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그린하우스, 파리다방…아련한 날들의 궤적 더듬는 추억여행
요즘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디일까? 강남역, 대학로, 압구정동, 홍대 앞을 비롯해 최근에는 서촌, 성수동, 을지로 등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젊은이의 거리라면, 단연 명동과 종로, 그리고 신촌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대가 모여 있는 신촌은 청춘의 집합소였으며, 그중에서도 ‘이대 앞’은 양장점과 구두가게가 늘어서 있고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멋쟁이들이 모여드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공간이었다.
‘이대 앞’이라고 하면, 보통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에서 지하철 이대역에 이르는 거리를 가리킨다. 이화여대 정문 앞을 찍은 1971년의 사진을 보면, 먼저 ‘그린하우스’라는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띈다. 지금은 없어진 그린하우스제과점은 이대 앞의 터줏대감과 같은 존재로, 1970~1980년대 이대를 다닌 학생들은 이 빵집과 관련된 추억을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인근에 있었던 ‘파리다방’도 미팅의 명소였다. 그린하우스제과점 뒤쪽으로는 노점상의 파라솔이 정문까지 이어지며, 멀리 학교 안에는 1956년 이화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세운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대강당 건물이 보인다. 지금도 회자되는 영국의 최고 아이돌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공연이 1969년 열린 곳이다.
지금과 달리 1970~1980년대 이화여대는 금남의 공간이었다. 남학생이 학교에 들어가려다 막아선 경비 아저씨에게 야단을 맞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정문 앞에는 ‘바보 스테이지’라 불리는 곳이 있다. 남학생이 이대생을 기다리던 장소였다. 사진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이화여대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대학교였다. 아래로 경의선 철도가 놓여 있던 ‘이화교’라는 다리였다. 이대생들 사이에는 다리를 건너며 기차의 꼬리를 밟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래서 기차 경적이 들리면 일부러 다리를 천천히 건너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2022년의 사진을 보면, 그린하우스제과점은 대기업의 생활용품 체인점으로 바뀌었으며, 학교 정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일방통행로가 되었다. 2000년대 초에는 경의선 철길을 지하화하고 그 위를 복개하여 이화교가 사라졌다. 이대 앞의 번화했던 상점가도 최근 경기 침체로 갈수록 빈 가게가 늘고 있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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