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 살리고 망친 ‘숫자 마법사들’의 공과

2022. 11. 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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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방임주의를 주장한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막 찍어낸 달러 화폐를 들여다보고 있다. 부키 제공

■ 경제학자의 시대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김진원 옮김│부키

‘권력의 뇌’ 움켜쥔 경제학자들

1950년대 ‘똑똑한 바보’ 취급

1960년대 미 침체 이후 힘 키워

‘시장 = 만병통치약’ 사고 확산

금융위기땐 반시장주의자 변신

“빈익빈 부익부만 심화” 비판도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얼마나 강하게 우리 생활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경험했다. 7명으로 이뤄진 ‘그림자 정부’가 정하는 소수점 단위 숫자(금리)는 주가를 폭락시키고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며 살림살이를 바꾼다. 이 막강 기관을 작동시키는 지배적 사고방식이 바로 경제학이다.

오늘날 경제학은 권력의 뇌를 움켜쥔 규칙이다. 국가의 부나 기업의 자산에서 가계와 개인의 행동까지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고술로, 인류의 정치적·사회적 상상력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빈야민 애펠바움 뉴욕타임스 경제 및 비즈니스 주필의 ‘경제학자의 시대’에 따르면, 1950년대만 해도 경제학은 ‘똑똑한 바보들’의 숫자 놀이에 불과했다. 훗날 Fed 이사장에 오른 폴 볼커는 출셋길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한탄하면서 지하 사무실에서 ‘인간 계산기’로 일했다. Fed 이사회엔 은행가도, 변호사도, 양돈업자도 있었지만, 경제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정치가들은 책상물림인 경제학자들을 혐오하고 무시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케인스를 현실에 둔감한 수학자로 대했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기술 관료가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경제학적 손익 계산은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경제학자의 시간’이 열렸다. 일자리 유지보다 인플레이션 억제에 초점을 두는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해 정부 사업과 운영 방침을 좌지우지하는 경제학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들은 모든 영역에서 정부보다 시장이 더 나은 결정을 한다고 믿는 시장 자유주의자들이었다 .

1969년 보수주의 반혁명의 선지자 밀턴 프리드먼이 ‘타임’ 표지 인물로 선정된 일이 신호탄이었다. 그는 갓 취임한 미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설득해 징병제 폐지와 모병제 시행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로부터 경제학자의 진격이 본격화했다. 1970년 경제학자 아서 번스가 Fed 의장에 올랐으며, 1972년에는 조지 슐츠가 경제학자로는 처음 미 재무장관이 됐다. 시장을 경기 침체의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하는 사고방식이 미국을 사로잡고, 곧이어 영국·칠레·인도네시아·프랑스·중국 등 세계로 퍼졌다. 2008년 금융위기 때까지 약 40년 동안 이들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시장 신의 숭배자들이 경제학자를 사도 삼아 일으킨, 역사상 가장 짧고 가장 강렬한 의식 혁명이었다.

이 책은 시장을 앞세운 경제학자의 냉혹한 계산이 사회 진보를 향한 정치적 배려에 우선했던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과를 살핀다. 밀턴 프리드먼, 조지 스티글러, 아론 디렉터, 아서 래퍼, 월터 오이, 로버트 루카스 등 시카고대를 중심으로 뭉친 시장주의자들은 입만 열면 감세, 재정 긴축, 규제 완화, 민영화를 부르짖었다. 이들은 법원이 독점 금지법을 집행하지 못하게 설득해 시장 자유를 확대하고, 규제축소를 위해 환경과 생명을 돈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들의 정책은 세계화와 함께 번영을 낳았다. 상품, 자본, 사람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다양성과 선택 폭이 넓어졌으며, 인구 대다수의 삶이 전반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고 행복해졌다.

그러나 이 숫자의 마법사들은 그 편익을 소수 특권층에 몰아주고, 현재를 위해서 미래를 희생하는 일을 정당화했다. 결국, 이들이 사회에 남긴 것은 빈익빈 부익부, 일자리 상실과 성장률 저하, 환경파괴와 기후 위기, 사회보장제도의 악화였다. 다수의 삶의 질을 희생해 소수의 부를 낳은 셈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이들은 갑자기 반시장주의자로 변신했다. 마거릿 대처의 평소 주장처럼 ‘백만장자의 파산’ 대신 대마불사 논리로 정부의 개입을 호소했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피해는 사회화하는 ‘도덕적 파산’이 이들의 진짜 얼굴이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탄생에서 몰락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지난 50년 동안 세계 경제의 역사를 되짚는다. 경제학자의 말에 휘둘린 칠레와 아이슬란드는 몰락했고, 공학자의 생각을 더 존중한 대만은 평등과 번영을 함께 이룩했다. 욕망의 아수라장인 시장이 지배하면 공존공영의 미래는 닫힌다. 이 책의 교훈이다. 752쪽, 3만5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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