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가구 매장엔 있는데 국가엔 없는 것
지난 주말 이케아 매장에 가구를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한 공간에 족히 1000명 이상 인파가 몰렸는데도 딱히 과밀(過密)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밀함이 공포로 다가오는 요즘, 북유럽 가구점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푸드코트에 들어설 때는 좀 불안했다. 점심때를 맞춰 간 탓에 사람들이 식당으로 몰리겠지 싶었다. 기우였다. 줄은 길었지만 다들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줄로 서서 음식을 집고, 주문하고, 계산까지 마치는 시스템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 같았다. 물론 시스템이 오작동할 때를 대비해 매의 눈으로 ‘교통정리’를 하는 직원도 있었다. 한쪽 줄에 사람이 너무 몰리자 직원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여기부터는 저쪽 줄로 서주세요!” 그는 능숙하게 줄을 끊어 사람 한 무더기를 반대편으로 보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 단위 방문객이 대부분이었다. 열에 아홉이 어린아이를 데려온 부부였다. 아이가 이렇게 많은데 질서가 유지되다니! 감탄하다가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놀이 공간이 푸드코트 한가운데 있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장난꾸러기는 죄다 여기 몰려가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방팔방 뛰어다니지 않도록 한 영리한 배치라고 느꼈다. 아이가 바로 시야에 들어오니 부모도 이 틈에 한숨 돌리고 밥 먹으라는 세심한 배려이기도 했다.
가구를 전시한 쇼룸 역시 붐볐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고객의 동선 관리에 공을 들이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고정 경로 디자인(fixed path design)’이란 철학을 갖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이케아 매장이 이 방식을 고수한다. 매장에 발을 들인 손님이 계산대로 향할 때까지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끔 설계했다. 의도대로 진열한 상품을 보면서 소비 충동을 느끼라는 것인데, 직접 경험해보니 일방통행으로 군중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면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몰릴 수 있으니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되, 문제가 있을 때 즉시 조치할 수 있도록 현장에 상시 감시 인력을 배치하는 것. 덤으로 그 장소에 몰리는 군중의 특성을 파악해 맞춤 관리를 하는 것. 최근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이 말하던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군중 관리)’란 이런 것일까.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대응과 관련해 “우리 사회는 아직 인파·군중 관리라고 하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개발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했다. 총리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에 대한 충분한 제도적 뒷받침과 체계적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부족하다는 ‘그것’을 일상에서 손쉽게 접하고 그저 황망했다. 최첨단 인공지능 장비가 있어야만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될 일이었다. 북유럽 가구점이 국가보다 안전하게 느껴지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뭐라 해야 좋을까. 가구는 사지 못하고 심란함만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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