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랩] 관에 들어가서도 성 고정관념을 따라야 하나요?

박고은 2022. 11. 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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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50대 장례 경험이 있는 13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주 역할과 영정사진·위패를 드는 역할 등 주요 역할을 '남성이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다.

성차별적인 장례 관습은 2022년에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6월 성소수자 친구의 장례식을 치른 양씨도 성차별적 장례 관습에 맞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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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이랑·활동가 홀릭의 장례식 성차별 투쟁기
<슬랩> 섬네일

95%.

지난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50대 장례 경험이 있는 13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주 역할과 영정사진·위패를 드는 역할 등 주요 역할을 ‘남성이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다.

성차별적인 장례 관습은 2022년에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아티스트 이랑(36)씨와 양선우(활동명 홀릭·45)씨는 장례 내내 이 관습과 맞서 ‘투쟁’해야 했다. ‘여자라서 해야 한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걸 따르지 않은 채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를 치른 두 사람이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여자는 상주 완장 못 차요. 머리에 핀만 꽂을 수 있어요.”

지난해 12월 언니를 떠나보낸 이씨가 병원 장례식장에서 상조회사 직원에게 상주 양복과 완장을 달라고 하자 돌아온 말이다. 이씨는 언니의 장례식에 부모님이 상주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서 결심했다. ‘그렇다면 언니의 장례를 이끌 사람은 나밖에 없겠구나.’ 그러나 직원은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씨는 “한참을 실랑이했다. ‘저 남자니까 그냥 주세요!’ 하니까 그제야 양복과 완장을 줬다. 아무리 장례식이라도 안 되는 게 왜 이렇게 많나 싶었다”고 했다.

이랑씨가 지난해 12월10일 세상을 떠난 언니의 장례식장을 언니가 좋아하던 소품으로 꾸며놨다. 이랑씨 제공

지난해 6월 성소수자 친구의 장례식을 치른 양씨도 성차별적 장례 관습에 맞서야 했다. 고인은 생전 바지만 입고, 화장을 하지 않았다. 상조회사에서는 입관할 때 고인에게 치마 수의를 입혀야 한다고 했다. 여성이라면 화장도 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수의를 입을 것인지’도 성별에 따라 정해져 있다는 게 황당했어요. 가장 고인다운 모습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싸워야만 했죠.”(양선우)

두 사람은 장례식이 지나치게 관습과 엄숙함에 갇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언니의 ‘마지막 무대’를 이렇게 장식할 순 없다고 느꼈다. 칙칙하고 무거운 장례식장의 모습은 반짝거리는 예쁜 소품을 좋아하고 라틴 댄스를 사랑하던 언니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벽, 틈을 내 언니가 좋아하던 소품을 챙겨와 장례식장을 꾸몄다. 그해 성탄절에 있을 무대를 앞두고 준비했던 언니의 라틴 댄스 의상도 전시했다.

지난해 6월 고인이 된 성소수자 친구의 제사상. 양선우씨 제공

“장례식이라고 꼭 슬프고 엄숙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에겐 장례식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사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례식장을 언니의 마지막 무대라고 여기고, 사람들이 언니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죠.”(이슬)

양씨는 장례식장을 떠날 때 관을 누가 운구할 것이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성소수자였던 고인의 친구는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관습 때문에 가깝게 지내지도 않던 남성들이 관을 들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여성 6명이 관을 같이 들었다”고 했다.

이랑(36)씨가 언니의 영정 사진을 들고 화장터로 향하는 모습. 이랑씨 제공

틀을 깬 장례식 광경을 본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도 응원을 전했다.

“운구 차량을 운전하던 분이 ‘여자들이 관을 드는 건 처음 본다’ ‘혹시 고인이 여성단체에서 일했냐’면서 엄청 신기해하더라고요. 이런 광경이 많아져야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양선우)

“저는 에스엔에스(SNS)에 장례식 광경을 계속 올렸어요. 이런 장례식도 있다고 보여주려고요. 그걸 보고 온 손님들은 언니가 좋아할 만한 공주 왕관이나 요술봉 세트, 핑크색 꽃다발 등 선물을 가져왔어요. 언니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손님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장례식장 풍경, 꽤 괜찮지 않나요?”(이랑)

두 사람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슬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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