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못했는데 촬영하며 인어급으로… 염정아의 직업정신 [라제기의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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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염정아의 연기 인생은 여느 배우들과 사뭇 다르다.
염정아는 지난 9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대 때는) 연기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나이 들어서도 연기를 계속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우치'(2009)의 여배우처럼 도도한 듯 꺼벙한 연기를 해도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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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상영 중)의 한 장면. 젊은 시절 세연(염정아)은 처음 만난 남자 진봉(류승룡)의 뺨을 때린다. 차지게 맞은 진봉이 놀라서 던진 질문은 “배구했죠”다. 류승룡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대사로 관객의 웃음을 부른다. ‘시동’(2019)을 본 사람이라면 류승룡이 왜 저 애드리브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염정아는 ‘시동’에서 배구선수 출신 정혜를 연기했다.
세연과 정혜는 닮은꼴이다. 둘 다 불우하다. 정혜는 아들 택일(박정민)을 홀로 키운다. 택일은 사고뭉치다. 아들을 위해 억척스레 살아가는 엄마 마음을 몰라준다. 정혜는 갑작스레 폐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여행은커녕 새 옷을 마다하며 가족을 위해 아껴 살았다. 무뚝뚝한 남편은 퉁명스럽고, 아이들은 무심하다. 인생 내리막길을 걷는 두 중년여성은 맞춤옷처럼 염정아에게 알맞다.
젊은 시절 배우 염정아는 차갑다는 형용사와 도시라는 명사가 어울렸다. 1991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듬해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배우가 된 지 올해로 만 30년이 됐다. 염정아의 연기 인생은 여느 배우들과 사뭇 다르다. 20대 초반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긴 했으나 서른을 넘어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유는 뭘까. 연기에 대한 재미였다. 염정아는 지난 9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대 때는) 연기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나이 들어서도 연기를 계속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분기점은 ‘장화, 홍련’(2003)이었다. 염정아에게는 첫 흥행 영화였다. 314만 명이 극장에서 봤다. “연기를 이렇게 하면 관객이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했고 “관객의 관심을 받으니 힘이 났다”고 한다. 곧바로 ‘범죄의 재구성’(2004)이 212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으니 “연기가 너무 재미있어 지고” 상승 곡선을 탈 만했다.
단지 연기를 즐길 수 있다고 대중의 마음을 살 수 없다. 감독과 제작자의 눈길을 잡기도 쉽지 않다. 염정아는 다면성이라는 무기를 지녔다. ‘범죄의 재구성’의 서인경처럼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불량한 인물도, ‘오래된 정원’의 한윤희같이 우직하게 사랑하는 역할도 어울린다. ‘전우치’(2009)의 여배우처럼 도도한 듯 꺼벙한 연기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마트 비정규직원으로 파업을 주도하다가(영화 ‘카트’) 대통령 등을 후려치는 영부인(‘강철비2: 정상회담’)으로 변신해도 이물감이 없다. 그는 공포물도 코미디물도 범죄물도 정치물도 멜로물도 소화할 수 있다. 심지어 액션물까지 가능하다. 요란하지 않게, 소리 없이 강한 배우다.
팔색조로 수식될 만한 연기력 외에도 성실함을 갖췄다. 액션에 능수능란할 운동신경을 지닌 게 아닌데도 그에게 ‘뺑반’(2019)과 ‘외계+인’(2022), ‘밀수’(후반작업 중), ‘크로스’(촬영 중) 등 액션물 출연 제안이 이어지는 이유다(염정아는 “어떻게 하든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밀수’ 촬영 뒷이야기는 염정아의 직업정신을 엿보게 한다. 류승완(‘베를린’ ‘베테랑’ ‘모가디슈’ 등) 감독의 신작 ‘밀수’는 1970년대 작은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염정아는 밀수에 휘말리게 되는 마을 해녀 역할을 맡았다. 수영에 당연히 능통해야 한다. 하지만 캐스팅되기 전까지 염정아는 수영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촬영 당시에는 거의 인어가 다 돼 몇몇 장면 빼고 수중에서 고난이도 연기 대부분을 소화했다.”(‘밀수’ 제작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
염정아의 최근 활약은 영화계에서 새 길을 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도 하다. 20대 청춘 스타였던 배우들은 나이가 들수록 주변부로 밀려난다. 나이 50세가 넘어서도 여자 배우가 스크린 중심을 지키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밀수’에서 염정아와 함께 협업한 김혜수 정도밖에 없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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