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막장에서 땀 흘릴 광부들 지켜달라” 기적 생환한 봉화 광부들 퇴원
경북 봉화 아연 광산 갱도 붕괴 사고에서 기적처럼 생환해 치료를 받던 작업자들이 퇴원했다. 입원 이후 일주일만이다.
11일 오전 경북 안동병원에서 퇴원한 작업조장 박정하(62)씨는 “태어나서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기 같은 기분”이라며 “건강을 회복해서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박씨는 함께 고립됐다 입원한 보조작업자 박모(56)씨와 함께 퇴원했다.
작업조장 박씨는 퇴원 직후 병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구조 당국 및 국민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광산을 비롯한 산업 현장의 안전을 지켜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박씨는 “저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지금도 전국의 동료 광부들은 열악한 막장 속에 있다”면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가 안전 점검과 실태 조사를 통해 광부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날 보조작업자 박씨 또한 “고립 당시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작업조장에게서 큰 위안을 얻었다”면서 “건강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게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221시간 불태운 생존 의지
앞서 이들은 지난달 26일 봉화의 한 아연 광산에 위치한 지하 190m 깊이의 제1 수직 갱도 내에서 광석을 채굴하다 900t 규모의 토사가 무너지면서 고립됐다. 당시 고립된 작업자 7명 중 비교적 지표면에 가까운 위치였던 5명은 탈출하거나 구조됐으나, 박씨 등 2명은 장시간 고립됐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동부광산안전사무소와 한국광해광업공단, 육군, 경북소방본부 및 광산업체 A사 등이 합심해 구조 작업을 벌였다. 구조 당국은 작업자들의 생존 여부 확인을 위한 시추 작업과, 구조 진입로 확보를 위한 발파 작업 등 두갈래로 작업을 진행했다.
초기엔 작업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구조 당국이 오래된 도면을 참조해 시추 위치를 잘못 짚고, 시추를 위한 천공기도 부족해 구조가 장기화되면서 작업자 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이 기간 박씨 등은 고립된 장소에서 직접 괭이와 화약 등을 이용해 발파 작업을 벌였고, 갱도 내 지상으로 통하는 길을 찾으며 자력 탈출을 시도했다. 탈출이 여의치 않자 이들은 물과 공기가 흐르는 넓은 공간을 찾아 이동했다. 이곳에서 비닐과 널빤지 등을 이용해 임시 비닐 텐트를 쳤고, 모닥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했다. 수분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로, 영양분은 고립 당시 가져간 커피믹스 18개를 3일에 걸쳐 나눠 마시며 보충했다.
박씨 등은 “구조 직전 안전모에 달린 랜턴 배터리가 소진되면서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다”면서도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텼다”고 했다. 이들은 구조 직전까지도 서로 어깨를 붙이고 체온을 유지하며 생존 의지를 놓지 않았다. 작업조장 박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치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난 4일 오후 11시쯤 345m의 구조 진입로를 확보한 구조 당국이 박씨 등을 발견하면서 이들은 사고 발생 9일만이자, 고립 221시간만에 생환했다.
◇고향서 통원 치료 받으며 일상 복귀
박씨 등은 지난 5일 자정 안동병원 응급실로 후송돼 검사를 받고 입원했다. 당시 탈진과 저체온증, 영양불균형 등 증상을 보여 내과에서 중점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박씨 등은 장시간 고립된 탓인지 깊이 잠들지 못하거나, 자다가 놀라서 깨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안동병원 측은 안과, 정신건강의학과 등의 치료를 박씨 등에게 제공했다. 안동병원 관계자는 “최종 검사 결과 혈액 등 수치에 이상이 없었고, 상태도 호전돼 퇴원 결정을 내렸다”면서 “일부 근육통이나 심리증상 등은 환자에게 가장 익숙한 환경인 가정에서 안정을 취하며 통원 치료를 하는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씨 등은 퇴원 이후 광산업엔 종사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씨 등은 언론 인터뷰에서 “광산 일은 더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들은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 정신건강의학과 등을 오가며 통원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작업 조장 박씨는 “내일 중 부모님 산소에 다녀올 예정”이라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낀만큼 앞으로 뭘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박씨 등을 구조하는데 든 비용 4억원을 경북도에서 전액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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