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이후 20여 년…K뮤지컬, 이제 본고장 향한다

장병호 2022. 11. 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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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억 시대 맞은 K뮤지컬, 이제는 해외로]①
한국 뮤지컬 시장, 올 연말 4000억 돌파 확실시
2001년 산업화 신호탄 쏜 이후 20여 년 만의 성과
아시아 넘어 브로드웨이 등 영미권 진출 시도 '활발'
"장기적 안목으로 건강한 시장 성장 함께 점검해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한국 뮤지컬시장이 ‘연간 매출 4000억’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2001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공연의 흥행을 기점으로 뮤지컬 제작사들이 산업화를 위한 노력에 나선 지 20여 년만이다. 국내 시장 확대와 더불어 뮤지컬 본고장인 미국과 유럽 진출을 위한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뮤지컬이 K컬처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K뮤지컬’의 현황을 살펴봤다.

2022년 공연 시장 장르별 티켓 판매액 현황. (디자인=김일환 기자)
올해 10월까지 뮤지컬 티켓 판매액 3261억원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10월 31일까지 뮤지컬 티켓판매액은 3261억 6705만 원이다. 전년 동기(1689억 3142만 원)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엘리자벳’ ‘마틸다’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의 티켓 판매가 순조롭고, 연말까지 ‘스위니토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물랑루즈’ ‘영웅’ 등 대작들의 공연이 예정돼 있어 뮤지컬 업계는 올해 4000억 원 시장 돌파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산망에 잡히지 않는 MD 상품 등의 판매까지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이 수치는 공연 시장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출범 이후 집계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출범 이전까지 뮤지컬계는 주요 티켓 예매처인 인터파크 판매액을 기준으로 시장 규모를 추정해왔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8년엔 3500억 원을 찍었고, 2019년 또한 3000억 원 규모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공연통합전산망이 2019년 6월 도입됐고 올해는 코로나19에 따른 좌석 띄어앉기 등의 조치가 없어 정확한 시장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다.

뮤지컬계는 첫 4000억 원 돌파라는 점에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공연계가 코로나19 위기의 종식을 선언하게 하는 상징적인 수치라는 점에서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4000억 규모의 뮤지컬 시장이 크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전체 공연시장에서 뮤지컬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라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며 “20여 년 만에 이 같이 성장했다는 것은 뮤지컬이 방송, 영화, 대중음악, K팝, 게임처럼 성장할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뮤지컬은 2000년까지 150억 원 규모에 불과했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공연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산업화의 신호탄을 쐈다. 당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6개월 장기 공연으로 선보인 ‘오페라의 유령’은 19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2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뮤지컬시장의 출발점이 됐다. 이후 20여 년간 샤롯데씨어터, 디큐브아트센터, 블루스퀘어 등 뮤지컬 전용극장이 대거 개관하고 ‘지킬 앤 하이드’ ‘맘마미아’ ‘모차르트!’ 등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과 ‘영웅’ ‘프랑켄슈타인’ ‘웃는 남자’ 등 대형 창작뮤지컬이 흥행에 성공하며 뮤지컬 시장은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왔다.

9월 북미 지역에서 개봉하는 공연 실황 영상 ‘팬텀: 더 뮤지컬 라이브’의 캐나다(왼쪽) 및 미국 포스터. (사진=EMK뮤지컬컴퍼니)
‘K뮤지컬’, 아시아 넘어 북미·유럽으로

코로나19 위기를 이겨내고 국내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으면서 한국 뮤지컬은 이제 ‘K뮤지컬’로 해외시장을 향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한국과 문화가 비슷한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시장을 겨냥했다면, 최근엔 뮤지컬의 본 고장이라 할 북미와 유럽으로 진출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공연제작사 오디컴퍼니는 F.S.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뮤지컬로 제작해 브로드웨이 공연을 추진 중이다. 토니상 후보에 올랐던 연출가 마크 브루니와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 작사가 네이슨 타이슨,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활동 중인 극작가 케이트 케리건 등이 창작진으로 참여하는 작품으로 현재까지 세 번의 리딩(낭독) 워크숍을 진행했다. 오디컴퍼니는 12월 중 네 번째 워크숍을 가진 뒤 2023~2024년 중 미국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갖고 브로드웨이와 국내 공연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오디컴퍼니 관계자는 “향후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리드 프로듀서로서 직접 프로듀싱을 목표로 충실히 작품 개발을 하고 있다”며 “인터내셔널 라이선스로 세계 각국의 언어로 선보일 수 있도록 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 글로벌 프로듀싱 컴퍼니로서 위상을 높여가고자 한다. 현재 중소극장 규모의 공연을 포함해 7개의 창작작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디컴퍼니는 ‘위대한 개츠비’ 외에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두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이야기를 그린 ‘피렌체의 빛’, 쥘 베른 소설 ‘해저 2만리’에서 영감을 받은 ‘캡틴 니모’ 등의 글로벌 창작 뮤지컬을 개발하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도 해외 진출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엔 뮤지컬 ‘팬텀’의 공연 실황을 담은 ‘팬텀: 더 뮤지컬 라이브’를 북미 40여 개 도시에서 상영해 북미 시장을 향한 문도 두드렸다. 또한 해외 진출을 겨냥해 한국적 소재를 다룬 소설 ‘한복 입은 남자’의 뮤지컬화도 최근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뮤지컬시장의 성장을 반기면서도 이제는 매출을 넘어 뮤지컬 업계 내부의 건강한 성장도 챙겨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공연시장은 공연장 등 물리적 한계가 있고 내수 시장 또한 이미 포화상태”라며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시장을 넓히기 위해선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시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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