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족 살인’ 7건 분석…그 뒤엔 자본·국가의 착취 [책&생각]

한겨레 2022. 11. 1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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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논픽션 작가 이시이 고타가 심층 취재한 일곱 가지 '가족살인' 사건.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자본주의, 익명의 도시와 대척점에 놓인 가족이란 틀거리의 전근대성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도시는 자본주의 사회의 극단인데, 가족은 냉정한 도시가 튕겨낸 잉여를 받아내는, 혹은 그러해야 한다고 간주되는 무한 범퍼다.

왜 가족은 자본 또는 자본과 결탁한 국가의 착취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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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논픽션 작가의 심층 취재
치매·빈곤·우울증·노화·조현병…
도시가족에 떠넘겨진 사회 병리
가까이 있었기에 일어난 비극들

가족의 무게 - 가족에 의한 죽음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시이 고타 지음, 김현욱 옮김, 조기현 해제 l 후마니타스 l 1만8000원

일본 논픽션 작가 이시이 고타가 심층 취재한 일곱 가지 ‘가족살인’ 사건. 부모자식, 형제자매, 부부 사이에 벌어진 비극을 다룬다. 핏줄을 나눈 가족 사이에 어찌 그런 일이? 일본에서 벌어진 극히 일본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아버지가 은둔형 외톨이 아들을 장기간 돌보다가 △일에 치인 자매가 우울증 엄마 돌봄을 포기하고 △빈곤으로 추락한 아들이 노모와 함께 △우울증 언니를 돌보다 자신도 우울증에 걸려 △늙은 아내가 늙고 병든 남편을 돌보다 △조현병 엄마가 다섯 살 아이를 △가정폭력에 시달린 엄마가 두 아이를.

사례들의 특징은 가족 중 누군가에게 생긴 문제를 나머지 가족이 떠안으면서 벌어진 사건인 점. 극단적 파국에 이른 경우이긴 하지만 지은이가 환기하는 것은 우리 시대, 어느 도시가족한테서나 일어날 법한 ‘돌봄의 버거움’ 문제다. 틀림없이 ‘일본스러움’이 찐득한데, 자본주의 사회의 병리인 점에서 우리와 오십보백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자본주의, 익명의 도시와 대척점에 놓인 가족이란 틀거리의 전근대성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30퍼센트가량이 친족에 의한 사건이라 한다. 일본에서는 이 비율이 절반에 가깝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족은 혈연 공동체. 대를 이어 유전자를 전승하는 게 원기능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외 노동력 공급원 구실이 더 크다. 두 기능을 가진 인력 재생산이되 효율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핏줄 문제는 ‘당신들 몫’이고 다만 노동력으로 인력을 선별 수용할 따름이다. 즉, 돈이 될 만하면 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린다. 돈 안(또는 덜) 되는 잉여는 곧 ‘루저’라 칭하는데, 실제로 이들은 함께 보듬어야 함에도 일등 중시 사회가 간과한 부분, 혹은 그런 사회가 빚은 병리다. 은둔형 외톨이, 치매, 빈곤, 우울증, 노화, 조현병, 가정폭력 등 책에서 언급한 사안이 그 범주에 든다.

문제는 루저가 오로지 가족 몫으로 남는다는 점. 도시는 자본주의 사회의 극단인데, 가족은 냉정한 도시가 튕겨낸 잉여를 받아내는, 혹은 그러해야 한다고 간주되는 무한 범퍼다. 도시가족에게는 짐을 나눠질 친족집단이 없고, 이웃에도 기대하기 힘들다. 비교적 사회복지가 잘 갖춰진 일본이지만 ‘미우나 고우나’ 가족의 전근대성은 견뎌야 하는 짐이 호락하지 않은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다. 책에서 가족 내 루저는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등장하는데, 구성원은 거꾸로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된다. 물론 어쩌다 이렇게 됐어? 하는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사안이 불거지고 터지는 장면에서 어찌 그럴 수가? 하지만, 끄트머리에 이르면 무자비한 자본에 의해 함께 깨지는 희생양임을 안다.

왜 가족은 자본 또는 자본과 결탁한 국가의 착취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그것들의 입맛에 맞는 규격화 노동력을 자비로 생산하고 공급해야 하는가. 그렇지 못하거나, 밀려난 잉여에 대한 책임을 왜 오로지 덮어써야 하는가. 젊음을 헌납하고 낡아버린 몸뚱어리를 언제까지 스스로 건사해야 하는가.

책의 내용은 이렇게 읽는 이를 꽤나 열 받게 만든다. 사건 기록,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사건 경과를 복기하는 지은이의 차분함에도 은근히 열 받는다. 군더더기가 없어 더 그렇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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