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남은 속여도 자신은 못 속인다

방민준 2022. 11. 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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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존스를 본뜬 조각상. 사진은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터 내셔널 골프클럽에 있는 조형물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골프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한번 차지하는 게 소원인 한 주말 골퍼가 마침내 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3타를 속여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트로피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들어간 그는 눈부신 트로피를 보고 기뻐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는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없었다.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설마 내가 스코어를 속여 우승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제 발이 저린 이 골퍼는 동반자의 눈을 속여 스코어를 줄일 수는 있었지만 자신만은 결코 속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의외로 우리네 골프장에서는 분명 분실되었을 것 같은 러프 속의 볼이 잘 발견된다. 모든 골퍼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당수 골퍼가 러프에 들어간 공을 열심히 찾다가 눈에 안보이면 슬그머니 자기 주머니에 있던 같은 공을 흘려놓고 "공 찾았어!"하고 외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면 족하다. 동반자를 속여 한두 점의 스코어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라운드 내내 속아 넘어가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속앓이를 하게 되고 결국 비참한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혹시 동반자에게 속인 사실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의 인격은 산산조각 나고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스코어에 집착하는 한 골퍼가 러프에 들어간 볼을 찾다가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자 주머니에 있던 똑같은 공을 러프에 떨어뜨리고 난 후 "볼이 여기 있다"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때까지 함께 볼을 찾아주는 척하던 동반자가 호주머니에서 볼을 꺼내 "이게 바로 자네 공이네"하고 말하곤 등을 돌렸다.



 



이런 창피를 당하면서까지 남을 속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한 친구가 러프에 들어가서 한참을 투닥거리더니 그 홀을 마치고 6타라고 신고했다. 정말로 6타를 동반자가 스코어카드를 적다가 울화통이 터져 말했다.
"자네, 너무하군. 저 러프에 들어가서 친 것만 해도 6타인데."
"자네가 보니까 내가 볼을 치는 것 같았지? 실은 뱀을 때려 죽이느라 그런 거야."
"그럼 가보자, 뱀이 죽어 있나?"
"그런데 뱀이란 놈이 어떻게 빠른지 여섯 번 맞고도 도망갔어."



매홀 최소한도 한 점은 속이는 게 습관이 돼버린 친구가 홀인원을 했다. 그 친구가 스코어카드에 적은 스코어는 「0」이었다.



 



벙커에서 여러 번 치고 나온 골퍼에게 몇 번 쳤느냐고 물으니 네 번 쳤다고 대답했다.
"여덟 번 치는 소리를 들었는데?"친구가 반문했다.
"아! 그중 네 번은 모래 벽에 울린 에코야."
이 정도면 더이상 할 말이 없다.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한 프로 선수가 벙커에서 샷을 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사에 빛나는 신사인 바비 존스는 US오픈에서 어드레스를 하면서 볼을 건드렸다고 스스로 보고하고 벌점을 받았다. 아무도 볼을 건드리는 것을 못 보았다. 그 1점 때문에 동점자가 나왔고 연장전에서 바비 존스는 그 동점자에게 패했다. 사람들이 그의 스포츠맨십을 찬양하자 그는 "룰대로 치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은행 강도를 안 했다고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1934년 오거스터 내셔널골프코스를 설계, 마스터스대회를 창시한 바비 존스는 그보다 4년 전인 1930년에 그랜드슬램 기록을 세웠다. 그때 28세로 13개의 타이틀을 석권하였으니 내셔널챔피언십의 62%를 우승하고 골프계를 떠난 셈이었다. 



이때의 그랜드슬램이란 브리티시오픈, 브리티시 아마투어선수권, US 아마투어선수권, US오픈 챔피언십을 같은 해에 석권했다는 뜻이다. 그는 이때까지 US오픈 네 차례, 브리티시오픈 세 차례, US 아마투어선수권 다섯 차례, 브리티시 아마투어선수권 한 차례의 챔피언경력을 쌓았다. 진정 위대한 골퍼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골퍼임을 보여준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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