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대통령실은 민심이 안 들리는 산간벽지인가
이기홍 대기자 2022. 11. 11. 03:03
해이해진 수석들, 자리집착 행안부장관
대통령의 참사 공감 노력 빛바래게 해
경찰 바로 세우고 공직기강 쇄신하려면
언행 품격과 공정인사로 권위·신뢰 높여야
대통령의 참사 공감 노력 빛바래게 해
경찰 바로 세우고 공직기강 쇄신하려면
언행 품격과 공정인사로 권위·신뢰 높여야
충북 단양 해발 943m 용산봉의 중턱에 있는 피화기(避禍基)마을은 예전엔 전쟁도 비껴간 곳으로 불렸다. 워낙 산간벽지여서 이곳의 화전민은 6·25전쟁이 난 것도 몰랐다 한다.
8일 저녁 김은혜 홍보,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국감장에서 ‘웃기고 있네’ 필담을 나눴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런 마을이 떠올랐다.
민심의 포성(砲聲)이 들리지 않는 산간벽지나 구름 위가 아니라면 어떻게 저렇게 해이할 수 있을까. 정권 교체를 이뤄낸 과반수 국민이 느끼는 절박함과 긴장감이 저들에겐 딴 세상의 일인가.
비서들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안전 담당 장관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듯 가벼운 입을 놀린 행안부 장관, 어색한 농담으로만 기억되는 총리….
국제 질서의 총체적 격변과 대형 참사로 국민은 공습경보 상황처럼 긴장해 있고, 거리엔 정권증오 세력이 굶주린 승냥이처럼 발호하는 상황에서 여권 인사들은 어떻게 저토록 해이하고 경박할까.
매일 빈소를 찾으며 아픔에 공감하려 애쓰는 대통령의 노력을 측근들이 갉아먹는 형국이다.
필자는 어제 보수 성향의 원로 2명에게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대응했겠느냐”고 물었다. 답은 거의 비슷했다.
“참사 발생 직후 유족을 찾아간 대통령은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라며 사죄한다. 대통령의 말은 짧고 간결했지만 반나절쯤 지나 대통령이 얼마나 깊이 비통해하며, 원인 규명과 문책, 시스템 마련에 굳은 의지를 갖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관계자 전언들이 흘러나온다. 거의 동시에 총리와 행안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사표를 낸다. 대통령은 ‘지금은 일단 수습과 원인 규명이 중요하다. 여러분 거취는 급한 수습을 한 뒤 판단하겠다’며 총리와 장관을 현장으로 보낸다….”
국민이 얘기할 걸 선제적으로 하면 효과는 배가된다. 김이 빠진 야당이 “정권 책임을 인정했다”며 난리 쳐도 국민의 손가락질만 받게 된다.
윤 대통령은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경찰을 강하게 질책했다. 전문(全文)이 공개된 긴 발언에 담긴 대통령의 상황파악은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했다. 하지만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건 그 이상이다. 다시 원로들의 “내가 대통령이었다면”이 이어진다.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의 중심은 국내외 안전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었다. 대통령은 오랜 시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한 뒤 회의에 참석한 장관과 비서관들에게 지시한다. 내일은 오늘 전문가들 말씀을 토대로 각 부처에서 어떻게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 가져와서 같이 논의합시다.”
대통령은 국민보다 앞서 생각하고, 더 넓게 많이 듣고, 더 크게 생각하는 자리다. 결단의 타이밍도 중요하다.
오만한 버티기와 책임 회피가 빚는 결과는 문재인 정권이 잘 보여줬다. 조국 의혹이 터져 나온 뒤 사퇴까지 거의 두 달이 걸렸다. 숱한 사고와 정책 실패에도 아무도 정무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강경 지지층만 보며 오기를 부린 결과는 결국 정권 교체였다.
이번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난 공직 기강 해이 역시 문 정권 내내 횡행했던 편 가르기 인사와 적폐청산 광풍이 빚은 ‘복지부동이 최고의 생존’이라는 학습효과 탓이 클 것이다.
거의 사보타주 수준인 용산경찰서장 등의 행태는 문 정권을 거치면서 일부 경찰 간부 집단이 어떻게 퇴락했는지, 얼마나 정치화됐는지 짐작하게 한다. 비단 경찰뿐만 아니라 여러 권력기관에서는 전 정권에서 잘나갔던 라인의 인사들이 ‘5년간 기대할 게 없다’며 뒷짐 진 채 달력만 보고 있다는 얘기가 몇 달 전부터 들려왔다.
이를 깨려면 대통령의 리더십이 강화돼야 한다. 질책이나 버럭 호통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언행이 품위와 품격을 갖고, 비서들이 아닌 일선 부처에 힘을 실어주며 공정한 인사와 엄격한 신상필벌을 하면 권위가 서고 신뢰가 깊어진다. 취임 전 약속대로 내각이 움직이게 하고, 대통령은 격려하며 전체를 봐야한다.
윤 대통령은 야당복은 타고난 사람이다. 여러 대형 혐의·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이 야당 대표고, 전직 대통령은 장삼이사도 상상키 어려운 행동으로 비판의 화살을 자초한다.
풍산개 논란은 전 정권 세력의 두 가지 본색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첫째는 진실 호도(糊塗) 본색이다.
법령 개정이 안 돼 풍산개 위탁 보호 자체가 불법이므로 내보냈다고 하도 주장하기에 대통령기록물법시행령을 찾아봤더니 제6조의 3항에 ‘선물이 동물 또는 식물 등이어서 다른 기관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것인 경우에는 다른 기관의 장에게 이관하여 관리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올 3월 29일 자로 신설돼 있었다.
풍산개를 완전히 자기 소유로 할 수는 없어도 맡아서 기르는 데는 별 법적 장애가 없는데도 법령 탓을 하며 돈 때문이 아닌 듯 호도한 것이다.
둘째는 비정함이다. 기르던 개를 미련 없이 내치는 그 심성은 자신들의 이익이나 목적 달성을 위해선 무엇이든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냉혹함을 보여준다.
이런 수준의 야당과 전직 대통령이 ‘도와주는데도’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는 것은 저들과 월등히 차별화되는 품격 공정 상식 겸허함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겸손한 자세로 민심에 귀 기울이면 권위와 품격, 신뢰가 저절로 높아진다. 그러면 야당과 좌파그룹이 아무리 정권을 흔들려 해도 자기 무덤 파기로 끝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현 야권 인사들이 얼마나 집요하고 저열하게 공격했는지 돌아보라. 하지만 국민적 평가와 지지가 한결같이 높게 나타나니까 요즘은 섣불리 공격하면 자기 손해가 된다는 계산에서 오히려 참배 이벤트를 벌이지 않는가.
8일 저녁 김은혜 홍보,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국감장에서 ‘웃기고 있네’ 필담을 나눴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런 마을이 떠올랐다.
민심의 포성(砲聲)이 들리지 않는 산간벽지나 구름 위가 아니라면 어떻게 저렇게 해이할 수 있을까. 정권 교체를 이뤄낸 과반수 국민이 느끼는 절박함과 긴장감이 저들에겐 딴 세상의 일인가.
비서들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안전 담당 장관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듯 가벼운 입을 놀린 행안부 장관, 어색한 농담으로만 기억되는 총리….
국제 질서의 총체적 격변과 대형 참사로 국민은 공습경보 상황처럼 긴장해 있고, 거리엔 정권증오 세력이 굶주린 승냥이처럼 발호하는 상황에서 여권 인사들은 어떻게 저토록 해이하고 경박할까.
매일 빈소를 찾으며 아픔에 공감하려 애쓰는 대통령의 노력을 측근들이 갉아먹는 형국이다.
필자는 어제 보수 성향의 원로 2명에게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대응했겠느냐”고 물었다. 답은 거의 비슷했다.
“참사 발생 직후 유족을 찾아간 대통령은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라며 사죄한다. 대통령의 말은 짧고 간결했지만 반나절쯤 지나 대통령이 얼마나 깊이 비통해하며, 원인 규명과 문책, 시스템 마련에 굳은 의지를 갖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관계자 전언들이 흘러나온다. 거의 동시에 총리와 행안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사표를 낸다. 대통령은 ‘지금은 일단 수습과 원인 규명이 중요하다. 여러분 거취는 급한 수습을 한 뒤 판단하겠다’며 총리와 장관을 현장으로 보낸다….”
국민이 얘기할 걸 선제적으로 하면 효과는 배가된다. 김이 빠진 야당이 “정권 책임을 인정했다”며 난리 쳐도 국민의 손가락질만 받게 된다.
윤 대통령은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경찰을 강하게 질책했다. 전문(全文)이 공개된 긴 발언에 담긴 대통령의 상황파악은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했다. 하지만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건 그 이상이다. 다시 원로들의 “내가 대통령이었다면”이 이어진다.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의 중심은 국내외 안전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었다. 대통령은 오랜 시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한 뒤 회의에 참석한 장관과 비서관들에게 지시한다. 내일은 오늘 전문가들 말씀을 토대로 각 부처에서 어떻게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 가져와서 같이 논의합시다.”
대통령은 국민보다 앞서 생각하고, 더 넓게 많이 듣고, 더 크게 생각하는 자리다. 결단의 타이밍도 중요하다.
오만한 버티기와 책임 회피가 빚는 결과는 문재인 정권이 잘 보여줬다. 조국 의혹이 터져 나온 뒤 사퇴까지 거의 두 달이 걸렸다. 숱한 사고와 정책 실패에도 아무도 정무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강경 지지층만 보며 오기를 부린 결과는 결국 정권 교체였다.
이번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난 공직 기강 해이 역시 문 정권 내내 횡행했던 편 가르기 인사와 적폐청산 광풍이 빚은 ‘복지부동이 최고의 생존’이라는 학습효과 탓이 클 것이다.
거의 사보타주 수준인 용산경찰서장 등의 행태는 문 정권을 거치면서 일부 경찰 간부 집단이 어떻게 퇴락했는지, 얼마나 정치화됐는지 짐작하게 한다. 비단 경찰뿐만 아니라 여러 권력기관에서는 전 정권에서 잘나갔던 라인의 인사들이 ‘5년간 기대할 게 없다’며 뒷짐 진 채 달력만 보고 있다는 얘기가 몇 달 전부터 들려왔다.
이를 깨려면 대통령의 리더십이 강화돼야 한다. 질책이나 버럭 호통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언행이 품위와 품격을 갖고, 비서들이 아닌 일선 부처에 힘을 실어주며 공정한 인사와 엄격한 신상필벌을 하면 권위가 서고 신뢰가 깊어진다. 취임 전 약속대로 내각이 움직이게 하고, 대통령은 격려하며 전체를 봐야한다.
윤 대통령은 야당복은 타고난 사람이다. 여러 대형 혐의·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이 야당 대표고, 전직 대통령은 장삼이사도 상상키 어려운 행동으로 비판의 화살을 자초한다.
풍산개 논란은 전 정권 세력의 두 가지 본색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첫째는 진실 호도(糊塗) 본색이다.
법령 개정이 안 돼 풍산개 위탁 보호 자체가 불법이므로 내보냈다고 하도 주장하기에 대통령기록물법시행령을 찾아봤더니 제6조의 3항에 ‘선물이 동물 또는 식물 등이어서 다른 기관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것인 경우에는 다른 기관의 장에게 이관하여 관리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올 3월 29일 자로 신설돼 있었다.
풍산개를 완전히 자기 소유로 할 수는 없어도 맡아서 기르는 데는 별 법적 장애가 없는데도 법령 탓을 하며 돈 때문이 아닌 듯 호도한 것이다.
둘째는 비정함이다. 기르던 개를 미련 없이 내치는 그 심성은 자신들의 이익이나 목적 달성을 위해선 무엇이든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냉혹함을 보여준다.
이런 수준의 야당과 전직 대통령이 ‘도와주는데도’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는 것은 저들과 월등히 차별화되는 품격 공정 상식 겸허함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겸손한 자세로 민심에 귀 기울이면 권위와 품격, 신뢰가 저절로 높아진다. 그러면 야당과 좌파그룹이 아무리 정권을 흔들려 해도 자기 무덤 파기로 끝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현 야권 인사들이 얼마나 집요하고 저열하게 공격했는지 돌아보라. 하지만 국민적 평가와 지지가 한결같이 높게 나타나니까 요즘은 섣불리 공격하면 자기 손해가 된다는 계산에서 오히려 참배 이벤트를 벌이지 않는가.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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