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화석연료 시대 종말 앞당긴 푸틴
청정 에너지 전환·효율화 가속
IEA, 전쟁이 역사적 변화 초래
韓, 원전·태양광 수출 기회 커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켜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벼랑 끝으로 몬 주범이다.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천연가스 가격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준까지 올랐다. 원유 가격으로 치면 한때 400달러를 넘기도 했다. 원유는 물론 석탄 가격도 기록적 수준으로 치솟았다. 전 세계를 수십 년 만의 인플레이션 고통으로 몰아넣었고, 에너지 난민을 수억 명 만들었다. 에너지 위기로 전기 없이 사는 인구가 올해 2000만명 늘어나 7억7500만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전기 없이 사는 인구가 증가한 것은 IEA(국제에너지기구)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공공의 적이 된 푸틴 대통령이지만 역설적으로 잘한 일이 딱 하나 있다. 그동안 어떤 나라도, 정치인도, 환경 단체도 하지 못한 화석연료 시대 종말을 앞당기고, 사람들에게 에너지 절약과 효율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로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에너지 무기화는 전 세계가 원전·태양광·풍력·수소 같은 청정 에너지로 눈을 돌리고 투자를 가속하게 했다. 푸틴 대통령 스스로는 러시아 정부 예산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천연가스 수출 밸브까지 잠가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물론 그가 의도하거나 예상했던 결과는 결코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EU(유럽연합) 국가들은 러시아의 석탄·석유·가스 수입을 줄이는 데 급급했다. 파이프를 통하지 않은 LNG(액화천연가스)로 수입 경로를 돌리고, 단기간 석탄 발전을 크게 늘렸다. 전쟁 탓에 전 세계의 기후변화 대응이 크게 후퇴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었다.
하지만 이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많은 국가가 청정 에너지와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는 정책을 내고 있다. 유럽은 전쟁 발발 직후 ‘리파워 EU(REPowerEU)’ 패키지를 내놨는데, 에너지 소비 감축 의무를 확대하고, 2025년까지 청정 에너지 발전 설비를 2배 확대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 역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만들어 2030년까지 태양광·풍력 발전 용량을 지금보다 2.5배, 전기차는 7배 늘리겠다고 했다.
결과는 바로 나타나고 있다. 당장 올해 증가한 에너지 투자의 4분의 3이 청정 에너지 분야에 집중됐다. 태양·풍력 발전량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폴란드의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48.5% 급증했다. EU 회원 27국 가운데 19국이 태양광·풍력 발전 신기록을 세웠다. IEA는 지난달 내놓은 에너지 전망 2022 보고서에서 올해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이 1% 미만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만 해도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정점이 언제일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이번엔 2025년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IEA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는, 깨끗하고 경제적이고 안전한 에너지 시스템으로 향하는 역사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이는 2010년대 석탄에서 청정 에너지로 넘어가는 가교 에너지로 주목받았던 천연가스의 황금시대가 저물고, 세계 최대 화석연료 수출국으로서 러시아 위상도 끝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너지 안보 위기는 우리에게 원전과 재생에너지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만들 기회가 되고 있다. 폴란드를 비롯해 유럽으로 원전 수출을 늘리고, 미국에선 태양광 시장 점유율을 높일 계기로 삼아야 한다. 청정 에너지 전환과 함께 관련 산업이 수출 확대로 이어지도록 체계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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