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귀뚜라미
'귀뚜라미는 더이상 보일러회사가 아닙니다. 원전, 반도체….' 보일러로 유명한 귀뚜라미의 광고문구다. 귀뚜라미 계열사 센추리는 국내 원전 냉각기 1위 업체다. 탈원전정책으로 국내 매출이 다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최진민 귀뚜라미 회장은 원전 기술인력 180명의 고용을 유지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지키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귀뚜라미는 예외적인 곳이다. 원전인력과 기술을 온전히 지킨 곳은 많지 않다. 수주가 끊겨 문을 닫거나 사업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7월 주요 70개 원전기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원전 경쟁력은 탈원전 이전의 65% 수준에 머문다고 답변했다. 경쟁력을 복구하기까지 약 3.9년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R&D(연구·개발은)는 쇠락했고 대학의 원자력공학과는 궤멸했다. "신고리원전 5·6호기가 2082년까지 가동된다. 원전은 60년 더 간다"고 혹세무민했지만 새 원전을 짓지 않고 수출일거리도 없으면 거기서 끝난다는 것은 감췄다. 원전기업은 망하고 인력은 흩어지고 기술력은 사장됐다.
한국 원전산업이 후퇴하는 사이 러시아와 중국이 약진했다. 2017년 이후 착공된 세계 원전 27기 중 17기는 러시아, 10기는 중국의 몫이었다. 탈원전정책의 수혜자가 중국과 러시아인 셈이다. 그만큼 국익에 해를 끼친 것이다. 두 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이 원전에 국력을 쏟아붓는 동안 한국은 생태계가 붕괴됐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대국이지만 원전까지 에너지 포트폴리오에 넣어 수출산업으로 키웠다. 에너지패권을 강화한 것이다. 중국은 원전을 '제조업 2025'의 핵심으로 삼고 2030년까지 원전 110기를 건설해 원전강국이 되겠다고 선포하며 일로매진했다. 석유, 가스, 석탄 등을 자급하지 못하는 중국은 원전을 에너지 자립을 위한 중요 수단으로 여긴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원전굴기를 주창한 이래 원전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췄다. 원전은 탄소중립에도 유용한 카드였다. 문제는 중국이 동부해안에 주로 원전을 지었다는 점이다. 한국보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 원전에서 사고가 날 경우 한국이 피해를 뒤집어쓸 수 있다. 그렇지만 탈원전론자들은 중국의 원전건설과 그 위험성에는 침묵했다.
탈원전정책이 나온 이래 10여편의 칼럼에서 지적한 문제는 현실화됐다. LNG(액화천연가스)는 지정학적 요인 등에 따라 가격이 치솟고 공급이 불안정할 수 있다고 했고 원전보다 발전단가가 비싸므로 전기요금 인상과 산업 경쟁력, 물가부담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도 했다('탈원전, 대안이 먼저다'). 겪고 있다시피 전쟁과 천연가스 가격폭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스탠더드&푸어스(S&P)가 한국전력의 신용등급을 낮추고 정부의 세금투입 없이 스스로 빚 갚기가 어려워진 것, 원전 비중을 낮추면서 전력구매비용이 더 들어갔는데 전기요금은 올리지 못해 한전의 적자가 더 커졌다는 것도 썼다('한국전력의 겨울'). 한전이 자금조달을 위해 회사채 시장의 혼란을 야기한 것은 예정된 결과다.
석유와 천연가스 결핍은 곧 자원의 종속이고 그 맥락에서 독일 등 유럽국가가 러시아 천연가스 중단위협에 노출된 사례도 제시했다. 원전의 안전성과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대규모 시장이 열리는 것에 대비해 수출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탈원전, 에너지 종속'). 독일은 원전수명을 연장했고 세계 각국이 원전으로 유턴 중이며 원전 수주전은 뜨겁다.
한국과 폴란드 정부는 지난달 31일 원전개발계획 수립과 관련, MOU(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양국 기업이 한국형 원전(APR1400)을 기반으로 폴란드에 원전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본계약과 착공까지 갈 길이 멀지만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틴 귀뚜라미들의 건투를 빈다. 한국 원전에 축복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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