될 듯했다. 경쟁하듯 남편 험담을 하는 친구들에게 “근데 왜 이혼 안 하냐”라고 농담처럼 말하자 “그렇다고 이혼할 것까지야. 애들 생각해서 이혼은 절대 안 한다”고 했다.

남편 험담을 계속하다가도 뭔가를 보면 “저거 우리 신랑이 좋아하는 거다” “우리 신랑이 이런 거 잘 먹는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야, 그렇게 싫다면서 좋아하는 거, 잘 먹는 거 왜 챙겨주냐”고 하자, “같이 사는데 못 먹어서 말라비틀어지면 좋겠냐? 그래도 잘 먹는 게 낫지”라고 해서 함께 폭소를 터트렸다. 오래 살아 마치 자신을 바라보는 듯 측은지심이 생긴 데다 미운 정이 듬뿍 든 듯, 애정인지 험담인지 모를 ‘신랑 얘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친구들의 화제는 다시 두 딸에게 옮겨 갔다. 과년한 딸들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자신들은 찬성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 출산율도 낮은데 결혼시켜야지.”

나의 애국심 묻어나는 이 주장에 두 친구는 “뭐하러 결혼하라고 해. 그냥 재미있게 살라고 했다”며 도원결의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하긴 서울 친구들도 “꼭 결혼할 필요는 없다고 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라는 말을 하곤 했다.

젊은 세대가 결혼하지 않는 원인에 취업이 힘든 것과 비싼 집값이 늘 등장하지만 채근하지 않는 부모에게도 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 부모의 간섭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만. 어쨌든 결혼에 관해 젊은층 못지않게 기성세대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는 걸 요즘 실감한다.

지난달에 부산과 울산에서 나흘을 지내는 동안 가장 좋았던 건 해물을 실컷 먹었다는 점이다. 울산에 살 때 친구들끼리 아귀찜을 시켜 먹고, 회식할 때는 무조건 생선회를 먹었다. 서울 친구들을 만나면 대개 샐러드와 스파게티, 피자를 주문해 나눠 먹는다. 아니면 중국음식점에서 코스 요리를 시키거나 고깃집으로 간다. 서울에서 친구로부터 “아귀찜 먹으러 가자”는 말을 들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일식집에 스시 먹으러 가서 생선회를 주문한 일은 있었지만.

옛 친구들을 만났을 때 오래 떨어져 지내 공통 화제로 삼을만한 건 없었지만, 셋의 입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 좋았다. 아귀찜과 생선회를 실컷 먹고 50년 전통의 재첩국까지 들이키고 나니 한 세대 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이 다 사라지는 듯했다. 서울로 돌아와 또다시 펼쳐진 바쁜 일상 속으로 친구들과 나눈 대화와 함께 먹은 음식이 계속 파고든다.

그사이 울산 친구가 다시 개업해서 셋이 만나기가 또 힘들어졌다. 코로나가 끝났다지만 손님이 이전처럼 많지도 않고 도매시장의 물건도 다양하지 않다며 걱정했다. 부산 친구는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며 “기도 좀 많이 해 달라”고 당부했다. 남편 험담을 잔뜩 하더니 목소리에서 남편 걱정이 가득 묻어 나왔다.

다음에 셋이 뭉쳤을 때는 건강한 남편이 고집 안 부리고 말을 잘 듣는 데다, 딸이 잘난 사위들 만난 덕에 곧 할머니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두 친구의 가게가 번성하고 내 책이 잘 나가 셋이 신나게 떠들며 생선회 먹을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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