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정치와 타인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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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 齊 ) 나라 선왕 ( 宣王 ) 이 소를 끌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다.
어디로 끌고 가느냐고 묻자 , 흔종 ( 釁鍾 ) 에 사용할 피를 얻기 위해 도축장으로 끌고 가는 참이란다.
흔종은 소를 잡아 그 피를 새로 만든 청동 종 ( 鐘 ) 에 칠하는 의식이다.
역사 기록에 남을 만한 대규모의 약탈과 살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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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 齊 ) 나라 선왕 ( 宣王 ) 이 소를 끌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다. 어디로 끌고 가느냐고 묻자 , 흔종 ( 釁鍾 ) 에 사용할 피를 얻기 위해 도축장으로 끌고 가는 참이란다. 흔종은 소를 잡아 그 피를 새로 만든 청동 종 ( 鐘 ) 에 칠하는 의식이다. 선왕은 소에서 평소 볼 수 없었던 신체 시그널, 곧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보았다 . 불쌍한 생각이 왈칵 들었다 “ 죄 없는 소가 바들바들 떨며 죽을 곳으로 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구나 ! 양으로 바꾸어라 !” 선왕은 자기 생명의 소멸을 예감한 소의 고통에 공감했던 것이다 . 그런데 소 대신 죽는 양의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 맹자가 모순을 지적하자 선왕은 머쓱해 했다 .
맹자는 말을 틀었다 . “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한 당신의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왕이 될 자질이다 .”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그 마음이 민 ( 民 ) 을 향할 때 만인의 존경을 받는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 이어 맹자의 입에서 도도하게 쏟아지는 유가 ( 儒家 ) 의 정치학은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 곧 측은지심 ( 惻隱之心 ) 이 정치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의 반복일 뿐이었다 .
선왕은 맹자의 말을 들었던 것인가. 아니, 그랬다면 왕이 아니다. 그는 내분에 휩싸인 연 ( 燕 ) 나라를 침공하였고 일시 점령하였다. 역사 기록에 남을 만한 대규모의 약탈과 살인이 있었다. 그 뒤 연나라 장군 악의 ( 樂毅 ) 의 호된 반격으로 제나라는 72개 성을 잃고 멸망할 뻔했다가 전단 ( 田單 ) 의 분전으로 겨우 되살아날 수 있었다 . 역사는 두 차례 전쟁에 불쑥 등장한 악의와 전단이라는 두 전쟁영웅을 도드라지게 찬양한다 . 하지만 그 전쟁에는 군대의 살육과 민중의 죽음 , 약탈과 방화 , 파괴가 있었을 뿐이었다 . 이것이 소의 죽음을 불쌍히 여기던 선왕이 벌인 짓이었다 .
맹자는 다른 생명 , 다른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는 측은지심은 인간이면 모두 갖고 태어난다고 말했다 .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 측은지심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 그것이 아주 드물게 , 예외적으로 불쑥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가뭇없이 사라지는 마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 곧 항심 ( 恒心 ) 으로서의 측은지심을 갖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말이다 . 어느 날 죽을 곳으로 끌려가는 소를 불쌍히 여겨 살려주었던 선왕은 이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간의 생명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 선왕은 항심으로서의 측은지심은 없었던 인간 ,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능력이 없었던 인간이라 하겠다 . 선왕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 그것의 결여는 왕이란 존재의 속성이기도 하였다 . 이런 점에서 유가의 정치학은 실패의 역사를 반복했다 . 왕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능력을 기르기를 바랐지만 , ‘ 이타 ( 利他 ) 의 정치 ’ 로 자기의식화를 이룰 것을 염원했지만 , 성공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
유가의 정치학과는 달리 현대의 민주정은 정치인을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는다 . 하지만 그 장치를 통한 선별이 실패했다는 것을 지금의 한국 정치에서 확인한다 . 오직 권력만 행사할 뿐 ,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 ‘ 정치업자 ’ 들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장치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 아니면 그 장치를 작동시키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 우리 앞에 던져진 문제다 ( 이태원 참사로 인해 세상을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빈다 . 정말 미안하고 미안하다 !).
강명관/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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