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신으로 섬기라던 시대…과연 누굴 위해서? [책&생각]
경제학자들이 정책 결정에 영향력
시장 만능주의 정착시킨 40여년
사회 분열시킨 불평등 숙제로 남아
경제학자의 시대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김진원 옮김 l 부키 l 3만5000원
언제부턴가 시장은 모든 것을 조정할 줄 아는 전지전능한 신이 됐고, 사람들은 경제 성장이라는 지상목표를 통해 이 시장이라는 새로운 신을 섬겼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이 종교에도 특별히 열정적으로 교리를 만들고 발전시킨 사제들이 있었는데, 바로 경제학자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경제학자들은 미국을 근거지로 삼아 자신들이 복무하는 신에 정치를 복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뉴욕타임스> 편집위원 빈야민 애펠바움(44)이 2019년에 펴낸 책 <경제학자의 시대>는 지난 40여년 동안 경제학자가 어떻게 세상을 바꿔놨나 톺아본다. 지은이는 1969년부터 2008년까지를 ‘경제학자의 시대’로 부르는데, 이 시기 경제학자는 “과세와 공공 지출을 제한하고, 규모가 큰 경제 부문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향한 길을 마련해 나가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이전까지 정책에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던 경제학자들이 정치권력에 막대한 영향력을 휘두르며 중요한 공공 정책들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저널리즘에 기반한 엄정한 눈으로 이 역사적 궤적을 바라본다. 이 시대를 주도한 것은 보수주의적 ‘반혁명’, 그러니까 밀턴 프리드먼 등 시장에 대한 믿음이 유별났던 일군의 경제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지은이가 볼 때 정부 개입을 선호하는 경제학자들 역시 큰 흐름에서 별다를 게 없었다. “두 진영 모두 경제는 균형으로 나아간다고 확신했다. 또 경제 정책의 주된 목적은 국가 경제 산출량에서 달러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리고 두 진영 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는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았다.”
시작을 1969년으로 잡은 것은 밀턴 프리드먼과 관계가 깊다.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경제의 핵심이며 정부는 단지 통화량 조절에만 개입해야 한다고 본 프리드먼은 ‘경제학자의 시대’를 예비한 선지자였다. 그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 케인스주의에 밀려 소수파에 머물러 있었으나, 1969년 유력 잡지 <타임>의 표지 모델이 되는 등 점차 주목을 받게 된다. 닉슨 행정부가 ‘지원병에게 경쟁력 있는 임금을 제공하면 된다’는 그의 주장을 토대로 삼아 징병제를 폐지한 것은 그가 공공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특히 1970년대 찾아온 스태그플레이션(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동시에 오르는 현상) 국면에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무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권은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통화량만 조정해 인플레이션을 잡으면 된다’는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이론에 경도된다.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이 된 경제학자 폴 볼커가 선도했듯 “인플레이션을 뿌리 뽑으려는 노력은 종교적 현상이 되었”고,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가 “솔직한 민주당원이라면 이제 누구나 프리드먼주의자라고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듯 통화주의는 미국 경제 정책의 기본이 됐다. 그러나 정부가 일자리 문제에선 손을 떼고 통화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로 얻어낸 경제 성장의 결실은 일부에게만 돌아갔다. 1959~1975년 3%가량이었던 선진국 평균 실업률은 1992~2007년 7%로 두 배 이상 뛰었으며, 2007년 미국에서 상위 10% 가구가 나라 전체 부의 71.6%를 소유했다.
‘반혁명’을 이끈 또 다른 경제 이론은 ‘감세’다. 로버트 먼델, 아서 래퍼 등의 경제학자들은 “세금을 줄여도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려 올 수 있으면 이자율 상승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감세로 경기를 부양하자고 주장했다. 감세는 대대적인 정치운동을 이끌어냈고 레이건 행정부에서 적극적인 정책으로 발전했는데, 지은이는 이를 사회적 보수주의와 경제적 보수주의의 결합으로 풀이한다. 감세 정책으로 한때 90%대에 달했던 미국의 최고 세율은 1986년 33%로까지 내려갔다. 그 효과를 누린 것 역시 법인과 고소득자들, 그리고 언제든 ‘감세’라는 장작을 던져 정치적 지지라는 화염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인들뿐이었다. 1961년 미국 고소득자 11만2천여명은 소득의 51.5%를 세금으로 낸 반면, 소득 하위 90%에 속하는 대다수는 22.3%를 냈다. 2011년에 고소득자는 세금으로 33.2%를, 하위 90%는 26%를 냈다. “순전히 부유층 과세가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지은이는 미국의 전통적인 반독점법에 구멍을 내고 규제를 형해화시킨 아론 디렉터와 조지 스티글러, ‘비용 편익 분석’이라는 틀을 가지고 생명 가치를 추산하는 등 경제학자의 판단을 모든 정책 결정의 상위에 위치시킨 짐 토치와 토머스 셸링 등 오늘날 시장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세계를 개척한 여러 경제학자들을 살핀다. 이들의 시대는 2008년 금융위기를 넘지 못했다. “미국 9개 대형 은행 최고 경영자들이 호위를 받으며 금박을 두른 재무부 회의실로 들어선 시각”에, 또는 이미 그 전에 끝난 것이다. 그러나 “시장 신앙에 따라 길러진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 세대는 여전히 저 이론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 이론은 상당 부분 법과 관습으로 견고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은행들만 살린 뒤 곧바로 다시 긴축으로 돌아섰으며, 케인스주의는 “반짝 등장하고 곧 자취를 감췄다.”
무엇보다 책의 부제(False prophet, Free market, and the Fracture of Society)대로 지은이는 자유 시장을 부르짖은 이 ‘거짓 선지자’들이 불평등, 곧 사회의 분열을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시장만능주의는 경제적 진화를 앞당겼으나, 그 편익은 단지 “소수 특권층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전체 경제산출량 가운데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대다수 사람들의 몫은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지은이는 “한 사회를 평가하는 척도는 피라미드 계층 구조에서 가장 윗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아니라 가장 아랫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라 단언한다. 자유가 아니라 분배가 문제다. ‘경제학자의 시대’ 40년이 주는 교훈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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