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친구의 친구들도 행복했으면

한겨레 2022. 11. 1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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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나는 매일 그려요

이정덕·우지현 글·그림 l 어떤우주(2022)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 잔치가 열렸다 . 책을 쓰고 만드는 분들 , 독자들과 지역 예술인들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 행사 며칠 전부터 도서관 안팎에 포스터가 붙었다 . 조용한 동네라 조그만 그림 장식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 나도 날짜를 봐두었다가 토요일 아침 일찍 도서관을 찾았다 .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독립 출판사 부스를 돌며 독특한 책을 몇 권 샀다 . 독서교실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준다는 핑계로 책갈피와 엽서도 잔뜩 샀다 . 행사 시간표에는 춤과 노래 공연도 있었다 . 한쪽에서는 고추 장아찌며 단호박 식혜를 팔았다 . 늘 드나들던 도서관 로비 곳곳이 반짝였다 . 사람들은 대부분 웃고 있었다 .

<나는 매일 그려요 >는 그날 만난 책 중 하나다 . ‘꼬마 무지개와 구름 강아지 ’라는 부제에 딱 맞게 , 표지에는 무지개와 하얀 강아지가 웃으며 달리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 아니 , 새겨져 있다 . 그림과 바느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표지만으로도 마음의 어느 부분이 녹기 시작했는데 , 면지에서 판권으로 이어지는 그림을 보고는 좋아서 그만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 어떻게 바느질로 이렇게 귀여운 새를 ,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표현할 수 있을까 ? 강아지의 졸린 눈은 또 어떻고 .

“그리고 싶은 건 모두 그릴 거예요 . 좋아하는 건 다 그릴 거예요 .”

‘좋아서 ’ 그림을 그린다는 꼬마 무지개는 어린이의 모습 그대로다 . 줄거리라고 할 내용은 없지만 , 그래서 더욱 어린이의 그림 같다 . 책을 보면서 몇번이나 손으로 그림을 더듬었다 . 손끝에 실의 질감이 느껴질 것만 같아서다 . 바느질 몇 땀으로 구름과 비를 표현한 재치에는 웃음이 났다 . 분명히 작가들도 웃으면서 만들었을 것이다 . 연필부터 우주선까지 , 책에 등장하는 이들 대부분이 웃고 있기 때문이다 . 찾아보니 이정덕 , 우지현 두 작가는 모녀지간이라고 한다 . 책을 산 부스에 있던 두 여성이 떠올랐다 .

꼬마 무지개는 그림을 그리면서 친구들뿐 아니라 “친구의 친구들도 행복했으면 좋겠 ”다고 한다 . ‘친구의 친구들 ’이라니 , 갑자기 행복의 규모가 커진다 . 세상 모두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단순하고 확실한 믿음 , 이것이 어린이의 마음이다 . 꼬마 무지개가 그림을 그리듯이 누군가는 춤과 노래로 , 요리로 세상에 행복을 더할 것이다 . 어쩌면 축제는 행복의 양을 늘리기 위해 친구의 친구들이 서로를 만나는 자리인지 모른다 .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에는 주황색 고깔모자에 까만 망토를 두르고 호박 모양 바구니를 든 어린이들을 보았다 . 핼러윈을 앞두고 이 틈에 사탕을 받는 모양이었다 . 나는 달콤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

다음날 아침 , 친구의 친구들이 축제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지금 수많은 친구가 국가가 정한 방식이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한다는 것을 안다 . 나도 그 친구 중 하나다 . 우리는 슬퍼하고 화내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 그렇게 친구의 명복을 계속해서 빌 것이다 .

/김소영 독서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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