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랩] 관에 들어가서도 성 고정관념을 따라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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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50대 장례 경험이 있는 13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주 역할과 영정사진·위패를 드는 역할 등 주요 역할을 '남성이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다.
성차별적인 장례 관습은 2022년에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6월 성소수자 친구의 장례식을 치른 양씨도 성차별적 장례 관습에 맞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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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50대 장례 경험이 있는 13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주 역할과 영정사진·위패를 드는 역할 등 주요 역할을 ‘남성이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다.
성차별적인 장례 관습은 2022년에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아티스트 이랑(36)씨와 양선우(활동명 홀릭·45)씨는 장례 내내 이 관습과 맞서 ‘투쟁’해야 했다. ‘여자라서 해야 한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걸 따르지 않은 채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를 치른 두 사람이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여자는 상주 완장 못 차요. 머리에 핀만 꽂을 수 있어요.”
지난해 12월 언니를 떠나보낸 이씨가 병원 장례식장에서 상조회사 직원에게 상주 양복과 완장을 달라고 하자 돌아온 말이다. 이씨는 언니의 장례식에 부모님이 상주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서 결심했다. ‘그렇다면 언니의 장례를 이끌 사람은 나밖에 없겠구나.’ 그러나 직원은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씨는 “한참을 실랑이했다. ‘저 남자니까 그냥 주세요!’ 하니까 그제야 양복과 완장을 줬다. 아무리 장례식이라도 안 되는 게 왜 이렇게 많나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성소수자 친구의 장례식을 치른 양씨도 성차별적 장례 관습에 맞서야 했다. 고인은 생전 바지만 입고, 화장을 하지 않았다. 상조회사에서는 입관할 때 고인에게 치마 수의를 입혀야 한다고 했다. 여성이라면 화장도 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수의를 입을 것인지’도 성별에 따라 정해져 있다는 게 황당했어요. 가장 고인다운 모습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싸워야만 했죠.”(양선우)
두 사람은 장례식이 지나치게 관습과 엄숙함에 갇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언니의 ‘마지막 무대’를 이렇게 장식할 순 없다고 느꼈다. 칙칙하고 무거운 장례식장의 모습은 반짝거리는 예쁜 소품을 좋아하고 라틴 댄스를 사랑하던 언니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벽, 틈을 내 언니가 좋아하던 소품을 챙겨와 장례식장을 꾸몄다. 그해 성탄절에 있을 무대를 앞두고 준비했던 언니의 라틴 댄스 의상도 전시했다.
“장례식이라고 꼭 슬프고 엄숙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에겐 장례식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사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례식장을 언니의 마지막 무대라고 여기고, 사람들이 언니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죠.”(이슬)
양씨는 장례식장을 떠날 때 관을 누가 운구할 것이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성소수자였던 고인의 친구는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관습 때문에 가깝게 지내지도 않던 남성들이 관을 들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여성 6명이 관을 같이 들었다”고 했다.
틀을 깬 장례식 광경을 본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도 응원을 전했다.
“운구 차량을 운전하던 분이 ‘여자들이 관을 드는 건 처음 본다’ ‘혹시 고인이 여성단체에서 일했냐’면서 엄청 신기해하더라고요. 이런 광경이 많아져야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양선우)
“저는 에스엔에스(SNS)에 장례식 광경을 계속 올렸어요. 이런 장례식도 있다고 보여주려고요. 그걸 보고 온 손님들은 언니가 좋아할 만한 공주 왕관이나 요술봉 세트, 핑크색 꽃다발 등 선물을 가져왔어요. 언니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손님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장례식장 풍경, 꽤 괜찮지 않나요?”(이랑)
두 사람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슬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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