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내게 고마워하라’는 文
사람들은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진심일 때도 있고 의례적이거나 정치적 수사로 쓸 때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고맙다’라는 말을 특이하게 쓴다. 그는 과거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안철수 의원과 후보 단일화 회동을 한 이후 “OOO라는 식당 이름이 얼마나 예쁘냐. 그 이름을 써서 참 고맙다”고 했다. 뭐가 고마운지 설명은 없었지만 회동 이후 본인이 단일 후보가 된 것이 좋다는 뜻처럼 들렸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팽목항의 세월호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 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1000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썼다. 미안함은 알겠지만 참사 희생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세월호 참사 덕분에 탄핵 사태가 나고 본인이 대선에 이길 수 있게 됐다는 말로 들렸다. 문 전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 참사 희생자들에게 ‘고맙다’고 했으면 정치 생명이 끊어졌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출간한 에세이집 ‘문재인의 위로’에서 ‘나를 필요로 해줘서 고맙다. 덕분에 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나를 의심해줘서 고맙다. 덕분에 나는 더 정직할 수 있었다. 나를 이해해 줘서 고맙다. 덕분에 나는 더 소신껏 일할 수 있었다. 나를 미워해 줘서 고맙다. 덕분에 나는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썼다. 정말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했다는 자화자찬이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라’는 말도 잘 한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3월 대선 때 “정권 심판이라는 구호는 부당하다”면서 “마지막까지 애쓰는 대통령에게 수고한다, 고맙다고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전 인터뷰에서 ‘미친 집값’과 ‘영끌족 양산’을 만든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고마워하라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풍산개를 키우다 돈 문제로 정부에 반납한 것에 대해 “지난 6개월간 무상으로 양육하고 사랑을 쏟아준 것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본인이 키우던 개를 정부가 월 250만원씩 지원해 주지 않는다고 내쫓은 사람이 도리어 ‘내게 고마워하라’고 한 것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개에게 정이 들어 내보내지 못한다고 한다. 애견인인 듯 비쳤던 문 전 대통령에게 그런 ‘정’은 없는 것 같다. 대신 ‘모두가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독특한 정서를 가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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