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맥주도 아니라던 필라이트, 16억캔 팔린 이유

김아름 2022. 11. 1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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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이트 누적 판매량 16억캔 돌파
출시 5년 7개월만…초당 9.4캔 팔려
매년 신제품·캐릭터 마케팅 주효

'맥주'라고 하면 하이트와 카스를 자동으로 연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실 두 제품은 맛도 비슷했습니다. 눈을 감고 따른 후 마셔 보면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죠.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마시는 셈이었습니다. 

그나마 각 사가 특징이라 내세우던 미묘한 맛의 차이도 소주를 타는 순간 무의미해졌습니다. 알코올의 독한 향과 감미료의 단 맛이 홉과 보리 맛을 눌렀기 때문이죠. 우물 안 경쟁이 이어지고, '어차피 맥주는 소주 타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까지 더해지면서 우리의 맥주 문화는 그렇게 굳어져 갔습니다.

그러던 국내 시장에 수입맥주의 공세가 시작됩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502만 달러였던 맥주 수입액은 2010년 4375만 달러로 '퀀텀 점프'를 이룹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4년 만인 2014년에는 1억1169만 달러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돌파했죠. 또 4년 만인 2018년엔 3억 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습니다. 가벼운 라거만 맥주라고 생각했던 국내 소비자들에게 온갖 맛의 수입맥주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죠. 

다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수입맥주가 들어오면서 전반적인 '체감 맥주 물가'는 올랐습니다. 실제 2011년 수입된 맥주는 ㎏당 1009원에 불과했지만 맥주 수입량이 정점에 다다랐던 2017~2018년에는 1250원을 웃돌게 됩니다. 소비자들도 주머니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죠. 

다양한 수입맥주들. /사진=비즈니스워치

이때 등장한 제품이 국내 최초의 맥주형 발포주인 하이트진로의 필라이트입니다. 2017년 4월 출시된 필라이트는 이미 일본에서는 대세가 된 '발포주'라는 카테고리를 끌고 들어왔습니다. 주세법상 '맥아 함량 10%'를 넘어야 맥주로 분류되는 점을 이용해 맥아 함량을 낮춰 '맥주' 분류를 피해 가격을 낮춘 제품입니다. 

출시 당시 필라이트의 출고가는 355㎖캔 기준 717원으로, 동일 용량 맥주 대비 40% 이상 저렴했습니다. 대형마트에서도 '12캔 1만원'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워 '가성비 맥주'로 빠르게 인지도를 높였죠. 

사실 필라이트가 출시될 당시엔 발포주 카테고리에 의심 섞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였죠. 이미 수입맥주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가격만 보고 '맛 없는 맥주'를 사 먹겠냐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필라이트는 출시하자마자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출시 7개월 만인 2017년 11월 1억캔 판매를 돌파하더니 5개월만인 이듬해 4월엔 2억캔을 넘어서며 판매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이후로는 3~4개월마다 1억캔 판매 페이스를 이어갔죠. 출시 5년 7개월 만인 이달 초까지 16억3000만캔이 팔렸습니다. 필라이트의 성공에 경쟁사인 오비맥주도 발포주 '필굿'을 내놨지만 경쟁 상대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필라이트의 성공엔 다양한 해석이 붙습니다. 우선 압도적인 가성비가 있겠죠. 4캔 1만원이 기준이던 맥주 시장에서 12캔 1만원이라는 가격은 하이트진로 측의 표현대로 '말도 안 되는' 경쟁력이었죠. 특히 음주량은 많지만 수입이 적은 20대와 복잡하고 깊은 맛보다는 시원한 청량감을 중시하는 4050에게 높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맛이 형편없었다면 가성비에 한 번 구매했던 소비자들도 등을 돌렸겠죠. 맥아 함량은 맥주보다 적지만 100% 아로마 호프를 이용해 풍미는 지켜냈습니다. 2001년부터 일본에 발포주를 수출해 오고 있었던 만큼 제조 노하우도 충분했죠. 

필라이트의 성공 이후에도 정체하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있는 점도 '롱런'의 비결입니다. 하이트진로는 2018년엔 향과 잔미를 최소화하고 깔끔한 목넘김을 강조한 '필라이트 후레쉬'를 선보입니다. 필라이트 후레쉬는 '원조'를 제치고 필라이트의 전체 매출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2019년 바이젠(밀맥주), 2020년 라들러(레몬맥주), 2021년 라들러 자몽을 선보였고 올해 10월에도 국내 최초의 체리맛 발포주 '필라이트 체리'를 내놨습니다. 꾸준히 소비자 반응을 살피며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2017년 4월 필라이트 론칭 광고./사진제공=하이트진로

코끼리 캐릭터 '필리'를 내세운 캐릭터 마케팅도 좋았습니다. 지금까지도 필라이트는 '코끼리 맥주'로 불리며 대표적인 캐릭터 마케팅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이후 하이트진로가 '진로 두꺼비'를 내세운 '두껍상회'로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 역시 필리의 성공이 뒷받침됐다는 평가입니다.

너무 좋은 이야기만 했나요? 맛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나옵니다. 맥아가 적은 만큼 맥주의 맛이 거의 나지 않는, 보리맛 탄산음료라는 비판입니다. 하지만 가격을 고려하면 맛이 나쁘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타깃층이 명확한 만큼, '더 맛있는' 제품을 추구하다가 본질을 잃는 것보단 낫다는 거죠. 
 
어쨌든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대안'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필라이트의 선전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 자극을 받아 더 맛있는 발포주가 나온다면, 발포주만 못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다른 '맥주'들도 맛을 개선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죠. 주당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을 겁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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