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1] 새벽을 부르는 발걸음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밤은 곧 불빛이다. 고층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찬 도시는 밤이 오면 빛으로 어두운 곳을 지워가며 낮과는 다른 위용을 드러낸다. 도시의 밤하늘은 낮보다 어둡지만, 도시인이 머무는 곳엔 인공의 빛이 있다. 가로등부터 위로 위로 층층이 쌓인 불빛은 도시마다 특유의 지형을 만든다. 매일 해가 어스름하게 사라지기 시작하면 도시는 빛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
박부곤 작가는 ‘트래킹(Tracking)’ 연작(2013-2014)에서 밤과 도시, 인간과 빛의 관계를 관통하는 의미를 탐구하였다. 사진 속 멀리 보이는 도시는 불야성을 이루었다. 형태가 유사한 고층 건물들이 일정 간격을 두고 빛을 발산한다. 한국의 도시 풍경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대단지 주거 지역이 포함된 신도시 어디일 거라 수월하게 짐작할 것이다. 짐작은 틀리지 않는다. 이 작품은 동탄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촬영했다. 이미 입주를 마친 지역이 밤의 위용을 떨치고 있을 때 여전히 건설을 앞둔 부지는 어둠 속에 남아 있다.
작업 과정은 수련이나 수행에 가깝다. 작가는 한밤중에 환한 도시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외곽으로 가서 대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빛으로 그림을 그렸다. 화면에 나타난 붉은 선들은 작가의 걸음을 따라 생겨난 빛의 궤적이다. 발밑도 잘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에 흙더미 위를 이리저리 훑고 다닌 흔적이 때론 파도처럼 때론 음악처럼 울렁인다. 숨 가쁜 걸음을 잠시 쉬고 싶을 때도 있었을 텐데, 붉은 선은 그저 가볍게 유영하듯 어둠을 누빈다. 작가가 카메라로 돌아올 때까지 한 시간 넘도록 셔터를 열어 둔 덕에, 우리는 사람의 발걸음이 얼마나 섬세한 빛자국을 남기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어두운 곳은 눈길을 받지 못한다. 도시의 밤엔 볼 필요가 없거나 보고 싶지 않은 곳에 불빛이 닿지 않는다. 밤이 깊을수록 후미진 어둠도 깊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의 길을 만들어가는 시간 동안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밤새 걷고 걷다가 맞이하는 새벽 하늘은 어떤 색이었을까. 이 작품을 볼 때마다 궁금하다. 어둠을 헤집을 용기는 어둠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빛이 온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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