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리포트] 北 도발에 무기력한 안보리···"제재 빈틈 막을 '촘촘한 3중망' 짜야"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北 ICBM발사·6차 핵실험 중대도발에
2017년 안보리 4개 대북 결의안 통과
올해는 北 도발 횟수·수위 높아졌지만
중·러 노골적 비호로 안보리 제재 무산
2022년도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북한의 도발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월 두 발의 단거리 순항미사일 발사로 시작된 북한의 도발 횟수는 미국과의 연합훈련이 재개된 9월 이후 급속히 늘어나 11월 2일 하루에만 총 27발의 탄도미사일과 지대공미사일을 쐈다. 도발의 강도 또한 증가해 미국이 도발 레드라인이라고 여겼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만 11월 현재까지 총 7번 있었으며 국지적으로는 사상 첫 북방한계선(NLL) 이남 미사일 투하, 전술조치선 이남 편대비행, 9·19 군사합의에서 금지된 해상 완충지대 포격 등 남북 간 긴장 수위를 크게 높이는 도발을 북한은 하루가 멀게 자행하고 있다. 이 중 최대 도발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일곱 번째 핵실험도 준비를 마치고 김정은의 결심만 남은 상태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북한의 도발 행태에 대한 작금의 국제사회 반응은 잠잠하다 못해 무기력하다. 이는 북한이 유사한 도발 행태를 보였던 2017년 국제사회가 미국의 리더십을 앞세워 취한 단호한 대응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2017년도에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ICBM 발사와 핵실험 등 북한의 중대한 도발에 대응해 총 4개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는 한미 동맹의 군사적 대응 태세와 함께 북한이 2018년 1월 도발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남북대화와 미북대화에 나서게 된 요인이 됐다.
핵실험을 제외한다면 2022년 북한의 도발 횟수와 수위 모두 2017년 수준을 이미 웃돈다. 그런데도 국제사회가 북한의 도발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배경에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무책임한 행보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2017년 12월 채택된 결의안 2397호에서 북한의 추가 핵실험 및 ICBM 발사가 있을 경우 북한의 유류 수입을 추가 제한하는 ‘트리거 조항’에 동의했으나 올해 5월 북한의 ICBM 실험에 대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이 안보리 표결에 부쳐졌을 때 이를 비토해 자신들의 5년 전 결정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을 저질렀다. 중국과 러시아의 노골적인 북한 비호로 인한 유엔 안보리의 파행은 다자간 제재 체제의 한계와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 구성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북한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과 러시아에 미국이 보여준 대응 전략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 체제의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① 해상영역 감시 강화
석탄·광물 해상 불법수출 北아킬레스건
美 주도 IPMDA 활용, 기업·개인 제재
② 세컨더리보이콧
사이버범죄 수익 현금화 핵심고리 차단
중·러 금융기관 제재 확대도 병행돼야
③ 동맹국과 제재 공조
유엔 다자간제재와 다른 혁신적 방법 필요
韓美日濠, 동시 독자제재로 효율성 극대화
새로운 대북 제재 체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띨 것이다. 첫째, 북한의 제재 우회를 지원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조력자들을 이들 국가의 도움 없이 식별하고 제재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자발적 제재 준수와 정보 제공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을 돕는 개인과 기업을 찾아내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북한 스스로 대외 경제 부문을 축소하면서 잠재적 제재 대상의 숫자 또한 줄어들었다. 그러나 북한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해상을 통한 유류 제품 수입과 석탄·광물의 불법 수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북 제재의 잠재력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북 제재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는 미국이 준비하고 있는 역내 해양 감시망인 ‘해상 영역 파악을 위한 인도태평양 파트너십(IPMDA)’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IPMDA는 인공위성, 초계기, 기타 원격 탐사 기기를 통해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선박 위치 추적 장치를 끈 채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의 감시·추적을 목적으로 5월 도쿄 쿼드 정상회의를 통해 발표됐다. 하지만 IPMDA는 위치 추적 장치를 끈 채 공해상에서 북한의 유류와 광물을 불법 환적하는 선박들을 감시하고 추적하는 데 그대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불법행위에 참여한 선박들의 식별과 추적만으로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할 수 없다.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은 불법행위가 의심되는 선박을 검색하거나 억류하기 위해서는 해당 선박 국적국의 동의를 요구하기 때문에 불법 환적에 가담한 선박을 공해상에서 억류해 처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가능한 것은 선박을 소유한 회사나 화물주를 식별해 제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오랜 기간 전 세계와 무역하면서 축적된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의 정보가 활용된다. 영국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와 미국의 안보 연구기관인 C4ADS는 뉴욕타임스와의 공동 탐사 조사를 통해 북한이 동아시아 범죄 조직과 결탁해 상당량의 정제유를 대만에서 조달했음을 밝혀낸 적이 있다. 참고로 이 탐사 조사에 활용된 정보는 모두 공개돼 있는 선박·기업·개인에 대한 정보였다. 여기에 미국과 동맹국들의 정보 자산이 결합된다면 불법행위에 가담한 조력자들을 식별하는 과정과 시간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둘째, 북한을 돕는 조력자들을 제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2차 제재 또는 세컨더리보이콧의 더욱 적극적인 활용이다. 이는 대북 제재 대상이 물자를 거래하는 기업이나 개인을 넘어 북한의 무역 거래와 외화 확보를 용이하게 하는 금융기관으로까지 확대됨을 의미한다. 이미 미국은 올 5월 러시아의 극동은행과 스푸트니크은행을 제재했다. 이 중 블라디보스토크에 본사를 둔 극동은행은 2022년 현재 러시아 내 자산 순위 13위 은행인 러시아지방개발은행(RRDB)의 자회사로서 러시아 극동 지방과 동시베리아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춘 중견 은행이다.
참고로 미국이 러시아 은행들을 제재한 시기는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이 상정한 대북 제재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보내는 경고인 동시에 다자간 제재의 한계를 인식한 미국이 지금까지 자제해왔던 중국과 러시아의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 카드를 꺼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최근 집중해온 사이버 금융 범죄 수익을 현금화할 경우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고리 또한 금융기관들이기 때문에 북한의 사이버 불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러시아 금융기관에 대한 미국의 세컨더리보이콧 제재 확대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새 대북 제재 체제는 유엔이 아닌 미국과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입장국(like-minded states)’ 중심으로 구축된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에서 동맹과 파트너십이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자산임을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동맹국들과의 연대는 미국이 실시하는 독자 제재 조치의 승수효과를 가져오며 이는 한국의 대북 제재 정책이 미국의 것과 훨씬 가깝게 밀착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독자 제재 조치가 미국의 독자 제재 조치를 한미 공조의 상징적 차원에서 시차를 두고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한미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일본과 호주도 동시에 독자 제재 조치를 시행해 긴밀한 공조를 통해 제재 조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특히 역외 동맹국들의 대북 제재 참여에 대한 대가로 한국 또한 역외 안보 문제에 일정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올해 초 미국과 동맹국들이 러시아가 침공하기도 전에 미리 제재 조치를 조율해놓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마자 바로 시행에 들어간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동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제재 전략의 예시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주도로 구축되고 있는 새로운 대북 제재 체제에는 기존의 유엔을 통한 다자간 대북 제재 체제와는 다르게 혁신적인 방법과 동맹들 간의 유기적 공조가 강조된다. 미 정부가 구축하려는 제재 전략을 파악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만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한국 주도의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고명현 선임연구위원은···국내 최대의 민간 안보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북한과 주요 안보 이슈를 다루는 국제 안보 문제 전문가이다. 미국 랜드연구소 산하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국방부 자문위원, 미국 신미국안보센터(CNAS)와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급차 '비켜주세요' 호소에도 끝까지 막아…'민폐 그랜저'의 최후
- '날 놀려 화났다' 동급생 찌른 그 학생…촉법이었다
- '청담동 술자리 의혹' 첼리스트…연주영상 모두 삭제, 왜?
- 연료 떨어져 고속도로서 멈춘 승용차…뒷차 '쾅쾅' 아수라장
- '왜곡 보도 시정 안 해'…MBC, 尹순방 전용기 못탄다
- '지하철 '84분' 지연, 실화냐'…전장연 시위에 시민 '분통'
- 이태원 출동 소방관, '만취' 부사관이 폭행…'십자인대 파열'
- '죄송하다' 눈물 쏟은 김건희…참사 '장기기증' 장병 가족 위로
- '음성' 나온 마약 투약 50대…알고보니 아내의 소변이었다
- 경찰에 붙잡히면서도 메롱…英 찰스 3세에 계란 던진 2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